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어지는 상상으로 전자기술의 한계를 넘다

2차원 소재로 일상의 변화를 설계하는 전기전자공학부 안종현 교수
  • 2026.09.18

AI의 발전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반도체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자유롭게 접고 펼치는 스마트폰을 비롯해 몸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와 생체신호를 감지하는 의료기기도 빠르게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전자기술 혁신의 중심에는 메모리와 센서, 트랜지스터처럼 전기의 흐름을 이용해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전자소자가 있다. 안종현 교수는 그래핀을 비롯한 새로운 소재를 활용해 세계 최초의 플렉서블 터치패널을 개발하고, 고성능 반도체 소자와 정밀 바이오센서의 가능성을 넓혀 온 연구자다. 단단하고 평평했던 전자소자를 얇고 유연하게 바꾸며 기존 실리콘 반도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의 연구는 의료와 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킬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끊임없는 탐구로 세상의 답을 구하는 과학자의 꿈

안종현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를 꿈꿨다. 누구나 한 번쯤 품을 법한 꿈이지만 그는 꽤 진지했다. 과학자가 되기 위해 교수라는 직업을 진로로 선택했을 정도였다.

 

“초등학생 시절, 과학 공부가 재미있었어요. 위인전에서 아인슈타인이나 뉴턴 같은 과학자들을 보면서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또 느리더라도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도 한몫했어요.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니 대부분의 과학자들 직업이 교수더라고요. 그때 과학자는 직업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죠. 자연스럽게 그럼 나도 교수가 되면 좋겠다, 싶었어요.”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주변 사물이 작동하는 원리를 늘 궁금해했다. 집에 있는 전자기기를 분해하고 조립하다 망가뜨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금도 새로운 제품이나 흥미로운 기술이 나오면 직접 구입해 분해해 보곤 한다. 이처럼 엔지니어 성향의 호기심을 지닌 그는 기초과학자들을 보며 꿈을 키웠지만, 대학에서는 재료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기초과학의 원리가 현실에 적용되고 기술로 구현되는 과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실용적 연구에 대한 갈망, 플렉서블 전자소자 연구에 도전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안 교수는 재료공학 가운데서도 일상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는 전자재료 분야를 파고들었다. 오늘날 반도체 소자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거둬 온 안 교수의 출발점에는 전자통신 분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었다.

 

“박사과정까지는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도 했어요. 방사선 가속기라는 거대 장비에서 나오는 엑스선을 이용해 물질을 분석하는 연구였죠. 연구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내 연구 결과를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인류 사회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 고민을 이어가던 중, 안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UIUC)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유연 전자소자를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이 연구를 이끌던 연구자는 미국 벨연구소(Bell Labs)에서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연구한 뒤 UIUC에 부임해 새로운 연구진을 꾸리고 있었다.

 

“원래는 프린스턴대학교에 가서 물리학을 연구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실용적인 연구에 대한 갈망을 놓을 수 없더라고요. 유연 전자소자 연구가 미래의 많은 것을 바꿀 것이고 무엇보다 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죠. 박사과정까지 해 온 것과는 전혀 다른 분야였지만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프린스턴이나 예일 같은 대학의 명성이 연구자로서 안정적인 이력이 돼 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익숙한 길 대신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박사후연구원으로 참여한 연구는 기대 이상으로 혁신적인 동시에 실용적이었다. 오늘날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폴더블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지만, 2004년 당시만 해도 매우 도전적인 연구 분야였다. 전자소자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었던 그에게 연구실에서 처음 주어진 과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세상의 모든 딱딱한 소재와 전자소자를 휘어지게 만들자는 연구였죠. 당시에 두루마리처럼 말 수 있는 디스플레이(Rollable)가 탑재된 스마트폰 등의 혁신 기술을 이미 연구하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3년간 본격적으로 전자재료와 소자를 연구했죠. 지도교수님이 처음 주신 과제는 딱딱한 실리콘 반도체 소자를 휘어지는 플라스틱 기판위에서 구현해 보라는 것이었어요. 제가 원래 전자소자를 공부한 사람이 아닌데 이 주제를 맡아도 되겠느냐고 여쭤봤더니 바로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공학 박사이기 때문에 무슨 연구든 할 수 있다’고요. 연구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이니 배경 지식의 차이로 시간이 더 걸릴 뿐, 결국 해낼 수 있다는 의미였어요. 그분 역시 원래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바이오 전자소자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 되셨죠.”

 

안종현 교수의 유연 전자소자 연구는 그렇게 시작됐다. 기존 반도체 웨이퍼에 적용되는 단결정 실리콘은 딱딱하지만, 이를 100∼200나노미터 수준으로 얇게 만들어 플라스틱에 붙이면 휘어지면서도 우수한 반도체 특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연구는 그의 첫 논문으로 이어졌다. 이후 3년간 유연 전자소자 연구를 지속했고, 실리콘과 탄소나노튜브, 질화갈륨(GaN)  등의 소재를 3차원으로 적층해 플라스틱 위에 구현한 연구는 <사이언스(Science)>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새로운 분야에서 잇달아 앞선 성과를 내며 큰 주목을 받은 그는 2008년 교수직 제안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래핀을 활용한 유연 전자소자의 상업적 활용성 증명

귀국 후에도 안 교수의 연구 지향점은 한결같았다. 일상에 적용돼 삶의 편익을 높일 수 있는 기술, 현실화할 수 있으면서도 세상을 변화시킬 혁신적인 기술을 향해 나아갔다. 박사후연구원 시절 수행한 연구를 심화하는 동시에 응용 분야를 넓히는 연구를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차별화된 연구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이는 플렉서블 전자기기에 적용할 새로운 소재를 찾는 연구로 이어졌고, 그래핀(Graphene)에 주목했다. 관련 논문을 접하며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한 층으로 배열된 소재로, 실리콘보다 얇고 유연하면서도 우수한 전기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그래핀이라는 소재가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주로 물리학자들이 기초적인 특성을 연구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래핀으로 유연 전자소자를 개발하려는 연구는 거의 없었죠. 실리콘처럼 구입할 수 있는 소재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그래핀 합성을 연구하는 교수님과 의기투합해 공동연구를 진행했고, 웨이퍼 크기의 대면적 그래핀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담은 첫 논문을 발표했어요. 이후 이 연구를 바탕으로 어떤 유연 전자소자를 만들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터치패널을 떠올렸죠. 마침 스마트폰이 등장하던 시기였는데, 그래핀으로 휘어지는 터치패널을 만들면 휴대전화를 접거나 말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본격적인 실용화 연구를 시작했고 2010년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그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그래핀 기반 플렉서블 터치패널’ 연구 결과는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에 게재됐으며 표지 논문으로도 선정됐다. 그래핀을 활용한 유연 전자소자의 상용화 가능성을 제시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성과였다.

 

“논문을 발표하고 넉 달쯤 뒤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는데, 그래핀을 발견한 연구자들이 선정됐어요. 노벨상위원회가 수상 이유를 설명하며 제 논문을 주요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죠. 그래핀이 전자소자 등에 활용될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물질이라는 사례였어요. 저도 처음에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수상자와 그래핀에 관한 기사를 준비하던 기자가 제게 전화해서 알게 됐어요. 실제로 수상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들었고요. 제가 교수가 된 지 3년 차였는데, 덕분에 젊은 조교수 시절을 화려하게 보냈죠.(웃음) 노벨상이 수여되는 순간에 제 연구가 근거로 활용되고, 제가 그 현장에서 현역 연구자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이어졌다.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특집호에서는 그의 논문을 해당 저널에 게재된 논문 가운데 ‘공학 특허에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 즉 논문 피인용 횟수를 기준으로 한 상위 1% 연구자(Highly Cited Researcher)에 연속 선정되며 이 분야를 선도하는 과학자로 자리매김했다.

 

전자소자 연구에서 의료기기 연구로 확장

안 교수는 그래핀을 활용한 플렉서블 전자소자의 응용 범위를 바이오 분야로 넓혔다. 피부에 붙여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측정하는 의료기기, 몸에 착용해 신체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살피는 웨어러블 센서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최근까지 뇌의 전기신호를 정밀하게 감지하는 센서 연구를 심화해 왔다.

 

“2015년쯤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뇌파를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뾰족한 바늘 형태의 전극을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그래핀으로 만든 휘어지는 소자를 이용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그렇게 공동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바이오 분야는 처음이라 동물실험을 비롯해 해 보지 않은 일이 많았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어요. 그러다 쥐를 대상으로 실험했는데 뇌파를 매우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었고, 전기 자극을 전달하는 것도 가능했어요. 뇌전증 치료에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뇌전증은 전 세계 약 5천만 명이 겪는 질환이다. 뇌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이상 전기신호로 인해 의식을 잃거나 발작을 일으킨다. 대부분 약물로 조절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의 불편이 크고, 약물로도 조절하기 어려운 환자도 적지 않다. 이상 전기신호를 빠르게 감지해 역으로 전기 자극을 가하면 발작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발상이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한 뒤 나타난 큰 반향에 안 교수 자신도 놀랐다.

 

“사실 저 자신도 이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발표 후 여러 언론은 물론 환자분들에게도 문의가 왔고,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님에게 세미나 요청도 받았어요. 당시 사람의 뇌파를 정밀하게 측정할 방법이 충분하지 않다며 기술을 잘 개발해 달라고 당부하셨죠. 그 일을 계기로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바이오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추구해 온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였다. 뇌전증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모니터링하는 뇌신경 센서 기술을 목표로 10여 년간 공동연구를 이어 온 그는 그래핀과 이황화몰리브덴(MoS₂) 같은 2차원 소재를 활용해 뇌신경 센서를 개발해 왔고, 2024년 큰 뇌수술 없이 간단한 시술로 주입할 수 있는 뇌신경 센서 연구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매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다. 이후 한 단계 더 발전해, 뇌 표면의 미세한 신호까지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유연한 뇌파 센서를 개발했다. 2025년부터 1년간 진행한 임상시험에서도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으며,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승인을 받으면 또 하나의 세계 최초 성과로 기록될 전망이다.

“심장이나 위 같은 다른 장기는 작동 원리가 상당 부분 밝혀져 치료법도 많이 발전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정복하지 못한 영역이 뇌입니다. 우리는 뇌에 관해 아직 10%도 알지 못하죠. 그래서 그래핀 같은 2차원 소재를 뇌공학과 연결하는 연구에 빠져들게 됐어요. 처음에는 휘어지는 소재를 만들었고, 그 소재로 플렉서블 터치패널을 개발했어요. 활용 범위를 넓혀 피부나 옷에 부착하는 센서와 전자기기를 만들었고, 이제 의료기기로까지 확장됐죠. 이를 더욱 실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근본적인 치료 분야로 연구를 이어 왔고,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뇌전증뿐 아니라 뇌졸중과 파킨슨병을 비롯한 다양한 신경질환의 정밀 진단과 치료, 나아가 뇌 신호로 외부 기기를 제어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 2차원 반도체 집적소자 개발

안종현 교수는 지난 2026년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연구사업 ‘리더연구’ 유형A 연구자로 선정됐다. 리더연구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를 선정해 최대 9년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국가 최고 수준의 기초연구 지원사업이다. 안 교수의 선정은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다. 첫 번째 과제에서 그래핀을 활용한 고성능 반도체 전자소자를 개발했다면, 이번에는 ‘2차원 반도체를 활용한 고성능 3차원 집적소자 개발’을 목표로 한다. 매우 얇은 2차원 반도체 소재로 기존 실리콘 반도체의 성능과 집적도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구조를 구현하려는 것이다.

 

“매우 얇으면서도 실리콘처럼 반도체 특성을 지닌 이황화몰리브덴을 활용해 다양한 전자소자를 개발하고자 합니다. AI가 발전하면서 요즘 D램 메모리를 여러 층으로 높이 쌓고 있잖아요. 하지만 실리콘 반도체를 적층하려면 800 ℃ 이상의 높은 온도가 필요해 금속 전극이나 배선이 손상될 수 있어요. 2차원 반도체를 활용하면 공정 온도를 400℃ 이하로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얇은 소자를 여러 층으로 쌓은 3차원 집적소자를 더욱 원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수년 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주제인 만큼 이번 연구과제를 통해 꼭 실현해 보고 싶습니다.”

 

이번 과제를 통해 이루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소자를 여러 층으로 쌓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재 반도체 시스템에서는 연산을 담당하는 소자와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소자, 정보를 읽어 들이는 센서가 각각 별도의 칩으로 존재하며 서로 연결돼야 한다. 안 교수는 이처럼 각기 다른 역할을 맡은 소자들을 수직으로 쌓아 하나의 칩으로 집적한 고효율 소자를 개발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챗GPT 같은 인공지능에 질문을 입력하면 데이터가 외부의 중앙 네트워크로 전송돼 연산과 판단 과정을 거친 뒤 다시 결과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면 거대한 시스템이 필요하고 전력 소모도 많으며 정보를 얻는 데도 시간이 걸려요. 이와 달리 온디바이스(On-device)는 중앙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고 하나의 기기 안에서 정보를 직접 처리해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개념입니다. 앞으로 9년간 진행할 리더연구를 통해 이를 실현해 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기술이 실현되면 바이오센서 연구도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외부 연산 장치 없이 뇌파를 감지하고 분석하는 기능을 하나의 칩에 구현해 뇌에 이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뇌파를 모니터링하다가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환자에게 즉시 알릴 수 있고, 크기가 작고 발열도 적어 뇌 표면에 부착하는 데 따르는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이번 리더연구 선정을 통해 안 교수는 연구를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학교의 지원과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우수 연구자들의 존재를 새삼 실감했다. 연세의 연구 역량은 그에게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다.

 

“리더연구는 국내 개인 연구자가 수행할 수 있는 가장 명예롭고 규모가 큰 과제 가운데 하나예요. 장기간에 걸쳐 한 연구자의 능력과 아이디어를 믿고 지원하는 사업인 만큼 학계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연구자들이 선정됩니다. 우리 대학교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리더연구자를 배출했다는 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학계를 이끄는 연구자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한 명의 리더연구자가 탄생하려면 젊은 시절부터 10년 이상 지속적인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대학교가 오랜 기간 우수한 연구자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왔기에 이러한 결실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젊은 연구자들이 세계적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이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상상력 가득한 버킷리스트에서 꺼내 쓰는 연구 아이디어

안종현 교수의 머릿속에는 늘 연구 아이디어를 담아 둔 버킷리스트가 있다. 생활 속 경험에서 우연히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하나의 연구에서 출발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새로운 주제로 확장되기도 한다. 상상력으로 가득한 버킷리스트는 그가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고 고정관념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생활 속 경험이 녹아 있는, 꼭 실현해 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늘 가득해요. 아직 현실로 만들지 못한 것이 더 많죠. 그래서 마음속에 연구 아이디어를 담은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어요. 연구를 하다가 연관된 기술을 발견하거나 함께할 연구자를 만나고, 새로운 연구를 시도할 환경이 마련되면 그 버킷리스트에서 하나씩 꺼내 실현해 나갑니다. 물론 실패한 것도 셀 수 없이 많고요.(웃음)”

 

평소 품고 있던 상상과 개인적인 경험이 실제 연구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2018년 개발한 2차원 반도체 기반 생분해성 바이오센서는 대학원 시절의 경험과 다소 엉뚱해 보이는 상상이 결합해 출발했다. 이 연구 결과 역시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대학원 시절 큰 교통사고를 당해 광대뼈가 으스러졌고, 오른쪽 볼 안에 철심 여러 개를 박았어요. 철심을 빼는 고통이 더 클 테니 그냥 지내라는 말을 듣고 아직도 빼지 못했죠. 그러던 중 2006년 특정 신체물질이 2차원 반도체를 녹이는 특성을 발견했어요. 그때 철심을 제거하는 고통 없이 몸속에서 저절로 녹아 없어지는 의료기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안 교수는 열린 사고와 창의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창의성이야말로 그가 생각하는 과학자의 핵심 자질이자 역량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꾼 수많은 혁신은 결국 이전에 없던 생각과 과감한 도전에서 시작됐다.

 

“학생들에게 늘 ‘창의적인 사람이 돼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요. 그것이 연구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자 과학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려면 호기심을 많이 가져야 해요. AI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를 북돋기 위해 안 교수는 어려운 시험 문제를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만 그가 강조하는 창의성은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수업에서 배운 지식에 창의적인 사고를 결합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구하는 문제들은 학생들을 진땀 흘리게 한다.

 

“학부와 대학원을 가리지 않고 시험의 마지막 문제는 주로 창의성을 확인할 수 있는 문제로 냅니다. 수업에서 배운 지식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학생이 기업이나 연구소의 연구자가 됐을 때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갈 것인지 묻는 것이죠. 기대만큼 새로운 답을 내놓는 학생이 많지는 않아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암기하고 정답을 찾는 방식의 공부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가끔 저를 깜짝 놀라게 하는 학생들도 있어요. 그런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발전하는 것이겠죠.”

 

기술 혁신과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고파

안종현 교수는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도록 교수이자 연구자로서 정진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현재 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입니다. 학생들을 잘 이끌어 그들이 우리 반도체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고 혁신하며 계속해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이 공대로 진학하곤 했어요.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 되고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고도화될 수 있었던 것도 그분들의 노력이 이제 결실을 맺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10년, 20년 뒤에 경제력을 유지하고 과학기술 강국으로 남으려면 학생들이 창의적인 연구개발에 매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 노하우를 전수하며 그 길을 이끌어 주고 싶습니다. 연구자로서는 앞으로 9년 동안 리더연구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학술적인 연구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반도체 소재와 소자를 개발하고, 이를 뇌공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적용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안종현 교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기술을 상상하고 현실로 만드는 것이 연구자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가 그리는 기술의 미래는 언제나 사람과 일상을 향해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낯선 분야를 향한 과감한 도전으로 이미 우리 삶의 변화를 이끌어 온 안 교수. 그의 버킷리스트에서 다음으로 꺼내 들 아이디어는 무엇일까. 그 상상이 또 하나의 혁신으로 현실이 되고,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바꿀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