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따라 이어진 우정, 케냐까지 닿은 연세의 마음
- 2026.06.22
왼쪽부터 이용익 매일경제신문 기자(신문방송학 06), Collins Otiende 벤티브코리아 IT 테크니션(지구시스템과학 17), 김동혁 ZD스포츠 대리(글로벌인재학부 17)
케냐 나이로비의 한 운동장. 연세대학교의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축구공을 차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한 시즌을 마친 뒤 옷장에 남아 있던 유니폼과 더 이상 신지 않는 축구화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꿈을 이어가는 소중한 장비가 됐다.
연세대학교 축구동아리 WTF(Woori Team Fighting)에서 만난 이용익 동문, Collins Otiende 동문, 김동혁 동문은 졸업 후에도 함께 축구를 하며 케냐 현지 선수들에게 축구용품을 전하는 기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좋아하는 운동을 매개로 맺어진 인연은 국경을 넘어 나눔으로 확장됐고, 작은 실천은 더 많은 사람을 연결하는 힘이 됐다. 축구를 통해 우정을 쌓고, 그 우정을 다시 세상과 나누고 있는 세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WTF는 2010년 사회과학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창립 멤버인 이용익 동문은 당시 WTF를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굴 붉히지 않고 즐겁게 공을 차기 위해 만든 팀’으로 기억한다. 실력과 승패를 중시하는 분위기보다, 선후배가 편하게 어울리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연세대에는 축구부도 있고 축구를 잘하는 팀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는 조금 다른 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너무 빡빡하지 않게, 선후배 간에도 편하게 지내면서 재미있게 공을 차자는 생각이었죠. 처음에는 사회과학대학에서 시작했지만 점점 커져서 지금은 단과대에 상관없이 연세 구성원이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팀이 됐습니다.”
WTF는 현재 재학생 팀인 YB와 졸업생 팀인 OB로 이어지고 있다. OB 멤버만 해도 70~80명가량이 있고, YB까지 합치면 100명이 훌쩍 넘는다. 졸업 후에도 자연스럽게 팀에 남아 주말마다 공을 차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이용익 동문은 WTF OB팀이 대한축구협회 디비전 리그 K6에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가 기억하는 WTF의 첫 유니폼은 노란색이었다. 교내 축구팀 대부분이 파란색 유니폼을 입던 시절, “우리는 보색으로 가자”며 노란색 유니폼을 맞췄다. 지금도 WTF는 노란색을 홈 유니폼으로, 파란색을 원정 유니폼으로 사용한다. 이름부터 유니폼 컬러까지, 팀에는 처음부터 유쾌함과 자유로운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
Collins Otiende 동문은 1학년 RC 시절, 국제캠퍼스에서 축구를 하다 김동혁 동문을 만나 WTF와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다른 축구동아리 가입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신촌에서 WTF 선배들과 함께 뛰고 뒤풀이를 하며 자유로운 팀의 분위기에 끌렸다.
“처음에는 그냥 한 번 와서 같이 차보라는 말을 듣고 갔어요. 그런데 선배들이 정말 잘해 주셨어요. 그날 경기는 졌지만 분위기가 좋았고, 축구 끝나고 함께 어울리는 시간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선후배 사이가 딱딱하지 않고 편해서 ‘여기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동혁 동문은 조금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했고, 우리 대학교 입학 후에는 일반 학생으로 별도의 테스트를 거쳐 연세대학교 축구부에 들어갔다. 김 동문은 축구부에서 골키퍼 포지션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자신이 “최초로 전산 처리 오류를 일으킨 사람”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일반학과 소속이면서 동시에 운동부 소속인 학생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축구부 선수였으면서도 김동혁 동문이 WTF를 찾은 이유는 분명했다. 오랜 시간 선수로서 경쟁하고 훈련하며 살아왔기에, 대학 안에서는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다.
“운동선수들은 늘 운동선수들끼리만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연세에 들어왔으니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평생 혼나면서 축구를 해왔기 때문에, 은퇴 후에는 즐기면서 축구를 하고 싶었어요. 물론 WTF도 축구를 열심히 하지만, 누가 실수했다고 질책하거나 앞에 세워두고 혼내는 팀은 아니에요. 다음에 잘하자고 말할 수 있는 팀이죠.”
세 사람은 서로 다른 학번, 다른 전공, 다른 배경을 갖고 있지만 축구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친구이자 선후배가 됐다. 그리고 그 인연은 캠퍼스 안에 머물지 않고 케냐까지 이어졌다.
기부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케냐 출신인 Collins 동문은 한국에 오기 전 나이로비의 부루부루 스포츠 FC에서 축구를 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고향에 갈 때마다 축구용품을 조금씩 챙겨 갔다. 케냐에서는 축구용 스타킹 하나, 장갑 하나도 귀한 물건이었다. 김동혁 동문은 축구부에서 매년 새 유니폼과 훈련복, 축구화를 지급받는 것을 떠올렸다. 선수들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품이라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장비가 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단순했어요. 저희는 스폰을 받으니까 축구화에 스터드 하나가 나가면 버리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물건도 케냐 아이들에게는 의미 있는 장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축구부에 이야기해 봤고, 다들 흔쾌히 도와줬어요.”
처음 보낸 것은 축구용 스타킹이었다. 이후 유니폼, 축구화, 골키퍼 장갑 등으로 품목이 늘어났다. 김동혁 동문이 축구부에서 모은 물품을 Collins 동문에게 전달하면, Collins 동문은 케냐 방문 때마다 부루부루 스포츠 FC의 감독과 코치, 선수들에게 직접 전했다.
연세대 유니폼을 입고 뛰는 케냐 선수들의 사진은 세 사람에게 오래 남았다. 김동혁 동문은 특히 파란색 연세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한 팀이 되어 뛰는 모습을 잊지 못한다.
“케냐에서는 팀을 나눌 때 같은 색 옷을 맞춰 입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연세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팀을 나눌 수 있더라고요. 단순히 옷을 전달한 것 이상으로, 아이들이 하나의 팀처럼 뛰는 모습을 보니 뭉클했습니다. 게다가 그 옷이 ‘Y’자가 새겨진 연세 유니폼이라 더 마음이 갔어요.”
Collins 동문에게 이 활동은 단순한 물품 전달이 아니다. 그는 케냐 선수들이 축구용품을 받으며 느끼는 기쁨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축구화 한 켤레, 골키퍼 장갑 하나가 장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도 안다.
“선수들이 정말 좋아해요. 거기에선 좋은 축구화나 장갑을 구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물품을 받으면 오래 쓸 수 있으니 비용도 아낄 수 있고,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어요. 또 그 친구들은 ‘우리도 열심히 하면 해외에 갈 수 있지 않을까, Collins처럼 공부하고 축구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계속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 준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용익 동문도 같은 장면에서 다른 감정을 느꼈다. 자신의 학교 유니폼이 지구 반대편에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신기하면서도 뿌듯했다. 무엇보다 후배 Collins가 자신의 고향 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기뻤다.
“케냐 친구들이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연세대 유니폼을 입고 축구하는 사진을 보면 참 신기해요. 저도 좋지만, 아마 Collins가 더 많이 느꼈을 거예요. 자신의 고향 팀에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이겠어요.”
처음에는 몇 사람이 조용히 이어가던 일이었지만, 좋은 뜻을 알게 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힘을 보탰다. 연세대 축구부 이원규 코치와 선수들은 물품 기부에 적극 동참했고, 김동혁 동문이 근무하는 ZD스포츠도 어린이용 축구화 100켤레를 지원했다. 연세대 홍보팀 역시 케냐로 물품을 보내는 운송비를 지원하며 힘을 보탰다.
이용익 동문은 이 과정을 보며 “좋은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돕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다.
“저도 처음부터 이 일을 주도한 건 아니었어요. 동생들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도울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생각했죠. 학교 홍보팀에 이런 좋은 일을 하는 동문들이 있다고 전했고, 학교에서도 운송비를 지원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축구부 코치님, 선수들, ZD스포츠, 학교까지 모두가 각자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도와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그게 참 멋지고 기뻤습니다.”
김동혁 동문 역시 이 활동을 크게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다만 끊기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란다. 축구부를 떠난 뒤에는 더 이상 물품을 모으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지만, 축구용품 관련 회사에 취업하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연결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단발성으로 시작한 일이었어요. 졸업하면 끝날 줄 알았죠. 그런데 ZD스포츠에 들어가게 됐고, 회사에 취지를 말씀드리니 흔쾌히 도와주셨습니다. 이 일을 더 크게 확장하겠다는 욕심보다, 끊기지 않게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미약하게나마 계속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지원된 어린이용 축구화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은 주로 대학 축구부 선수들이 사용하던 성인용 장비가 많았지만, Collins 동문이 “아이들에게 맞는 사이즈가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어린 선수들을 위한 물품 지원이 이뤄졌다. ZD스포츠는 다양한 사이즈로, 잔디가 아닌 곳에서도 오래 신을 수 있는 형태의 축구화를 준비했다.
세 사람은 자신들의 활동이 대단한 기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액 기부자들의 이름이 오가는 자리에서 자신들의 이야기가 너무 작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나눔은 작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 내가 쓰지 않는 물건을 필요한 곳에 보내는 일, 좋아하는 일을 통해 누군가와 연결되는 일, 친구의 고향을 함께 기억하는 일. 그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용익 동문은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확장된 일이라고 말한다. 김동혁 동문은 “케냐 아이들 중에도 연세대 학생들만큼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다만 환경과 기회가 부족할 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당장 큰 기회를 만들어 줄 수는 없어도, 작은 장비 하나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돈이 많다면 더 큰 기회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죠. 지금은 그럴 수 없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아 조금이라도 그런 시작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케냐 아이들 중에도 분명히 좋은 가능성을 가진 친구들이 있어요. 우리가 보내는 물품이 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응원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Collins 동문은 한국에서 배운 것, 연세에서 만난 사람들, 축구를 통해 얻은 인연을 고향과 다시 연결하고 있다. 그는 현재 벤티브코리아에서 IT 테크니션으로 일하고 있다. 지구시스템과학을 전공했지만 한국에 더 머물며 새로운 길을 찾고 싶었고, IT 분야를 공부해 현재의 일을 시작했다. 그의 삶 자체가 국경과 전공, 언어를 넘어 이어진 하나의 연결이다.
“선수들과 코치님이 연세대에 정말 고마워해요. 좋은 품질의 물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꾸준히 보내주니까요. 앞으로도 이 일이 지속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WTF는 기부를 목표로 만들어진 동아리가 아니다. 그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공을 차며 즐거움을 나누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만들어진 느슨하고 따뜻한 관계는 졸업 후에도 계속됐고, 한국과 케냐를 잇는 나눔으로 확장됐다.
축구는 이들에게 취미이자 관계의 언어다. 선후배가 친구가 되고, 친구의 고향이 나의 관심사가 되고, 쓰지 않는 축구화가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는 물건이 됐다. 연세의 유니폼은 그렇게 1만 킬로미터를 넘어 케냐의 그라운드에 닿았다.
누군가는 큰돈을 기부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작은 물건과 시간을 나눈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다. WTF의 세 동문이 보여준 나눔은 바로 그 점에서 빛난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함께하는 마음, 그 마음을 필요한 곳과 연결하는 실천. 공을 따라 이어진 우정은 지금도 케냐의 그라운드 위에서 계속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