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재료로 오래 사랑받는 맛을 굽다

김희연 라 본느 타르트(La Bonne Tarte) 대표(정치외교학 87)
  • 2026.07.14

라 본느 타르트(La Bonne Tarte)의 이름은 ‘좋은 타르트’라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김희연 동문은 좋은 재료와 정직한 과정,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한 맛을 지키며 20여 년간 연세동문길에서 타르트와 빵을 구워왔다. 한때 요리를 배우는 일이 삶의 작은 숨통이었던 그는 이제 딸 오은영 동문과 함께 가게를 이어가며 100년 가게의 꿈을 키우고 있다. 유행보다 기본을, 빠른 확장보다 변하지 않는 맛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라 본느 타르트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봤다.

 

의지할 수 있는 인연을 만난 대학 시절

김희연 동문은 어린 시절 단 한 번도 자신이 빵과 파이를 굽고 가게를 운영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외교관을 꿈꿨기에 자연스레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다.

 

“외교관이 되려면 1학년 때부터 단단히 마음먹고 준비했어야 했는데, 저는 막연하게 1학년 때는 자유를 만끽하고 2학년 때부터 해보자고 생각했죠. 연희관 지하에는 ‘화백실’이라고 행정고시, 외무고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방이 있었는데 시험을 봐서 들어가야 했어요. 뒤늦게 고시를 준비하려던 제 실력으로는 부족했죠. 고시는 정말 엉덩이가 무거운 친구들이 하는 게 맞더라고요. 저는 아니었죠.(웃음)”

 

외무고시는 접었지만, 그가 기억하는 대학 시절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당시 정치외교학과는 총 110명 규모였고, 그중 여학생은 18명이었다. 민주화의 격변기 속에서도 김희연 동문은 동기들과 깊은 우정을 쌓았고,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평생의 동반자가 된 남편과도 연세에서 만났다. 김 동문에게 연세는 배움의 공간이자, 삶의 중요한 인연들이 시작된 마음의 고향이다.

 

“딱히 동아리나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아도 학과 안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여학우 동기들과 같이 공부도 하고, 방학 때면 지방에 있는 친구 집에도 가고요. 지금까지도 그 친구들과 의지하면서 잘 모여요. 남편과의 첫 만남도 대학 때였어요. 선배 소개로 한 번 만났는데 그때는 그냥 아는 선후배로 지내자고 했죠. 그런데 졸업 후 학교에 들렀다가 우연히 의대 식당에서 마주쳤어요. 남편이 치대생이었거든요. 다시 보니 이전과 달리 멀쩡한 거예요.(웃음) 그때부터 연락을 이어가게 됐고, 결국 평생을 함께하고 있네요.”

 

요리에서 발견한 새로운 가능성

김 동문은 졸업 후 사회생활을 대기업 법무팀에서 시작했다. 영문 계약서와 관련 서류를 번역하고 해외 법인과 소통하는 일을 주로 맡았다. 해외 기관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은 적성에도 맞았고 재미도 있었지만, 3년간의 직장 생활을 뒤로 하고 퇴사해야 했다. 당시에는 여직원이 결혼 후 임신을 하면 일을 그만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여직원은 모두 유니폼을 입어야 했는데, 임신한 사람들을 위한 유니폼은 따로 지급되지 않았어요. 배가 불러 오면 암암리에 그만둬야 할 때가 됐다고 느끼는 분위기였죠. 같은 부서 상사들은 더 다녀보라고 권하셨지만 회사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어요.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김 동문의 경력은 일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배려의 한계 속에서 중단됐다. 그러나 그는 삶의 전환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퇴사 후 육아를 하면서 퀼트, 포슬린 아트, 요리 등 다양한 취미 생활에 도전했던 김희연 동문은 그중에서도 요리에 깊은 흥미를 느꼈고, 인생의 새로운 행복을 찾고 제2의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요리 특강을 찾아다니며 들었어요. 온전히 아이만 보는 것도 힘이 드니까 제 시간도 필요했죠.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외출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요리가 저하고 잘 맞더라고요. 저보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이 추천해 준 유명 선생님들의 소그룹 특강을 들었어요. 그게 몇 년씩 쌓이다 보니 초보 주부 특강에서 프로페셔널한 선생님들의 특강까지 가게 됐고, 요리를 잘하시는 분들과 섞여 배우기도 했죠.”

 

10여 년 동안 한식, 중식, 일식, 베이킹 등 다양한 요리를 배우며 내공을 쌓았다. 난도 높은 과정까지 섭렵하다 보니 요리 업계 전문가들과의 만남도 이어졌고, 이는 삶의 활력이자 다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유명 라이프스타일 잡지인 『행복이 가득한 집』의 요리 파트 기자들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덕분에 잡지나 요리책의 레시피를 감수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죠. 한 번은 요즘 ‘흑백요리사’로 유명해진 선재 스님의 요리책 레시피 감수를 하기도 했어요. 사실 선재 스님 요리에는 레시피가 따로 없어서 기자들이 가서 요리하는 것을 보고 적어 와요. 간장 두 숟가락, 소금 한 꼬집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너무 급하게 적어 오면 실제 요리와 하나도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요리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레시피 감수를 맡기는 거예요. 콩조림이라고 적어 온 레시피에 말도 안 되는 조미료의 양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체크하는 거죠. 너무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연세동문길에서 시작한 ‘좋은 타르트’의 꿈

요리의 세계에서 새로운 재미와 기회를 찾은 김희연 동문은 이 분야에서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싶어졌다. 그렇게 고민한 것이 창업이었다. 마흔이 되기 전 ‘내 가게’를 열고 싶다는 꿈을 품었고, 장소도 우리 대학교 동문(東門) 근처로 일찌감치 마음속에 정해 두고 있었다.

 

“제가 만든 음식이나 디저트를 대접하면 다들 맛있다고 칭찬해 주시더라고요. 당시 아이들도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에 다니다 보니 동문 쪽이 익숙하기도 했고요. 그때는 지금보다 호젓한 주택가 느낌이 참 예뻤어요. 그래서 여기에 가게를 내보고 싶었죠. 그런데 제 성향이 겁도 많고 내성적이라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유치원 학부모 두 명과 의기투합하게 됐어요. 그중 한 분이 정말 적극적이었거든요. 마음먹으면 다음 날 바로 계약하러 가는 스타일이요. 으샤으샤 하면서 그렇게 가게를 열게 됐어요. 지금 생각하면 가게 운영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잘 몰랐던 거죠.”

 

그렇게 가게를 연 것이 2004년. 콘셉트는 ‘내 아이에게 먹일 수 있는 건강한 홈메이드 디저트’였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지금처럼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디저트 가게의 개념이 없었다. 디저트를 먹으려면 으레 제과점의 케이크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미국에 여행을 가면 파이 전문점들이 많았는데 국내에는 디저트 전문점이 거의 없었어요. 새롭기도 했고, 음식보다는 디저트가 나을 것 같았어요. 우리 아이에게 먹여도 부끄럽지 않은 재료로 시작해 보자 싶었어요. 당시 유기농 식재료를 판매하는 한살림 재료로만 모든 파이를 만들었죠. 그래서 타르트 종류는 많지 않았어요. 사과, 호두, 단호박, 고구마 네 종류였어요. 인테리어도 테이블 한 개를 두고 작은 가정집 주방처럼 꾸몄고요. 이름도 ‘엄마가 만든 파이’라는 뜻의 ‘타르트 드 마망(Tarte de Maman)’으로 지었어요.”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가게가 자리 잡기까지의 시간은 매 순간 운영의 현실을 배워 가는 과정이었다.

 

“처음엔 손님이 많지 않았어요. 파이를 들고 나가 낯가림을 하면서 시식을 권하곤 했죠. 학교 근처에 있다 보니 세미나용 대량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밤새 파이를 만들기도 했어요. 동업자가 세 명이니 가게 운영 시간이 12시간이면 1인당 4시간씩 일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가게는 그렇게 돌아가는 게 아니더라고요. 저녁 시간대에 한 명이 당번이 되면 나머지 둘은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난 뒤부터 오후 하교 시간까지 가게에 있다가, 잠깐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다시 마감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교대하곤 했어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월세를 밀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을 정도로 무척 재미있었죠.”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며 연세대와 인근 대학의 학생들, 교직원, 근처 초·중·고등학교 학부모, 지역 주민까지 꾸준히 고객이 늘었다. 맛있고 건강한 파이로 입소문이 났고, 디저트에 대한 관심이 싹트기 시작하던 시기에 파이라는 이색 디저트에 집중했던 점도 주효했다.

 

까다롭게 지켜온 정직한 맛의 기준

2007년 해외로 나가야 하는 동업자의 사정으로 불가피하게 동업을 접게 됐지만, 김희연 동문은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다시 출발점에 서서, 첫 가게 인근의 연세동문길 큰길가로 가게를 확장하고 직원을 고용했다. 타르트 외에도 깜빠뉴, 바게트, 치아바타 등 발효빵 메뉴를 늘렸고, 가게 이름도 ‘라 본느 타르트(La Bonne Tarte)’로 바꿨다. 말 그대로 ‘좋은 타르트’라는 뜻. 처음 가게를 시작했던 마음,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좋은 디저트를 선보이겠다는 뜻을 그대로 이어간 이름이었다.

 

라 본느 타르트가 지금까지 지켜 온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재료와 과정이다. 최대한 좋은 식재료를 사용해 정성껏 만들고, 자극적인 단맛보다는 식재료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맛을 살린다. 좋은 품질의 버터 중에서도 메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버터를 고르고, 가능한 한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와 생산지의 재료를 사용한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모든 식재료에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첫 가게를 열 때처럼 가능하면 유기농 재료를 선호한다.

 

“유기농의 기준과 규제가 매우 까다로워진 데다 재료비가 3~4배까지 인상되는 바람에, 현재는 모든 메뉴에 유기농 재료를 적용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가능한 선에서 최고의 식재료를 사용하려고 해요. 또 버터 같은 경우는 2004년부터 쭉 같은 버터를 사용해 예전 그대로의 퀄리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김 동문이 만드는 디저트의 맛은 담백하다. 요즘 디저트 하면 떠오르는 화려하고 강렬한 맛보다는 기본에 집중한 차분한 감각이 있다. 그 안에는 식재료의 특징을 살리는 섬세함도 담겼다. 라 본느 타르트의 메뉴는 골고루 사랑받고 있는데, 특히 무화과 타르트의 인기가 높다. 타르트와 함께 즐기는 메밀차도 조화롭게 어울린다.

 

타르트에서 빵까지, 기본 위에 더한 새로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라 본느 타르트는 제빵 메뉴를 더하며 새로운 변화를 만들었다. 이는 김희연 동문에게도 성장의 기회였다. 그가 원했던 변화였지만 손님과의 인연으로 찾아온 기회였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디저트 한 분야를 하다 보니 한편으로는 새로운 발전이 없나 싶기도 하거든요. 그런 고민의 시기가 3~5년에 한 번씩 오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전문 학원이나 쿠킹 클래스를 다니기도 했는데, 여전히 모자라다고 느낀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 ‘폴앤폴리나’라는 홍대 앞 유명 빵집을 제가 참 좋아해서 그곳에 레슨을 하는지 물어봤더니 안 한다는 거예요. 직원 파견이라도 해서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1년을 기웃댔죠.(웃음) 그런데 그즈음 단골 손님 한 분의 지인이 그곳 제빵사인데 조만간 그만둘 예정이라고 해서 당장 만나러 갔어요. 만나자마자 그분의 첫마디가 마음에 들었어요. 자식에게 줄 때 부끄럽지 않은 빵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랑 같은 마음이셨죠. 그렇게 인연이 되어 얼마 전까지 10년 넘게 저희 베이킹 파트를 맡아 주셨고, 저도 곁에서 열심히 배웠습니다.”

 

이제는 김희연 동문이 직접 빵을 굽고 있다. 손이 많이 가는 제빵에서도 그는 건강을 위해 더 까다로운 기준을 지키며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새벽부터 정석대로 세 차례에 걸쳐 발효한 반죽으로 만드는 라 본느 타르트의 빵은 신선함이 남다르다. 빨리 빵을 만들기 위해 이스트를 많이 넣고 발효 시간을 단축하면 소화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편의를 위해 미리 반죽해 냉동해 두었다가 출근 후 굽는 냉동 반죽법도 사용하지 않는다. 반죽이 노화돼 맛이 빨리 변하고, 결국 고객들이 느끼는 맛의 차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 동문은 라 본느 타르트의 빵 본연의 맛을 즐기고 싶다면 우선 치아바타를 선택해 보기를 추천한다.

 

모녀에서 파트너로, 100년 가게를 꿈꾸다

라 본느 타르트는 2022년 현재 위치로 다시 자리를 옮기며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았다. 그 사이 김희연 동문 곁에는 든든한 동반자가 함께하게 됐다. 바로 그의 딸이자 또 다른 연세 동문인 오은영 동문(독어독문학 17)이다. 이제 라 본느 타르트는 단순한 가게를 넘어 모녀가 함께 이어가는 가업이 됐다.

 

처음 딸이 이 일을 함께하고 싶다고 했을 때 김희연 동문은 쉽게 찬성하지 못했다. 가게를 운영하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책임이 큰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가게에서 반죽을 만지고 손님을 만나며 자란 오은영 동문의 마음은 확고했다. 그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시기에도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결국 라 본느 타르트에서 답을 찾았다.

 

“사실 로스쿨 준비를 하면서도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을까 생각해 봤을 때 결론이 이 일이었어요. 대학 시절 내내 가게 일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가 만든 결과물이 눈앞에 바로 보이는 것이 좋았고 그것이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가치를 가진다는 점에 보람과 흥미를 느꼈거든요.” — 오은영 동문

 

2021년 오은영 동문은 정식 직원으로 합류했다. 전문 파티시에로 거듭나기 위해 르 코르동 블루 파티시에 과정도 이수했다. 모녀가 함께 일하는 만큼 처음에는 일과 가족의 경계를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방식을 맞춰 갔다. 김희연 동문이 지켜 온 맛과 태도 위에, 오은영 동문은 더 체계적인 운영과 새로운 시장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더하고 싶다.


 

“이제까지는 엄마의 손을 꼭 거쳐야 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저는 시스템을 정립해서 더 체계적으로 운영해 보고 싶어요. 저희 둘 다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오랫동안 사랑받는 한결같은 디저트를 만드는 것이죠. 또 연세동문길, 바로 이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점도 같아요. 이곳을 거점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온라인 시장으로 확장하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 오은영 동문

 

김희연 동문에게 딸의 합류는 든든함이자 새로운 책임이다. 자신이 지켜 온 좋은 재료와 정직한 맛의 기준을 다음 세대가 이어가겠다고 말해 준 일이 고맙고 대견하다. 라 본느 타르트는 이제 한 사람의 가게를 넘어, 모녀가 함께 가꿔 가는 오래 사랑받는 브랜드를 꿈꾸고 있다.

 

오래 사랑받는 맛에는 이유가 있다

올해로 23년 차를 맞은 라 본느 타르트에는 햇수만큼 오래된 단골이 많다. 학교 근처에 들렀다가, 혹은 오랜만에 캠퍼스를 찾았다가 다시 방문하는 졸업생과 교수, 교직원도 많다. 김희연 동문에게 그들과 함께 쌓아 온 시간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졸업하고 다시 오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어제 저녁에는 첫 가게에 자주 오셨던 분이 오랜만에 그 자리를 지나가다가 가게가 없어져서 놀랐다며 웹 지도 검색을 해 보고 찾아오셨어요. 또 한 단골 손님은 근처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인데 아직까지도 자주 들러주시고, 학교에서 필요한 게 있을 때 주문을 해 주세요. 대학원 때 막 결혼했던 분이 20년이 지나 고3 아이의 입시 면접 때문에 학교에 오셨다가 오랜만에 들러주신 적도 있고요. 부모님들이 아이를 안고 오셨는데, 그 아이가 이제 초등학생이 돼서 ‘아줌마’ 하고 저를 부르면서 들어와요. 손님들이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줘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보람도 느끼지만, 스스로 긴장도 돼요. 변함없이 맛과 품질을 유지하면서 더 좋은 태도로 응대하고 발전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때로 손님들은 그에게 의지와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이곳을 더 오래 지켜 나가고 싶다.

 

“요즘 학생들은 휴학을 자주 하더라고요. 예전에 저희 딸도 휴학을 하겠다고 하길래 자주 오시는 교수님께 상담을 하기도 했어요. 직장 생활을 하거나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휴학을 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더라고요. 우리 때와는 다르다며 너무 못하게 하지 말라고 교수님께서 시간을 내 조언해 주셨죠. 또 한 번은 이 골목 상권이 침체되어 갈 때 UIC의 한 교수님이 직접 걱정해 주시기도 했고요.”

 

오래된 단골들이 라 본느 타르트를 다시 찾는 이유는 단지 추억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의 맛을 지키려는 기준, 매일 따뜻하게 손님을 맞이하려는 태도, 그리고 조금씩 더 나아지려는 마음이 쌓여 라 본느 타르트의 시간이 됐다. 오래전 행복했던 기억이 한결같은 맛으로 다시 만나는 곳. 그것이 라 본느 타르트가 오래 사랑받아 온 이유다.

 

이어가야 할 것과 새로움을 더할 것

이제 딸 오은영 동문이 합류하면서 김희연 동문의 라 본느 타르트는 더 큰 꿈을 꾸게 됐다. 테이블 한 개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한 라 본느 타르트는 100년 가게를 바라보며 온라인 마켓과 B2B 사업 등 새로운 시장으로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예정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 이어가야 할 것은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오신 손님도 처음과 같은 변하지 않는 맛이라고 해주시고, 매일 따뜻하게 손님을 대해야 한다는 제 신념과 태도도 앞으로 꼭 지켜 나갈 거예요. 딸아이가 사업을 키운다고 해도 이곳의 맛은 유지할 수 있었으면 해요. 그게 안 된다면 사업을 확장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죠. 좋은 재료로 정직한 맛의 기억을 앞으로도 전하고 싶습니다.”

 

가게를 이전하면서 리뉴얼한 라 본느 타르트의 로고, 블루 리본에는 김희연 동문이 지켜온 시간과 앞으로 이어갈 약속이 함께 담겨 있다. 사실 ‘블루 리본’은 김 동문이 처음 가게를 열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이름이었다. 맛집 평가 브랜드와 이름이 겹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지만, 흥미롭게도 라 본느 타르트는 이후 블루리본 서베이에 11년간 선정되며 소비자가 인정한 맛집으로 자리매김했다. 로고 속 리본의 양쪽 날개는 손을 맞잡은 모습으로, 김희연 동문과 딸 오은영 동문이 함께 가게를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블루 컬러는 신뢰와 진실함을 상징한다.

 

라 본느 타르트가 앞으로도 지키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좋은 재료, 정직한 과정, 담백한 맛, 그리고 손님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다. 동시에 김희연 동문과 오은영 동문은 이 작은 골목길 가게가 더 오래, 더 넓게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차근차근 그려가고 있다. 100년 가게를 향한 꿈은 단순히 같은 자리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품질과 신뢰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세대와 더 넓은 만남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일이다. 연세동문길에서 시작된 ‘좋은 타르트’의 시간은 그렇게 한결같은 맛과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품으며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