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에서 뉴스의 기준을 세우다

이윤녕 BBC 선임기자(정치외교학 04)
  • 2026.06.18

세계적인 공영방송 BBC에는 전 세계 곳곳에서 뉴스를 취재하는 기자들만큼이나 그들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윤녕 동문은 영국 BBC 런던 본사에서 전 세계 지국과 협업하며 보도 편집 기준과 뉴스 전략 및 정책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외교관을 꿈꾸던 정치외교학도에서 글로벌 미디어 조직의 핵심 구성원으로 자리하기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연결하며 꿈을 확장해 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랫동안 품어온 외교관의 꿈

이윤녕 동문이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꿈은 기자가 아니라 ‘외교관’이었다. 지방에서 나고 자라면서 더 넓은 세상을 꿈꿨고, 국내에 머물기보다 세계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외국어 공부에 대한 흥미도 남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갈고닦은 영어 외에도 중국어, 일본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글로벌한 무대에서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외국어를 공부하는 게 참 재밌었는데 이런 내가 잘할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외교관을 떠올렸죠.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장래희망이 줄곧 외교관이었어요.”

 

그렇게 외교관이 될 것이라는 꿈을 품고 대학 전공 역시 자연스레 정치외교학을 선택했다. 목표가 명확했기 때문에 대학에 입학한 이후 별다른 고민 없이 1년여간 휴학을 하며 외무고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즈음 외교관 선발 전형이 전면적으로 개편되면서 새로운 전형에 맞춰 다시 처음부터 준비하거나 혹은 노선을 바꿔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는 외무고시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냉혹했던 취업 시장, 예상치 못한 방송사 기자의 길

이윤녕 동문은 남들처럼 취업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고시 공부 등으로 휴학을 반복했던 탓에 취업하기에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았고, 취업 시장은 녹록지 않았다. 

 

“결국 취업의 길을 선택했고 1년 반 정도 취업 준비를 했어요. 꽤 길었죠. 안정적인 직장을 찾고 싶었는데, 사실 무척 힘들었어요. 국내에 정말 안 써본 기업이 없을 정도로 모든 기업에 원서를 다 넣었어요. 당시 스물일곱, 스물여덟 살이었어요. 취업 시장에서는 적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해 더 조급했던 것 같아요. 새벽까지 울면서 자기소개서를 썼던 시기가 제게도 있었죠.”

 

그렇게 어려운 취업 시장의 현실을 겪으면서 그는 점점 더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마음이 절실해졌고, 공기업 채용 공고를 살펴보던 중 EBS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외무고시 준비와 맞닿아 있던 국제협력 직군과 낯선 기자 직군 사이에서 오랜 고민을 했지만, 대학 시절 YBS 아나운서 활동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방송기자 직군에 전략적으로 지원했고,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자’가 됐다.

 

“사실 대학 시절엔 재미있는 중앙 동아리 경험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YBS 활동이었는데 그것이 결국 제가 방송기자를 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또 나름 고시 준비 경험 덕분에 언론사 논술 전형도 무난하게 통과를 했죠. 실무 면접을 거쳐 최종 면접에 가서는 거의 울먹이면서 제발 나를 뽑아달라고 할 정도로 절실했어요. 합격 후 나중에 임원 면접에 참석하셨던 한 분이 안 뽑아주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을 정도로 너무 절실해 보였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렇게 2011년, 눈물 속에서 자기소개서와 씨름하던 오랜 시간이 막을 내렸다. 

 

낯선 길에서 찾은 성취감, 심층 보도로 첫 성과를 이끌다

이윤녕 동문에게 방송국 기자라는 직업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선택이었다. 기자를 꿈꿔본 적이 없었기에, 흔히 말하는 언론고시를 같이 준비하던 친구나 동료도 주변에 없었다. 어렵게 입사한 만큼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버텼지만, 수습 시절과 초년 기자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죠. 주변에 같은 분야를 준비한 친구도 없이 혼자인데다 직업 자체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한때는 정말 나와 맞지 않는 직업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죠. 그래도 어렵게 얻은 기회였으니 최소한 3년은 후회 없이 진짜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버텼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을 하다 보니 점점 재미가 붙더라고요. 보람도 느끼고요. 어쩌면 저와 잘 맞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번 시작한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성향은 기자 생활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외무고시라는 오랜 목표를 내려놓고 새로운 길에 뛰어들었던 것처럼, 그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자신만의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단순한 뉴스 전달에 머무르지 않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사회 문제를 보다 깊이 있게 조명하는 심층 보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기자로서의 역량도 본격적으로 빛을 발했다.

 

2014년에는 국내 최초로 난독증 문제를 집중 조명한 기획보도와 수학 포기자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한 심층 기획보도로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이달의 기자상’을 두 차례 연속 수상했다. 교육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장기간 추적하며 새로운 의제를 제시한 보도였다.

 

“당시 뉴스팀 규모가 크지 않아 대부분의 기자가 매일 뉴스 리포트를 제작하는 데 집중해야 했어요. 심층 기획은 많지 않았는데, 제가 처음으로 10편 규모의 연속 기획보도를 시작했죠. 교육 문제에 전문성을 가진 뉴스팀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하나의 의제를 깊이 있게 끌고 가는 심층 보도를 선택했어요. 뉴스부 내에서도 반신반의하는 선배들이 있었을 만큼 새로운 시도였죠. 그리고 뉴스부 창립 이래 처음으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으면서 회사에 플래카드가 걸렸는데 그러면서 제가 하는 일에 보다 확신을 갖게 됐어요.”

 

EBS는 공영방송으로서 시청률 경쟁보다는 공공성과 교육적 가치에 무게를 둔다. 이윤녕 동문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며 뉴스의 깊이와 영역을 넓혀갔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바람은, 뜻밖에 발을 들이게 된 기자라는 직업 안에서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열린 기회가 만든 새로운 가능성

EBS에서 심층 보도와 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며 저널리즘 경력을 쌓아온 이윤녕 동문은 어느 순간 새로운 도전을 갈망하게 됐다. 익숙함 속에서 안정감은 얻었지만, 더 넓은 무대에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도 점점 커졌다. 마침 그 무렵 영국 공영방송 BBC 본사로부터 두 차례 지원 제안을 받았고, 그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당시에는 한국에서 기자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시기였어요. 업무도 많이 익숙해졌고요. 그런데 저는 계속 배우고 성장할 수 있어야 행복한 사람이더라고요. 글로벌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늘 있었고요. 제 역량을 더 확장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BBC가 제가 원하는 방향과 잘 맞았어요.”

 

세계적인 공영방송의 본사에서 기자로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귀한 기회였지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쌓아온 모든 걸 내려놓고 당장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부터 고민이 많았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런던으로 향한 그는 입사 초기 본사 내에 있던 BBC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코리아 팀에서 3년 정도 근무한 이후, 이내 선임급으로 승진하며 글로벌 뉴스 전체를 아우르는 뉴스 편집 전략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는 BBC의 ‘Editorial Quality and Compliance’ 부서에서 근무하며 BBC 뉴스의 편집 방향과 전략이 글로벌 뉴스 운영 전반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저널리즘 원칙과 보도 기준이 조직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구현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기존에 쌓아온 한반도와 아시아 지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심층 다큐멘터리와 탐사보도도 제작하고 있으며, 한반도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는 BBC의 다양한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분석과 해설을 제공하기도 한다.

 

전 세계를 연결하며 BBC의 가치를 구현하다

현재 이윤녕 동문의 역할은 직접 기사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일을 넘어 전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BBC 기자들이 최상의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도록 조직 전반의 실행 구조와 협업 체계를 설계하는 것에 가깝다. BBC 뉴스의 전략 수립부터 국제적 위기 대응, 조직 내 소통과 협업 지원까지 업무 범위 역시 폭넓다.

 

“BBC는 전 세계에 수많은 지국과 직원이 있는 엄청나게 큰 조직이에요. 전체 직원 수만 2만 명이 넘으니까요. 저는 BBC 뉴스의 전반적인 편집 전략과 방향을 토대로 더 많은 이용자에게 우리의 뉴스 콘텐츠가 도달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해요. 또 아프가니스탄 철수나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등 예상치 못한 국제적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현지 기자들을 지원하는 역할도 하고요. 분쟁 지역 기자들의 안전 문제를 다각적으로 논의하기도 하고 미국 대선을 앞두고는 북미와 중남미 지역 지국들을 차례로 방문해 현지 기자와 편집 책임자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본사 선임급으로서 그가 맡은 일의 핵심은 전 세계 각지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이 저널리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본부와 지국,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을 연결하며 BBC가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와 편집 기준이 일관되게 작동하도록 한다.

 

“조직 규모가 큰 만큼 해외 지국에서 근무하는 기자들은 고립감을 느끼기 쉬워요. 그래서 BBC는 ‘One BBC’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양한 지역과 문화를 담아낸 좋은 저널리즘은 결국 조직 내부의 신뢰와 연결에서 시작되거든요.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결국 뉴스 콘텐츠의 품질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에서 시작되는 신뢰, 그리고 지원

다양한 문화권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을 지원하는 일은 이윤녕 동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할 중 하나다. 특히 여성 기자 지원은 BBC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이기도 하다. 같은 기자라 해도 각자가 처한 문화적·사회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본사 차원의 지원 역시 획일적일 수 없다. 이윤녕 동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 역시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성 기자들과 함께한 일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한 이후 현지에서 활동하던 대부분 기자들이 런던으로 재배치되었어요. 그들이 영국에서 계속 보도를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이 이어졌죠. 특히 여성 기자들을 위한 지원이 중요했어요. 그런데 뭔가를 하려고 해도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 얘기를 나누는 것조차 쉽지 않았죠. 이전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우선 왜 사람들이 오지 않았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여러 동료와 대화를 나누며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었고, 고국을 떠나온 여성 기자들 역시 그 경험의 영향을 여전히 안고 있었다. 외부에서는 단순한 회의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당시 그들에게는 여러 사람이 함께 모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 동문은 회의를 준비하기보다 신뢰를 쌓는 데 먼저 시간을 들였다. 여성 기자들을 한 명씩 만나 이야기를 듣고 세션의 취지와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했다.

 

“세션 직전까지도 왜 이 자리가 필요한지, 누가 참석하는지, 회사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하나하나 설명했어요. 중요한 건 사람을 모으는 게 아니라 이곳이 안전한 공간이라는 믿음을 만드는 일이었죠. 결국 감사하게도 전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함께 다양한 지원 방안을 논의할 수 있었어요. 쉽지 않았지만 정말 보람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이 동문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남겼다. 사람과 조직을 연결하는 일은 제도나 절차보다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는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었다. 현재까지도 이 프로그램은 정기적으로 이어지며 여성 기자들의 탄탄한 네트워크와 지원 체계로 자리 잡고 있다. 

전 세계 어디든, 동료가 있는 곳으로

영국 전역 및 전 세계 각지의 지국과 협업해야 하는 일을 맡고 있는 만큼 이윤녕 동문의 일상에는 국내외 출장이 빠지지 않는다. 업무의 절반 이상을 이동하며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그는 먼저 그곳의 역사와 문화, 정치적 배경을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해외 출장 전에 세계사 강의까지 찾아 들을 정도예요. 생소한 지역일수록 더 많이 공부해야 하거든요. 함께 일할 사람들과 그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소통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정치 상황까지 최대한 공부하고 가려고 합니다.”

 

때로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의 분쟁 지역이나 고위험 지역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 동문에게 그곳은 뉴스 속 낯선 공간이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소중한 동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주변에서는 위험하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막상 가보면 결국 다 사람이 사는 곳이에요. 제가 매일 회의하고 얘기하던 기자들이 있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각자의 일상이 펼쳐지는 곳이죠. 그저 업무적인 출장이라기보다 동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는 느낌이 더 커요.”

 

이윤녕 동문에게 글로벌 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여러 나라를 오가는 경험이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일에 가깝다. 어린 시절 외교관을 꿈꾸며 더 넓은 세상을 동경했던 이유 역시 어쩌면 그 지점과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BBC가 알아본 외교적 소통의 힘

이윤녕 동문의 역량은 BBC 안에서도 꾸준히 인정받고 있다. 2022년 한국인 최초로 BBC Next Generation Committee에 선발돼 BBC 최고집행위원회에 자문 역할을 했으며, BBC 최고 권위의 시상식인 BBC Outstanding Contributions Awards에서는 신설 부문인 Rising Star Awards의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또한 2023년부터 매년 BBC News Awards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오리지널 저널리즘 및 심층 보도(Original Journalism and Investigations), 혁신 저널리즘(Innovation Journalism) 등 핵심 부문의 심사를 맡고 있다.

 

“BBC 뉴스 어워드 심사위원을 하면 BBC가 한 해 동안 선보인 주요 보도들을 모두 볼 수 있어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각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저널리즘적 시도와 새로운 흐름을 폭넓게 살펴볼 수 있죠. 무엇보다 현장 기자들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뜻깊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BBC 본사에서의 시간은 이윤녕 동문에게 또 다른 배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취재와 뉴스 보도 업무를 넘어 조직 운영, 미디어 혁신, 콘텐츠 신뢰성, 다양성 정책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며 시야를 넓혀왔다.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직접 지원해 새로운 업무를 경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AI 기반 허위 정보와 뉴스 검증 문제를 다루는 BBC Verify 팀에서도 근무하며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넓혔다.

 

“BBC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아요. 공영미디어의 책임성과 혁신, 다양성과 신뢰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면서 저 역시 계속 성장할 수 있었죠.”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 중 하나는 뜻밖의 평가를 들었을 때였다.

 

“새로운 부서로 옮겼을 때 제 상사가 저에게 ‘굉장히 외교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자’라고 말해준 적이 있어요. 영어가 모국어도 아니고 영국에서 자란 사람도 아닌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굉장히 놀랐죠. 그분은 제가 외교관을 준비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더욱 신기했죠.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다 보면 원칙은 분명하게 전달하되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거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치외교학과에서 배운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어린 시절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꿈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현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고정되지 않았기에 마주한 꿈과 맞닿아 있는 길

이윤녕 동문은 세계적인 조직에서 일하는 경험을 후배들과도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특히 국제 무대에서 일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열린 시야와 경청의 태도를 강조했다.

 

“BBC는 정말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매우 큰 조직이에요. 그러다 보니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는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나더라도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거든요.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며 알게 됐지만 동의하지 않더라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저는 연세에서 그런 태도를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전공과 관계없이 정치나 문화,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수업을 열린 마음으로 들어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이윤녕 동문은 삶에서 장기적이고 고정된 목표를 고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지 않았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방송계에서 일하게 될 줄도, 해외에서 살아가게 될 줄도, 세계적인 미디어 조직에서 일하게 될 줄도 몰랐다. 다만 그때그때 주어진 기회에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를 특정한 틀 안에 가두지 않았다.

 

뉴스룸을 넘어 서로 다른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고 연결하며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시야를 넓혀 온 지금, 그는 그 모든 과정이 어린 시절 꿈꾸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세계 무대와 글로벌 저널리즘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꿈의 본질에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