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비밀을 파고들어 과학의 새 길을 열다
- 2026.07.14
중학생 시절 원소 주기율표를 보며 세상을 이루는 근원에 매료됐던 한 학생은, 이제 물질 속 전자의 움직임을 추적하며 물리학의 오랜 난제에 도전하는 연구자가 됐다. 물리학과 김근수 교수는 2차원 반도체와 고온 초전도체, 양자물질 연구에서 독창적인 성과를 이어오며 Science, Nature 등 세계적 학술지에 이름을 올린 응집물질물리학자다. 올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연구사업 리더연구 유형B(Top-Tier)에 선정되며, 전국에서 단 3명에게 주어진 최상위 연구 지원의 주인공이 됐다. 연세에서 배우고 연구자의 길을 찾은 그는 이제 모교의 강단에서 다음 세대의 과학자를 길러내고 있다. 난제를 끝까지 붙드는 집요함으로 물질의 미래를 열어가는 김근수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근수 교수는 중학생 시절까지 화학을 좋아했다. 그러다 물리학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 계기는 원소 주기율표였다. 세상을 이루는 물질의 근원을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물리학으로 이어졌다.
“사실 중학교 때까지는 화학 분야를 좋아하다가 물리학 쪽으로 전공 선택을 바꾸게 됐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이 원소 주기율표예요. 원소 주기율표가 말하는 것이 결국 세상의 구성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일 수 있잖아요. 세상에는 원소가 무척 많은데, 원자핵의 개수가 하나씩 증가하면서 여러 원소가 존재하더라고요. 그 원소들의 구조를 알려면 화학보다는 물리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스레 중학생 시절부터 그는 물리학자의 길을 염두에 두었다. 다만 흔히 떠올리는 과학 영재의 경로와는 조금 달랐다. 그는 과학고나 영재고가 아닌 일반고를 졸업했고, 중·고등학교 시절 과학 올림피아드나 경시대회에 응시한 적도 없었다. 스스로를 특별한 천재라고 여기거나, 남들과 다른 흥미를 입시의 일부로 활용하려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을 붙들고 오래 파고드는 일을 좋아했다.
“무언가 고민거리가 있을 때 깊이 파고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분석하는 것도 즐겼고요. 그런 성격이다 보니 어린 시절에는 게임에도 엄청 빠졌어요. 그러다 파고들수록 게임보다 더 남는 것을 찾게 되더라고요. 기초과학 분야의 근본적인 질문들이 저와 잘 맞았습니다.”
과학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일이 즐거웠던 그는 물리학으로 전공을 좁혔다. 하지만 과학 특성화 대학이 아닌 종합대학인 연세대학교를 택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물리학만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와 경험을 함께 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구에 특화된 과학 특성화 대학도 충분히 매력적이죠. 저도 고민은 했어요.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가치관이 있잖아요. 다양한 교양 과목을 수강하면서 여러 가치관을 종합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학에 가고 싶었습니다. 종합대학이 제게 더 잘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는 대학 시절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선택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학과 학생회 활동을 하며 여러 행사를 주도적으로 경험했고,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시야를 넓혔다. 이 경험은 훗날 연구 조직을 운영하는 데도 중요한 자산이 됐다.
대학 생활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 2학년 때 학과 공부 외의 활동에도 많은 시간을 쏟았던 그는 3학년 무렵 진로를 깊이 고민했다. 자신이 정말 물리학을 계속할 사람인지,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흔들리기도 했다.
“학생회 활동 등으로 저학년 때 성적은 좀 저조했어요. 복구하느라 힘들었죠. 많은 물리학과 학생들이 1, 2학년 때 공부를 소홀히 하면 3학년 때쯤 ‘내가 물리학을 할 사람이 맞나’ 고민하게 되거든요. 1, 2학년 때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은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저 역시 그랬어요. 진로를 바꿔 산업공학 쪽으로 갈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하기보다는 미흡하더라도 그간 쌓아 올린 물리학 지식을 보존하고, 더 발전적으로 나아가자고 생각했죠.”
그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것은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만난 염한웅 교수였다. 당시 그는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반도체 대기업의 연구원으로 일하는 길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연구실에서 마주한 한 장면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연구원들의 이름과 프로젝트 목록, 연구 과정이 한눈에 정리된 화이트보드였다.
“물리학을 연구하시는 분들 중에는 물리학적 지식은 깊지만 운영이나 관리 측면은 상대적으로 약한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그 화이트보드를 보고 참 멋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롤 모델로 삼아 이분처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근수 교수의 전공은 응집물질물리학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물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그 결과 어떤 물성이 나타나는지를 연구하는 분야다. 초전도체와 반도체가 대표적인 연구 대상이다. 물질 속 전자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을 분석해 새로운 현상을 밝혀내는 이 분야는, 깊이 파고들고 분석하기를 좋아하는 그의 성향과 잘 맞았다. 무엇보다 좋은 스승을 만난 일이 연구자의 길을 업으로 삼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그는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에서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밟았다. 국내에서 석·박사를 마친 뒤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하고 국제적 연구 시스템을 경험하며 새롭게 느낀 점도 많았다.
“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학생들이 정말 치열하게 공부하고 경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하는 아이비리그의 대학 생활은 햇살 아래 잔디에 누워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경험한 것은 오히려 반대였어요. 명문대일수록 더 치열했습니다. 미래에 경쟁할 세계의 연구자들은 이렇게 준비하고 있었구나 깨달았고, 많이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는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마친 뒤 귀국해 포스텍에서 4년 동안 고체물리학을 연구했다. 이후 2017년 우리 대학교의 영입돼 모교의 강단에 서게 됐다. 모교라는 점은 그에게 큰 매력이었지만,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비슷한 배경의 학생들을 더 잘 이해하고 이끌 수 있겠다는 생각도 컸다.
“우리 대학교의 문화를 좋아했고, 자부심이 있었던 동문으로서 모교에 오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죠. 포스텍은 연구 특성화 대학으로서 큰 강점이 있었어요. 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포스텍에는 영재고나 과학고 출신 학생의 비율이 훨씬 높거든요. 반면 연세에는 제가 지금 지도해 봐도 일반고 출신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저도 비슷한 배경이다 보니, 제 경험에 기반해 그 친구들을 이해하고 이끄는 일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실제로도 그랬고, 그래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김 교수는 연세 학생들, 즉 후배들을 제자로 맞아 성장시키는 일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연구자로서 모교에 돌아온 그는 이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 연구자들을 길러내고 있다.
김근수 교수는 일찍부터 응집물질물리학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과학자로 이름을 알렸다. 김 교수는 반도체의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지닌 2차원 반도체 물질인 포스포린, 고체 물질 속 전자의 새로운 상태, 고온 초전도체 물질 등을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물리학의 오랜 난제로 꼽히는 고온 초전도체 메커니즘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초전도체는 전기가 흐를 때 저항이 발생하지 않아 열이 나지 않는 물질이다. 만약 초전도체를 상온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AI 데이터센터, 휴대전화, 컴퓨터 등 열이 발생하는 수많은 전자기기와 에너지 시스템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과학자들은 고온 초전도 현상의 근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현재까지 초전도 현상은 발견됐지만, 주로 극저온에서 관찰됐습니다. 고온 초전도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우리가 사는 상온보다 높은 온도를 떠올리는데, 사실은 기존의 극저온 초전도체보다 조금 더 높은 온도라는 의미입니다. 현재 영하 120도 정도까지 초전도체가 만들어져 있어요. 물리학적으로 난제인 이유는 영하 120도에서 동작하는 초전도체의 원인을 아직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고온 초전도체가 보여주는 몇 가지 특징이 있어요. 슈도갭(Pseudogap)이나 전자 결정 같은 특징인데, 이런 특징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일이 고온 초전도체 전체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을 물리학적으로 완벽하게 이해하면 영하 120도에서 상온까지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의 연구 성과는 세계적인 학술지에 잇따라 게재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2025년에는 서울대 양범정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로 고체 물질 속 전자의 양자 거리를 직접 측정하는 데 성공했고, 연구 결과는 Science에 게재됐다. 2024년에는 고체 상태의 물질에서 전자가 액체와 고체의 특징을 모두 갖는 ‘전자 결정’ 조각을 세계 최초로 발견해 Nature에 발표했다. 이는 노벨상 수상자인 유진 위그너 교수가 1934년 이론적으로 예측한 현상을 실험으로 입증한 성과였다. 또한 고체에서 빛으로 관측할 수 없는 ‘암흑전자’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밝힌 연구 결과를 Nature Physics에 발표하기도 했다.
김 교수의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권위 있는 학술지에 실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이미 알려진 길을 따라가기보다, 물질 속 전자의 세계에서 아직 설명되지 않은 현상을 찾아내고 새로운 물리적 원리를 제시해 왔다. 그가 말하는 “오리지널 연구 콘텐츠”의 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연이은 연구 성과는 대중의 눈에는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번뜩이는 아이디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실제 과학자의 연구 과정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새로운 발견은 순간의 영감보다 오랜 시간의 몰입과 반복, 착각과 좌절을 견디는 과정 속에서 찾아온다.
“과학자가 새로운 발견을 해 나가는 과정은 영화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거든요. 꽤 지난하고 오래 걸립니다. 한 가지 문제를 하루만 고민하는 게 아니라 한 달 이상 고민해요. 사실 그것도 짧죠. Nature에 실리게 된 아이디어를 탄생시키는 과정도 6개월 정도는 걸립니다. 한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스스로 착각할 때도 있어요. 이제 풀린 것 같다 싶지만, 사실은 아닌 경우가 다반사죠. 그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마주한 실마리들과, 또 자신과 싸우는 것 같습니다.”
작은 단서들 속에서 서로 맞물려 들어가는 논리, 여러 현상을 관통하는 법칙을 찾기 위해 끊임없는 전투가 벌어진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순간,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좌절도 반복된다. 그리고 마침내, 김 교수의 표현처럼 “태양이 뜨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느 순간 태양이 뜨는 느낌이랄까요. ‘이게 맞다’는 확신이 들 때가 있어요. 여러 조각의 단서들이 조화롭게 설명되는 순간이 옵니다. 이건 맞다, 새롭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이요. 그렇게 되면 논문을 쓸 때가 된 것이죠. 그때 과학자로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이 카타르시스를 위해 매번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연구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학생들과 연구할 때도 그는 단순히 일을 시키는 지도교수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함께 뛰고, 함께 고민해야 좋은 아이디어와 성과가 나온다고 믿는다.
“Nature나 Science와 같은 권위 있는 학술지에 나갈 정도의 아이디어를 학생들이 척척 가져온다면 이미 학생이 아니겠죠. 제가 지도교수이지만, 학생들을 시키는 입장이 아니라 저도 학생들과 함께 뛰면서 고민하게 만들어야 성과가 나옵니다.”
한 편의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기까지는 까다로운 심사와 동료 연구자들의 촘촘한 비판이 기다린다. 그 과정에서 연구자가 견뎌야 하는 스트레스도 크다. 김 교수는 그럴 때 자신을 버티게 하는 힘으로 가족을 꼽는다. 동시에 제자들에게도 연구 성과와 학술지 게재 과정에서 좌절을 겪더라도, 자신을 지탱해 줄 힘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최근 김근수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기초연구사업 중 최상위 등급인 리더연구 유형B(Top-Tier) 과제에 선정됐다. 해당 사업은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자를 선정해 최대 9년간 장기적으로 집중 지원하는 사업이다. 2021년 2차원 반도체 연구를 주제로 글로벌 리더연구 사업에 최연소로 선정된 데 이어 두 번째 대형 연구 과제 선정이다.
올해 선정된 연구 주제는 양자물질 내 전자 상태가 재구성되는 과정을 규명하고, 물리학의 오랜 난제인 고온 초전도체 메커니즘을 밝히는 연구다. 특히 리더연구 유형B(Top-Tier)는 전국에서 단 3명의 연구자에게만 주어진 기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 교수는 이 선정이 젊은 기초과학자에게 주어진 중요한 신호라고 말한다.
“제가 현재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이 정도 커리어 단계에서 이런 규모의 과제를 맡기는 일은 과거에는 드물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3명의 연구자가 선정됐는데, 그중 한 분도 저와 비슷한 연배이고요. 과거에 비해 국내 과학 문화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기회를 젊은 과학자들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저희 선배 세대일 테니, 우리 문화도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신 기회에 감사한 마음, 무거운 마음으로 책임감을 갖고 연구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그간 김 교수는 ‘젊은 과학자’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 젊은 연구자로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과학 문화와 정책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름표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고, 후배 연구자들의 성장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이번에 Top-Tier로 선정되면서 제게 좋은 기회가 주어지는 모습을 이제 막 과학자의 길을 꿈꾸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메시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는 우리나라에 이런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감도 컸습니다. 첫 시작이 중요한데, 국내는 아직 젊은 과학자들이 도전할 수 있는 스타트업 문화가 약한 편이에요. 국가 차원의 투자가 늘고 있지만, 출발선에 선 젊은 과학자들에 대한 지원이 더 확대되었으면 합니다. 더불어 세계적인 성과를 내고, 노벨 과학상에 근접했다고 평가받는 오리지널 연구 콘텐츠를 보유한 퍼스트 무버 역할의 선배 과학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기초과학이 강해지고, 젊은 과학자들도 기꺼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근수 교수가 젊은 과학자로 주목받아 온 것은 단지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여러 차례 실패를 견디며 끝내 성과를 만들어 낸 도전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2021년 글로벌 리더연구 과제에 선정됐을 때도 그는 내로라하는 연구자들과 경쟁해, 세 번의 도전 끝에 최연소 선정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사실 떨어졌을 때는 타격이 컸어요. 당시 과제 선정이 절실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버텼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야든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한 번 떨어질 때마다 훈장을 새긴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번 유형B 도전에도 당연히 떨어질 거라 예상했어요. 빨리 떨어져서 훈장 하나 더 달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지원했는데 한 번에 선정되어 스스로도 놀라웠습니다.”
깊이 파고들고, 오래 집중하며, 세상의 난제를 풀어내려는 정신적 체력. 김 교수는 이것이야말로 기초과학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천재적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한 주제를 오래 붙드는 힘이다.
“저는 학생들에게 물리를 이해하는 머리보다는 근성이나 집념, 한 가지 주제에 대한 고도의 몰입과 집중력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영재고나 과학고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죠. 아인슈타인이 천재 과학자로 알려져 있잖아요. 실제로 머리가 좋기도 했지만, 밥 먹는 시간도 아껴 가면서 연구만 생각했던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연구에 정말 필요한 것은 단거리 육상 선수의 근육이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 선수의 근육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더라도 연구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동시에 남들보다 머리가 좋다고 해도 쉽게 이기는 게임이 아닙니다. 그런 점을 학생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해요.”
그는 연구실에 지원하는 학생들을 만날 때도 이러한 가치관을 중요하게 본다. 결국 연구는 긴 시간 함께 버티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치관이 맞는 제자들이 같은 방향으로 몰입하는 모습을 볼 때, 그는 큰 보람을 느낀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연구의 근력을 기르고 집념을 가지고 파고드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다음 세대 연구자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연세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이제는 교수이자 연구자로 서 있는 김근수 교수에게 ‘연세에서 연구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연구 본연의 속성과 맞닿아 있는 연세의 가치로 ‘자유’를 꼽는다.
“연세에는 가장 좋은 가치가 하나 있어요. 바로 ‘자유’입니다. 얼핏 작은 이야기 같지만 큰 가치를 담고 있죠. 흔히 우리 대학은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강하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자율성을 중시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원생일 때도 자율성은 잘 보장됐고, 교수진들도 서로 간섭하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성과를 내는 분위기였어요. 기초과학의 창의적 연구에서는 바로 이 자율성이 중요합니다. 학교 차원에서 저를 믿고, 한번 뜻을 펼쳐 보라고 맡겨 주는 연세의 문화가 제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자유의 문화가 창의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라고 믿는다. 이공계 연구 경쟁력에 대한 학교의 관심이 높아지고, 우수 연구자 배출을 위한 지원과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연세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그는 연세의 자유로운 연구 문화 속에서 언젠가 우리 대학에서도 세계 과학계가 주목하는 성과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김근수 교수는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의 본업 외에도 과학 정책 자문과 대중과의 소통에 힘써 왔다. ‘카오스 강연’ 등 대중 대상 과학 강연 프로그램에서 사회를 맡은 경험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중의 반응을 가까이에서 보며, 과학자가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만큼 그 지식을 사회와 나누는 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짝이는 눈으로 앉아 있는 대중들이 연구 내용을 듣는 모습을 보면, 설명하다가도 제 연구가 너무 전문적이거나 좁은 세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이 들 때가 있어요. 대중에게 더 가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자극을 받습니다. 오히려 리프레시가 되고, 연구 현장에서도 더 힘이 나죠.”
최근 2년간은 차기 연도 R&D 예산 심의를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와 그 부속 기관인 기초연구진흥협의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 아이디어나 현장의 의견이 필요한 자리가 마련될 때마다, 그는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참여하려고 한다.
김 교수의 목표는 거창한 구호보다 ‘오늘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일에 충실하는 것’이다. 큰 연구 과제에 선정된 만큼 지원받은 연구비를 의미 있는 성과로 돌려주고,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학생들을 키워 내는 일에도 더 힘을 쏟고자 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끝까지 도전하는 선배 과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멋있는 선배 과학자로서 본을 보여주고 싶어요. 제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모습을 통해 학생들이 제 길을 비슷하게라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정년까지 연구하며 저만의 고유한 연구 콘텐츠를 발굴하고,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내는 퍼스트 무버 연구자들을 5~10명 정도 키워 내고 싶다는 소망도 있어요. 그것이야말로 사회에 일조할 수 있는 일이고, 가장 큰 보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저는 끝까지 도전하다 쓰러지는 모습만 보인다고 하더라도, 제 모습과 가치관을 이어받은 친구들 중에 노벨 과학상에 근접하는 젊은 과학자들이 탄생하면 좋겠습니다. 또 그 맛에 교육자를 하는 것 아니겠어요?(웃음)”
김근수 교수가 자주 듣는 가장 어렵고도 무서운 질문이 있다. “그래서 그 연구는 언제 되는 건데요?” 그러나 기초과학의 시간은 당장의 효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늘의 반도체 기술 역시 100년 전 과학자들이 호기심과 질문으로 쌓아 올린 기초 연구 위에서 가능해졌다. 지금은 어디에 쓰일지 알 수 없어도, 본질을 꿰뚫는 발견은 다음 세대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김근수 교수가 물질 속 전자의 세계를 끝까지 파고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난제 앞에서 그는 오늘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연세는 그 질문이 더 멀리 나아가도록 든든한 토양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