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사람을 잇고, 기업의 미래를 열다
- 2026.09.16
한국 기업들이 낯선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 배영수 동문은 그 변화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중어중문학 전공과 회계사의 전문성,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소통 능력을 바탕으로 20여 년간 한중 기업의 인수합병과 중국 시장 진출을 이끌어 왔다. 서로 다른 제도와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국경 너머의 현장에서 기업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성장의 길을 열어 온 배영수 동문은 이제 빠르게 재편되는 중국 시장을 바라보며 한중 비즈니스의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다.
1988년, 배영수 동문은 중어중문학과에 진학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기 전이었고,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우는 일조차 흔치 않았다. 인문 계열의 외국어 전공 가운데서도 중어중문학은 크게 주목받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배 동문은 성적에 맞춰 전공을 정하기보다 앞으로 더욱 커질 중국의 경제적 위상과 한중 교류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중어중문학을 선택했다. 그에게 일찍부터 중국어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해 준 사람은 외삼촌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매번 방학 때면 외삼촌 댁에 내려가 한 달 정도 지내다 오곤 했어요. 당시 한학에 조예가 깊으셨던 외삼촌께서 매일 저와 사촌형제들을 앉혀놓고 명심보감, 소학 등을 반강제적으로 가르치셨어요. 한문 서예도 함께 배웠어요. 처음엔 내용이 어렵기도 하고 지루했지만, 몇 년 동안 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자와 한문에 익숙해졌죠. 또 1978년에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했는데, 1980년대는 한창 중국이 대외 개방을 추진하며 국제적으로 존재감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아직 한국과의 교류는 없었지만요. 선견지명이라고 할까요. 그런 시대의 흐름을 외삼촌께서는 보신 것 같아요. 한학 공부를 시키실 때도 항상 중국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중국에 관심을 많이 가지라고요. 먼 훗날에는 중국이 미국에 맞먹는 위상을 갖게 될 것이고, 중국어가 영어만큼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하셨죠.”
외삼촌의 말은 막연했지만 설득력이 있었다. 여기에 국사 교사였던 담임 선생님의 권유도 우연찮게 같았다. 당시 많은 학생이 선호하던 영문과나 불문과보다는 이제 중문과가 더 경쟁력 있을 것이라는 말에 배영수 동문은 중문과 진학에 확신을 갖게 됐다. 당시 중국과의 관계를 확장하려는 외교적 움직임까지 더해지면서 중국의 가능성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많은 대학의 중문과 가운데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은 확고했다. 고3 여름에 방문한 연세 캠퍼스의 분위기와 풍경은 그가 상상했던 바로 그 대학의 모습이었다.
배영수 동문의 대학 시절은 다채로운 경험과 치열한 시간들로 가득했다. 88학번인 만큼 학생운동의 한가운데 있었고, 그는 다양한 학내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사회 문제 해결에 관심을 두고 관련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을 냈다.
“저는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1980년대 후반에는 민주화, 통일, 노동운동이라는 세 가지 주제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큰 이슈였어요. 입학하자마자 선배들과 세미나를 하며 토론도 하고 현장에서 투쟁도 했죠. 또 풍물패 ‘한울두레패’에서 북과 장구를 배우고 일 년에 두세 번씩 축제 무대에서 공연하기도 했어요. 농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죠. 당시 학생회 외에도 풍물패 같은 동아리는 학생운동의 또 다른 플랫폼이기도 했어요. 이런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사회에 새롭게 눈을 뜨고 사회 참여 의식을 갖게 되면서 함께 현장으로 나가게 됐죠.”
이 외에도 배 동문은 고교 동문회 ‘미남회(미림여고 & 남강고 연합동문회)’ 활동 등에 참여하며 사람들을 이끌고 모으는 경험을 많이 했다. 스스로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때문에 자연스레 도맡게 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하지만, 그에게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을 즐기는 성향과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분명히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대학 시절의 경험은 배 동문이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과 삶을 살아가는 철학의 기반이 됐다.
“대학 시절의 다양한 경험이 현재 제가 하고 있는 M&A·경영 컨설팅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제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정립하는 데는 분명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학생회나 농활 활동을 통해 당시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을 보는 눈이 생겼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간접 경험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죠.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야말로 가장 값지죠. 아직도 그 인연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며 희로애락을 나누고 있으니까요.”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며 중국 생활 21년째를 맞은 그는 최근 한국과 북경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국제학교 출신인 자녀들이 한국 대학으로의 진학을 선택하면서, 행정학과 3학년(21학번)인 아들과 영문학과 2학년(25학번)인 딸이 모두 연세 가족이 되었다. 2년 전 아이들을 위해 신촌 근처에 거처를 마련한 배 동문은 오랜만에 캠퍼스를 둘러보며 대학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백양로를 비롯해서 캠퍼스 곳곳의 달라진 풍경이 낯설기도 했지만, 자녀들이 대학 생활을 이어 가는 모교의 변화는 반가웠다.
“너무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차가 다니던 백양로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었고, 새로 생긴 지하 공간인 백양누리는 정말 멋있고요. 없던 건물들도 늘었고, 기존 건물들도 리노베이션돼 깔끔하고 현대적이더라고요. 예전에는 아무 건물이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출입이 제한돼 있는 것도 놀랍기는 했어요. 예전에는 밤새 술 마시고 막차가 끊기면 종합관(현 교육과학관)의 동아리방, 학회방 같은 데 가서 자고 그랬거든요. 그래도 캠퍼스가 더 좋은 환경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대학 졸업 후 배영수 동문은 은행에 입사해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가 담당한 업무는 기업금융, 즉 기업 대출과 무역금융이었다. 기업 대출 가능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재무제표 분석과 신용평가를 수행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경영의 언어인 회계학이 필수였다. 중문을 전공한 순수 인문계 출신인 그에게는 너무나 낯선 언어였다.
“사수 계장님으로부터 기초부터 하나씩 배웠어요. 주판으로 맞아 가면서요.(웃음) 그렇게 배우다 보니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 보고 싶어 회계 학원에 다니며 회계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퇴근 후와 주말을 활용해 공부하면서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시험에 도전했어요. 몇 개월간 은행 일과 병행하며 공부하다 보니 한계가 느껴져 결국 은행을 그만두고 풀타임으로 준비해 합격했습니다.”
1년 반 정도 공부한 끝에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이내 글로벌 회계법인 PwC코리아(삼일회계법인)에 입사했다. 그가 회계사라는 전문직에 도전한 데에는 커리어 성장에 대한 열망도 있었지만, 당시 IMF 외환위기라는 사회적 격동 속에서 전문성을 갖춰 커리어의 안정성을 확보해야겠다는 절실함도 한몫했다.
“1996년에 입행했고 1997년 말에 IMF 외환위기가 일어났죠. 신입 행원일 때 외환위기를 겪은 거예요. 다니던 은행도 다른 은행과 통폐합됐죠. 그 과정을 몸소 겪은 것도 회계사 시험에 도전하게 된 동기가 됐어요. 은행이라는 안정적인 직장도 내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으니까요. 또 제가 하던 업무가 기업 재무 분야라 연관성이 있기도 해서 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회계법인에 입사하게 됐어요.”
회계법인에 입사한 후 배 동문은 기업 간 인수합병(M&A, Mergers & Acquisitions)을 비롯해 은행이나 저축은행이 보유한 부실채권을 모아 판매하는 NPL(Non-Performing Loan, 부실채권) 업무, 이를 모아 유동화증권으로 만드는 ABS(Asset-Backed Securities, 자산유동화증권) 업무를 다수 담당했다. 당시 IMF 외환위기로 한국 기업이나 부동산이 헐값에 매물로 나오고 은행들이 보유한 부실채권을 해외 투자은행(IB)에 파는 일이 잦았다. 은행에서 기업금융 업무를 경험한 그에게는 역량을 발휘할 기회였고, 회계법인에서 관련 업무도 활황을 맞았다. 그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200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이 열리면서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이 물밀듯이 이어졌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국제 경제 질서를 따르게 되면서 관련 법규가 정비됐고, 국내 기업이 M&A를 통해 중국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일도 늘었다. 회계법인에도 새로운 시장이 열렸고, 이것이 그에게는 도약의 기회가 됐다.
“중국 출장을 갈 일이 많이 생겼는데, 그럴 때는 무조건 제가 가는 거죠. 당시 PwC코리아 내에서 중문과 출신으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거든요. 중국 관련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제가 차출됐죠. 그렇게 중국 M&A를 계속 경험하다 보니 이 시장이 크게 성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제 전공과 회계사라는 전문성, M&A 경력을 잘 조합하면 중국 관련 M&A 전문가로서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중문과를 선택하던 때 그가 확신했던 미래의 가능성이 결국 들어맞았다. 그렇게 중국 전문 회계사의 꿈을 키워가던 중 또 다른 글로벌 회계법인인 KPMG코리아 중국사업팀의 팀장으로 스카우트됐다. 그가 바랐던 역할이었기에 흔쾌히 자리를 옮겼다.
이직 후 첫 2년은 중국이 아닌 서울에서 한국과 중국 기업 간의 M&A 업무를 담당하고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을 자문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출장을 밥 먹듯이 가던 시기였다. 중국 현지에서 근무해 보고 싶다는 바람도 더욱 커졌다. 2005년 드디어 KPMG차이나에 파견되면서부터 배 동문은 21년 동안 줄곧 중국 현지에서 일했다. 첫 3년은 상해에서, 이후 현재까지는 북경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재 그는 KPMG차이나 코리아 데스크에서 주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M&A와 중국사업 전략, 리스크, 구조조정, 경영 컨설팅 등을 담당하는 자문(Advisory) 업무를 맡고 있다.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고객사와 현지 회사, 현지 팀 등을 연결하고 그 사이를 조율하며 이끌어 가는 것이 그의 주요 역할이다.
국경을 넘어 기업 간 인수합병을 돕고 경영 자문을 제공하는 크로스보더 M&A·경영 컨설팅 업무는 쉽지 않다. 국가마다 법률과 규범은 물론 의사결정 방식과 정부의 승인 절차도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사업 환경을 이해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역량이 중요한 이유다. 배영수 동문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고객사의 사업 목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제시한다는 원칙을 지켜 왔다.
“어디까지나 고객사의 이해를 대변하고 고객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게 하는 것이 기본 임무이자 첫 번째 대원칙입니다. 철저히 고객사의 이익에 맞춰 전략을 구상하고 제안하죠.”
회계법인의 M&A 업무는 기업을 사는 인수 자문과 기업을 파는 매각 자문으로 나뉜다. 배영수 동문은 25년여 동안 양측의 자문을 두루 맡으며 경험과 통찰력을 쌓았다. 인수는 적합한 기업을 발굴하는 데서 시작해 기업의 가치와 위험 요인을 검토하고, 거래 조건을 협상해 계약을 마무리하는 과정이다. 기업의 재무 상태뿐 아니라 성장 가능성과 잠재적 위험까지 살펴 인수 목적에 부합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그가 첫 단계인 ‘좋은 기업을 찾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
“괜찮은 기업을 발굴하고 물색하는 단계가 중요해요. 특히 중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중국 시장은 너무 방대한 곳이어서 기업 수 자체가 상상을 초월하거든요. 한 업종에만 수천 개의 기업이 있기도 해요. 이 경우 어떤 기업을 사야 가장 좋을지 판단할 기준이 필요하잖아요. 모래 속에서 진주 찾기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중국 시장에서는 괜찮은 매물 기업을 찾는 일이 품이 많이 들고 또 핵심적이죠.”
좋은 기업을 발굴하는 일은 동시에 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아직 중국 시장에서 공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상장 기업은 5,500여 곳에 불과하다.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네트워크를 총동원하고 발품을 팔 수밖에 없다.
“한국은 시장이 작잖아요. 자동차 회사만 해도 누구나 어떤 회사가 있는지 다 알 정도로요. 하지만 중국에는 우리가 아는 대표 회사 외에도 자동차 회사만 126 개예요. 시장의 규모가 크고 복잡해서 기업 정보를 얻는 것 자체가 어렵고, 정보 수집에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죠. 정보가 공개돼 있지 않은 비상장 기업의 정보는 구하기 어려워 최대한 발로 뛰어야 해요. 관련 분야의 업계 전문가를 섭외해 인터뷰하거나 저희 회사의 중국 조직망, 사내 고객사 데이터베이스 등의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죠.”
배영수 동문은 가치 있는 M&A의 첫 번째 조건으로 인수 목적에 부합하는 거래인지를 꼽는다. 기업마다 인수를 통해 이루려는 목표가 다른 만큼, 그 목표에 맞는 기업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가격이 적정한지, 지금이 인수하기에 적절한 시점인지, 인수 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결국 거래 자체를 성사시키는 데서 나아가 고객사가 원하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기업을 인수한다는 것은 결국 그 회사가 보유한 고객, 영업망 등 인적 자산을 비롯해 생산 능력, 공급망, 브랜드까지 기업이 가진 모든 것을 인수하는 것이에요. 결국 실사 단계에서 재무·법률·기술·산업 전문가들을 통해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실재성과 진실성을 따져 보고 우리 회사와의 적합성도 꼼꼼하게 검토해야 하죠. 여기에 타이밍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한국 대기업은 의사결정 구조가 너무 복잡해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해요. 하지만 기업이 인수합병을 하는 것은 사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줄이기 위해서잖아요. ‘M&A는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매도자 입장에서도 빠르게 제값을 받고 깔끔하게 떠나는 게 가장 좋고요. 거래 과정에서 보고 절차에 매몰돼 2년 이상 시간이 소요될 때는 인수합병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죠.”
인수합병과 투자는 기업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요한 경영 활동이다.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지만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떠안아야 하는 위험도 크다. 그만큼 의사결정의 판단 기준과 자신만의 업무 원칙이 중요하다.
“M&A는 종합예술과도 같아요. 하나의 거래가 마무리되기까지 1년에서 1년 반이 걸리는데, 그사이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거든요.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으로 거래가 깨질 뻔한 일도 많아요. 국가 간 거래라 정부의 승인이나 외교 관계에도 영향을 많이 받죠. 그래서 인내심이 정말 필요해요. 그 시간을 견디면서 잘될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도 가져야 하죠. 내 이익만 앞세워서는 거래가 성사될 수 없어요. 서로 맞춰 가며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죠. 결국 협상은 사람을 대하고 소통하는 일이잖아요. 진실성이 중요한 이유예요. 신뢰가 깨지면 대화도 이어 가기 어렵고 거래도 무산되니까요.”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배 동문은 2000년부터 200여 개의 인수합병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수많은 성공 사례를 써내려왔다. 그중 그의 기억에 큰 보람으로 남은 두 가지 프로젝트가 있다. 현지 기업과 합자회사를 설립하고 현지화 전략을 통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사례들이다.
“2005~2006년에 진행된 한국전력의 중국 산서성 정부 산하 국영 화력발전소 인수 프로젝트였어요. 당시 한국전력이 5억 달러 정도를 투자해 제2대 주주로 참여하고, 제1대 주주인 중국 정부와 대규모 합자 발전 회사를 설립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죠. 그 거래는 아직까지도 국내 공기업들의 해외 M&A 가운데 최대 규모예요. 공기업이 해외에서 대형 M&A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과감하게 해외로 나가 현지 사업 기반을 갖췄고 벌써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운영되고 있어 뜻깊죠.”
또 다른 성공 사례는 현대해상화재보험의 중국 법인 M&A 프로젝트이다. 이 법인은10년 넘게 한국 본사가 100퍼센트 경영을 주도하는 외상독자 법인 구조였지만, 중국 시장에서 그 운영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중국 유력 기업을 신규 대주주로 유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중국의 우버라 불리는 디디그룹과 컴퓨터·휴대전화·통신기기 등을 만드는 레노버그룹의 지분 투자를 유치해 디디그룹 플랫폼의 수천만 운전자에게 운전자보험을 판매하고, 레노버가 소유한 많은 공장 건물을 대상으로 화재보험을 판매하는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주도한 현대해상의 지분 매각 프로젝트가 합자법인 전환과 현지화 성과로 이어진 만큼, 그에게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다.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과 함께 경력을 쌓아 온 배영수 동문은 최근 시장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차이나 드림’을 꿈꾸며 중국으로 향하던 시기와 그 결실을 누리던 전성기를 지나, 중국 기업의 빠른 성장과 경쟁 심화로 현지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하는 한국 기업이 늘었다. 그가 맡는 업무에서도 한국 기업의 중국 기업 인수 의뢰는 줄고, 반대 방향의 거래는 늘고 있다. 그러나 배 동문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한중 기업이 함께 성장할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다.
“이제 한국 기업들도 중국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어요. 저는 이를 ‘차이나 비즈니스 2.0’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AI, 바이오, 로보틱스, 신재생에너지 같은 신산업에서 중국도 강점이 있지만 우리도 우리만의 강점이 있거든요. 서로의 경쟁력을 잘 조합하면 윈윈할 수 있죠. 관련 리서치 의뢰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고요.”
변화하는 시장에서 오랜 시간 일해 온 그에게 든든한 힘이 돼 준 것은 동문들이다. 첫 근무지인 상해부터 현재의 북경까지, 동문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끈끈한 인연을 이어 왔다. 대학 시절부터 사람들과 어울리고 이끄는 데 적극적이었던 배 동문은 상해 동문회에서 재무총무를 맡았고, 북경 동문회장에서는 회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한중 수교 이후부터이니 거의 30여 년 동안 동문회가 지속되고 있어요. 현재는 한국 기업 진출 전성기와 비교해 인원수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현지에 있는 동문끼리 열심히 모이고 있습니다. 매년 골프 연고전을 상해와 북경에서 개최하기도 해요. 서로 비즈니스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받죠. 아무래도 해외에 있다 보니 국내에서보다 더 끈끈한 관계가 되는 것 같고, 언제나 동문들이 있어 현지 생활이 외롭지 않고 든든합니다.”
배영수 동문은 M&A와 금융, 컨설팅 업무가 모두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사람이 주도하며 사람이 변수가 되는 일이기 때문에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도전해 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않기를 권한다.
“M&A와 금융, 컨설팅은 사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거든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협상하고 조율하는 일이죠. 관계가 중요하고 소통이 핵심인 일이에요. 또 인간에 대한 이해나 소통은 특히 인문학 전공자들이 배우는 문화, 역사, 철학 등에 관한 소양을 갖춰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소통을 통해 서로 윈윈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이 기본적으로 M&A와 금융이기 때문에 이 업종에서는 아직까지 인문학 전공자들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커요. 인문학적 배경을 소프트웨어 자산으로, 경영학과 회계 지식을 도구인 하드웨어로 갖추면 충분한 경쟁력을 지닌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해요.”
그는 특히 M&A 분야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수행하기 어려운 대체 불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많은 일이 AI로 대체되는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전히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몇몇 직종 가운데 하나가 바로 M&A가 아닐까 싶어요. 서로 눈빛을 맞춰 가며 소통하고, 공식 협상 테이블이 아닌 자리에서도 진심을 나누며 인간적인 소통을 통해 인수 조건을 조율해 나가는 M&A의 숨은 영역을 과연 AI가 대신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그가 현장에서 경험한 M&A와 금융, 컨설팅은 결국 하나의 정답을 찾는 영역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의 교집합을 찾아가며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이 본질인 셈이다.
퇴임을 약 3년 앞둔 배영수 동문은 요즘 은퇴 후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을 떠나 오랜 시간 타지에서 생활했으니 고국에서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지는 않을까 싶지만, 그는 그동안 자신이 쌓아 온 커리어 자산을 필요한 이들과 나누며 그들의 성장을 돕고 싶어 한다.
“앞으로도 한국 기업들에 중국 시장이 중요한 만큼, 제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한 기업들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중국에서 사업해 보고 싶어 하는 한국 기업들에 과거의 경험과 지식,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원하고 싶고, 중국 시장에 관심이 있는 후배들에게도 제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싶어요. 또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데도 힘쓰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중국의 한 측면만 보고 생긴 부정적인 정서가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거든요.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이 중국 현지에 진출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기술 개발에 재투자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측면도 있거든요.”
중국 현지 근무를 열망했던 20여 년 전, 배 동문은 자신이 이렇게 오랜 시간을 중국에서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 긴 시간 동안 현지에서 수행한 200여 건의 프로젝트는 더없이 귀중한 노하우로 쌓였다. 그 안에는 국경을 넘나들며 숨 가쁘게 마주했던 고객사들의 요구, 서로 너무나 다른 현지 사람들과 치열하게 협상했던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예측할 수 없는 위기 속에서 진땀을 뺐던 순간들이 담겨 있다. 그보다 중국 M&A 시장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는 이가 또 있을까. 이제 그는 그 경험을 중국 시장에 도전하는 기업과 후배들에게 나누려 한다. 국경을 넘어 사람과 기업을 이어 온 그의 길은,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이들의 곁에서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