첫 음을 울리기 전, 이야기를 읽다

한국인 최초 브로드웨이 뮤지컬 음악 감독, 수진 킴램지(Sujin Kim-Ramsey, 김수진, 작곡 02)
  • 2026.10.20

뮤지컬에서 음악은 아름다운 선율에 그치지 않는다. 대사가 노래가 되고, 이야기와 인물의 감정은 음악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관객의 마음에 전해진다. 음악은 곧 이야기를 펼쳐 내는 언어다. 이런 뮤지컬의 매력이 살아 숨 쉬는 세계적인 무대가 바로 뉴욕의 브로드웨이다. 수진 킴램지 동문은 오랫동안 동경해 온 이곳에서 여러 한계를 넘으며 한국인 최초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음악 감독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다.

 

뮤지컬 음악에 매료된 소녀, 나만의 꿈을 찾다

음악은 어린 시절부터 수진 킴램지 동문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디즈니 영화를 통해 만난 뮤지컬 음악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사로 이어지던 이야기가 노래로 펼쳐지는 장면은 마법과도 같았다.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김 동문은 자연스럽게 피아노 전공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길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어릴 때 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보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디즈니 뮤지컬 음악을 무척 좋아했죠. 한편으로는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연스레 피아노 전공으로 진로를 정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피아노를 치는 것과 디즈니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 별개였어요. 그러다 예원학교 입시를 봤는데 떨어지고 말았죠. 그런데 오히려 안도감이 들더라고요. 주변의 기대를 따라갔지만, 어린 마음에도 ‘내가 정말 피아노 치는 걸 진심으로 사랑하나?’ 하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입시가 끝난 후 그는 하루에 7~8시간씩 하던 피아노 연습을 그만두고 일반 중학교에 진학해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누구의 기대나 권유 없이도 스스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정해진 곡을 연주하는 대신 직접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었다. 상상 속 이야기를 자신의 음악으로 만드는 일이 즐거웠다. 그렇게 자신의 꿈을 찾았다.

 

“좋아하던 디즈니 뮤지컬처럼 어떤 상황을 상상하고, 그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을 노래로 만들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아, 나는 뮤지컬 음악을 만들고 싶은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됐죠. 당시 한국에서 뮤지컬 창작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기 어려워 클래식 작곡을 진로로 택했죠. 하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이를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마음가짐이 달라졌죠.”

 

멀게만 느껴진 클래식 음악은 현재의 단단한 토대

수진 킴램지 동문은 그렇게 꿈을 향한 여정 속에서 우리 대학교 작곡과에 입학했다. 치열한 입시를 거쳐 맞이한 대학 생활은 자유로웠지만, 한편으로는 꽤 낯설었다. 특히 음악적으로 많은 고민이 이어졌다.

 

“명문대 입학은 당시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였어요. 고3 때 입시에 매진했는데, 막상 입학하고 나니 마음이 풀렸던 것 같아요. 성적은 부모님께 보여 드리기 어려울 정도였죠.(웃음) 음악적으로도 너무 낯선 세계를 만났어요. 뮤지컬 음악을 만들고 싶어서 작곡과에 들어왔지만, 대학에서 배우는 클래식 음악은 제가 가고 싶은 길과 너무 멀게 느껴졌죠. 스스로를 좀 이단아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차피 나는 다른 길을 갈 거니까’ 하는 생각에 학교에서의 배움과 거리를 뒀던 것 같아요.”

 

꿈꾸던 음악과 당시 배우던 음악 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못해 방황하던 김 동문은 결국 1년간 휴학하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음악은 분명했지만 꿈을 향한 이정표를 찾지 못했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복학한 뒤 그는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됐다. 처음에는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공부를 시작했지만, 낯설었던 음악을 하나씩 배워 가며 그 안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 클래식 음악을 바라보는 시야도 한층 넓어졌다.


“복학한 후 무엇이든 열심히 배워 보자고 결심했어요. 학교에서 이끄는 방향을 따라 공부하다 보니, 그제야 ‘아, 이 음악에 이런 매력이 있구나’ 하고 깨달았죠. 이후 클래식 공부와 작곡에 몰두했고, 그 과정에서 음악을 바라보는 시야도 많이 넓어졌어요. 좋아하는 음악만 따라가서는 가지기 어려웠을 단단한 토대를 갖출 수 있게 됐죠. 그전에는 아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너무 일찍 선을 그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일찍 열린 마음으로 배웠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아요.”

 

뮤지컬 음악에는 클래식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가 녹아 있다. 돌이켜보면 대학에서 클래식을 전공하며 다진 음악적 기초와 작곡 역량은 그가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한 원동력이자 가장 큰 자산이다. 그 시간 덕분에 음악을 더욱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음악을 풀어내는 방식도 한층 풍성하고 다채로워졌다.

 

꿈을 향한 가능성과 더 큰 세상을 만난 유학 생활

수진 킴램지 동문은 졸업 후 미국 버클리 음대로 재즈 작곡을 전공하기 위해 석사 유학을 떠났다. 당시 한국에서는 뮤지컬 창작을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뮤지컬의 중심인 뉴욕으로 가고 싶었지만, 어쩐지 그곳으로 가는 길은 요원하게만 느껴졌다. 먼저 재즈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꿈에 그리던 뉴욕으로 가서 뮤지컬을 배우고 싶었죠. 뉴욕대에 뮤지컬 창작 석사 과정이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어요. 당시 영어도 너무 부족했고, 현지 문화도 잘 몰랐고요. 그러던 중 버클리 음대를 거쳐 뉴욕대로 가는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한국의 재즈 아카데미와 버클리 음대가 연계돼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그제야 길이 좀 선명하게 보였어요. 상상하던 브로드웨이 사운드에는 늘 풍성한 빅밴드 음악이 있었기에 재즈도 배워 보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버클리 음대에서 김 동문은 또 다른 음악의 세계를 만났다. 기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정해진 틀이나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충실하며 자기만의 음악을 창조하는 자유와 즐거움을 만끽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피아노 수업이 있어요. 교수님이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 눈을 감고, 두 손을 공중에 올린 채 리듬을 타며 피아노를 치듯 움직여 보라고 하셨어요. 어떤 기법이나 이론도 생각하지 말고, 오직 제 느낌과 감정에만 집중하면서요. 40분 내내 그것만 하다 교실을 나왔는데 정말 충격적이었죠. 그간 익힌 이론과 기법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고, 내가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됐거든요. 연세에서 음악의 기초를 탄탄히 다졌다면, 버클리에서는 그것을 제 목소리로 표현하는 법을 배웠죠.”

 

버클리 음대에서 2년 반의 석사 과정을 마친 김 동문은 마침내 뉴욕대에서 꿈꾸던 뮤지컬 창작을 공부하게 됐다. 연세와 버클리에서 음악적 기본기와 표현력을 다진 그는 친구들의 작품 발표 때 피아노 반주를 해 주곤 했다. 되돌아보면 그때부터 음악 감독의 역할을 조금씩 경험하고 있었던 셈이다. 훗날 음악 감독으로 첫발을 내딛게 해 준 인연을 만난 시간이기도 했다.

 

“동기 두 명이 뮤지컬 〈케이팝〉에 참여하면서 제게 음악 감독을 제안했어요. 당시 낯선 땅에서 어떤 기회가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에 일단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처음부터 음악 감독의 길을 계획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새로운 작품의 음악적인 밑그림을 함께 그려 간다는 점에서 제가 꿈꿔 온 창작의 길과 맞닿아 있더라고요. 여전히 영어도 부족하고 이제 막 석사를 마친 제게는 정말 귀한 기회였죠.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음악에서만큼은 자신이 있었거든요.”


 

오랜 꿈이 빛난 순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첫 뮤지컬 〈케이팝〉

뮤지컬 〈케이팝〉으로 음악 감독의 길에 들어선 것은 김 동문에게 큰 행운이었고, 그 의미도 특별했다. 무엇보다 한국어 가사가 많았고 배우 대부분이 한인 2세였다는 점도 소통에 대한 부담을 한층 덜어 주었다. 그는 음악적 역량을 발휘하는 데 집중하며 음악 감독으로서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케이팝〉은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을 계기로 케이팝에 관심을 갖게 된 미국인 프로듀서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케이팝 아이돌이 탄생하는 과정을 무대에 옮긴 작품으로, 관객이 마치 아이돌 기획사를 방문한 듯 보컬 연습실과 댄스 연습실 등 여러 공간을 직접 다니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실험적 형식을 취했다. 마지막에는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공연이 펼쳐진다. 이 작품은 2017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큰 호응을 받아 이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케이팝> 공연 장면. 사진 출처: New York Theatre Guide

 

 

 

 

이 기회를 성취로 일궈 내기까지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었다. 당시에는 케이팝이 지금처럼 미국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에게 케이팝의 매력과 고유의 색깔을 전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브로드웨이식 음악 언어와도 간극이 있었다. 문화적 차이를 좁히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김 동문은 타협보다는 끊임없는 설득을 택했다.

 

“미국 관객들이 즐길 수 있으면서도 케이팝 고유의 색깔을 잃지 않도록 작곡가와 창작진이 함께 많이 고민했어요. 특히 배우들의 노래에서 케이팝 아이돌 특유의 창법과 표현, 에너지가 살아나도록 돕는 데 힘을 쏟았죠. 가장 어려웠던 건 문화적인 차이를 설명하고 서로 이해한 내용을 실제 무대에 구현하는 과정이었어요. 왜 이런 표현이나 디테일이 중요한지부터 설명해야 했고, 그럼에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어요. 솔직히 지쳐서 타협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죠. 하지만 꼭 지켜야 한다고 믿는 부분은 끝까지 설명하고 설득하려 했어요. 그 과정에서 저도 음악 감독으로서 음악을 잘 만드는 것뿐 아니라 그 음악이 가진 문화와 맥락을 함께 전달하는 책임을 배웠던 것 같아요. 케이팝과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브로드웨이에서도 그 색깔을 제대로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에게 〈케이팝〉은 브로드웨이 입성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작품이었다. 서로 다른 문화의 간극을 좁히는 과정에서 음악 감독의 역할과 음악이 지닌 고유의 정체성을 지켜 내는 책임감을 새롭게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날을 맞았다.

 

“아직도 가장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브로드웨이 오프닝 나이트의 피날레예요. 많은 한국 배우들이 함께 브로드웨이에 데뷔해 그 첫 무대를 마친 순간이었죠. 배우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저는 오케스트라 피트에 앉아 모니터로 그 모습을 보면서 함께 울었어요. 오랜 시간 함께 애써 온 동료들이 마침내 그 무대에 서 있다니. 정말 가슴 벅찼어요.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음악적 역량과 확신, 브로드웨이에서 편견을 넘어서는 해답

〈케이팝〉을 시작으로 그를 찾는 무대가 늘어났다. 〈더 라스트 매치(The Last Match)〉의 총괄 음악감독을 맡고, 〈애플 보이즈(Apple Boys)〉, 〈아이앤드유(I and You)〉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음악감독으로 활약하며 탄탄한 경력을 쌓았다. 2026년에는 토니상 3관왕에 빛나는 〈캣츠: 더 젤리클 볼(CATS: The Jellicle Ball)〉의 음악 부감독으로 활약했다. 또한 뉴욕의 플레이룸 시어터(Playroom Theatre), 히어 아트 센터(HERE Arts Center) 등에서 자신의 창작 뮤지컬을 선보였으며, 카네기 홀에서 열린 연세 동문 음악회에서는 직접 작곡한 곡을 연주하며 창작자로서의 역량도 펼쳤다. 뮤지컬 창작자의 꿈에서 출발한 그의 여정은 다양한 무대와 도전을 거치며 음악감독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됐다. 창작과 음악감독의 역할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도 한층 넓혀갔다.

 

“사실 새로운 일이 들어올 때마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사람들 앞에서 리허설을 이끌어야 하니까 늘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죠. 그때마다 ‘나를 알고 믿고 불러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말자. 할 수 있어.’ 하고 스스로 되뇌곤 해요.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음악에 집중하려고 해요. 배우들이 저를 보며 ‘이 사람을 믿고 함께하면 되겠다’고 느낄 수 있도록요. 두려움보다는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붙잡고, 믿어 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보답하는 것.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지키려고 하는 태도예요.”

 

그러나 아시아계 여성이자 브로드웨이 최초의 한국인 음악 감독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들보다 더 노력하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브로드웨이의 유리 천장을 깬 인물로 주목받기까지 그는 편견에 맞서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데다 체구도 작다 보니, 제 역할과 음악적 역량을 알기 전에 저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었어요. 어떤 자리에서는 제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기도 했고요. 그때마다 오히려 저 자신을 더 채찍질했던 것 같아요. 악보와 음악을 철저히 준비하는 건 물론이고, 집에서 혼자 리허설 상황을 상상하면서 진행 순서, 설명 내용까지 미리 연습하기도 했죠. 그러다 깨달았죠. 사람들이 나를 부른 것은 내 음악적 역량이 필요해서라는 걸요.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내가 가진 음악까지 작아지는 건 아니라고요. 이후 제가 가진 음악적 확신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노력했어요.”

 

그렇게 그는 위축되기보다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음악에 집중하며 실력을 쌓았다. 그 노력은 함께했던 사람들의 신뢰로 돌아왔다. 경험과 신뢰가 쌓일수록 자신에 대한 확신도 커지면서 동료들에게 한 발 먼저 다가갈 수 있게 됐다.

 

“경험이 쌓이고 여러 사람과 함께한 작품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달라졌어요. 제 음악과 일하는 방식을 알고 존중해 주는 분들, 저를 믿고 다시 함께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생겼죠. 여전히 언어가 완벽한 건 아니지만, 이제는 제가 이 작업에 무엇을 보탤 수 있는지 조금 더 믿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쌓인 경험과 신뢰가 사람들 앞에 서고, 제 의견을 전하는 데 큰 힘이 되었죠.”

 

음악으로 이야기의 감동을 온전히 전하는, 음악 감독의 역할

수진 킴램지 동문이 느꼈던 뮤지컬의 매력은 음악을 통해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여러 창작자가 함께 호흡하며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다는 점도 그를 사로잡았다. 단순히 음악을 책임지는 데 그치지 않고, 대본과 악보에 담긴 이야기가 배우의 목소리와 연주를 통해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되도록 이끄는 음악 감독의 일은 더없이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하고, 또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책, 드라마, 영화, 친구들과의 수다 등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하고, 무언가를 배우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저는 글로 읽었던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음악과 함께 살아나는 순간에 큰 매력을 느껴요. 인물의 말과 감정이 노래가 되고, 배우와 연주자가 그 순간을 눈앞에서 만들어낸다는 게 참 특별하죠. 또 음악, 연기, 연출, 안무, 무대, 의상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작품을 위해 일하고, 각자의 작업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될 때 정말 큰 성취감을 느껴요.”

 

그가 생각하는 음악 감독의 역할은 음악뿐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과 맥락을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배우와 연주자, 연출가와 작곡가가 각 장면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을 함께 찾도록 조율하는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면 악보보다 대본을 먼저 읽는다. 음악 감독으로서 꾸준히 지켜 온 태도이자 몸에 밴 철학이다.

 

“대본에는 악보 없이 가사만 나와 있어서 오히려 음악을 듣기 전에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요. 각각의 노래가 어떤 상황에서 시작되는지, 인물이 왜 그 순간에 노래를 하는지,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지 먼저 이해하려고 해요. 그다음 악보를 보면서 한 프레이즈씩 살펴봐요. ‘왜 이 가사에 이런 멜로디와 리듬을 썼을까? 배우가 어떻게 불러야 이 마음이 잘 전달될까?’를 생각하죠. 저도 피아노 앞에 앉아서 그 감정과 흐름을 악기로 표현해 보고요. 그렇게 준비한 해석이 작곡가의 의도와 맞는지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방향을 찾아가요.”

 

이를 실제 무대에서 구현할 때는 유연한 감각을 발휘한다. 자신이 준비한 해석만을 고집하지 않고, 장면 간의 연결과 배우의 표현에 따라 음악을 새롭게 해석할 가능성도 열어 둔다. 이야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을 찾아 관객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감동을 전하기 위해서다.

 

“리허설에서는 대사가 오가는 장면을 보다가 ‘여기에는 음악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에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해요. 이를 바탕으로 연출가, 작곡가와 함께 음악이 필요한지, 어떤 느낌으로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면 좋을지 정해요. 대본과 악보에 담긴 이야기가 배우의 목소리와 연주를 통해 관객에게 잘 전달되도록 음악 자체뿐 아니라 장면 전체를 보면서, 배우와 연주자, 연출가와 작곡가 사이에서 가장 적절한 표현을 함께 찾아가도록 조율해 나가죠.”


 

모두가 함께 만드는 뮤지컬, 조율과 설득의 가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데 서로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협업 능력은 필수적이다. 배우와 작곡가, 연주자 등 여러 창작자의 표현이 조화를 이루고 관객의 마음에 닿을 때 무대의 음악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그가 함께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의견을 조율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

 

실제로 리허설 현장에서는 수많은 창작진의 의견이 오간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는 작품의 방향을 조율하기도 하고, 배우들과 직접 여러 표현 방식을 시도해 보기도 한다. 공연이 시작된 뒤에도 협업은 매 순간의 호흡으로 이어진다. 같은 작품이라도 배우의 호흡과 관객의 반응은 공연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매 순간의 변화를 살피며 배우와 밴드가 호흡을 맞추도록 이끄는 것이 그의 몫이다.

 

“미리 정해 둔 음악을 그대로 연주하는 것뿐 아니라, 그날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에 함께 반응하는 거죠. 결국 협업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작품을 중심에 두고 서로의 역할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예요. 제 음악적 역량도 그 안에서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하는 데 쓰일 때 가장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음악이 주도하는 변화 속에서, K 뮤지컬의 시대를 기대하며

요즘 케이팝을 비롯한 한국 문화가 글로벌 문화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2025년 한국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 6개 부문을 수상하며 브로드웨이에서도 이런 변화가 눈에 띄고 있다. 수진 킴램지 동문 역시 이 변화를 현지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다. 과거 그가 직접 설명해야 했던 케이팝을 비롯한 한국 음악을 이제 미국인들이 스스로 찾아 듣고, 때로는 그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그는 한국인 음악 감독으로서 자부심과 함께 새로운 도전 의식을 느낀다.

 

“브로드웨이에서도 이런 변화를 실감해요. 한국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을 받고, 〈위대한 개츠비〉 같은 대작을 한국인 프로듀서가 이끄는 모습을 보면서요. 제가 버클리 음대를 다닐 때만 해도 한국인 음악가들이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시선은 있었거든요. 이제는 나아가 ‘한국 창작진이 어떤 새롭고 창의적인 작품을 보여줄까?’ 하고 기대하는 시선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 변화가 제게도 새로운 도전 의식을 줘요. 저 역시 한국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품게 된 감정과 정서를 제 음악과 이야기에 담아서, 문화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깊이 움직여 보고 싶어요. 제가 가진 것 안에서 아직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더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그는 한국 뮤지컬이 세계에서 더욱 사랑받으려면 한국만의 고유한 이야기와 문화적 정서, 가치를 지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외 관객의 공감을 얻기 위해 표현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작품에 담긴 우리만의 이야기와 한국적인 정서는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는 본질적인 매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으로 한국 뮤지컬계와 함께할 날도 기대하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에 충실하고, 우리가 잘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깊이 있게 담아내다 보면 외국 관객들도 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 ‘K 뮤지컬의 시대’라고 부를 날이 오기를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또 저도 한국에서 작업할 기회가 생겨, 한국 창작진과 함께 우리의 언어로 작품을 만들고, 그 안에서 제가 뉴욕에서 쌓아온 경험도 나눌 수 있다면 무척 뜻깊을 것 같아요.”

 

꿈을 향해 나아가되, 가능성에 한계를 두지 않기

자신의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지금의 무대에 선 수진 킴램지 동문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넨다.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자신에게도 해 주고 싶은 말이다.

 

“대학에 갓 입학한 제게 ‘학교를 믿고, 학교에서 이끌어 주는 방향을 따라 일단 열심히 배워 봐’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많은 경험도 없으면서 ‘어차피 내 길이 아니니까’ 하며 공부에 마음을 쏟지 않았던 게 아쉬워요. 당장 가려는 길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듯 보여도 충분히 배워 보기 전에 선을 긋지 않았으면 해요. 그 배움이 훗날 어디서 어떤 힘이 되어 줄지 모르잖아요. 그리고 청춘을 마음껏 즐기세요. 대신 할 일은 하고 즐기세요!”

 

김 동문은 늘 마음에 새기는 두 가지 생각도 후배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 자신의 가능성에 섣불리 한계를 두지 않되, 언제나 겸손하게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다. 언뜻 상반된 듯 보이는 두 태도는 그를 성장시킨 삶의 원칙이다.

 

“지금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습만으로 미래의 나를 한정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저도 평범하게 음악을 공부하다 유학을 왔고, 동경하던 브로드웨이에서 실제로 일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저 제 앞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찾아오는 기회를 소중하게 여기며 계속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하지만 뭔가를 성취했다고 해도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세상에는 저보다 훨씬 뛰어난 음악가들이 정말 많고, 자신의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도 많거든요. 그래서 늘 겸손하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고 싶어요. 가능성은 크게 열어 두되, 배우는 마음은 잃지 않는 것. 그렇게 계속 음악을 해 나가고 싶어요.”

 

수진 킴램지 동문이 꿈꾸던 무대는 이제 현실이 됐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여러 한계를 넘어야 했지만, 그는 새로운 기회를 받아들이며 조금씩 자신의 길을 넓혀 왔다. 그를 이끈 것은 음악으로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관객과 감동을 나누는 기쁨이었다. 오랫동안 바라던 무대에 선 지금도 그는 동료들에게 배우고, 더 나은 음악을 고민한다. 앞으로도 그 기쁨을 오래 나누며 자신만의 음악을 이어 가기를 기대한다.

 

 

 

 

*기사 사진 제공: 수진 킴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