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잇다

사람과 비즈니스의 연결고리, 김원지 링크드인(LinkedIn) APAC Talent & Learning Solutions Director(경영학 03)
  • 2026.04.21

매일 빠르게 변화하며 수많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시대, 누군가와, 어떤 비즈니스와의 지속적인 ‘연결’은 이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수적이다. 사람과 사람, 커리어와 사람, 비즈니스와 비즈니스까지. 각기 흩어진 점들이 연결되며 새로운 가능성으로 확장된다. 김원지 동문은 익숙한 안전지대를 벗어나 국내외 다양한 비즈니스 분야에서 일하며 연결이 만드는 새로운 가능성, 그 힘을 자신의 커리어에서 증명해 왔다. 그리고 현재 이 연결의 거점인 링크드인에서 연결의 가치를 확산하며 사람과 비즈니스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작은 우물을 벗어나, 넓은 세계를 향한 발걸음

어린 시절 피아노를 치며 음악 치료사를 꿈꾸기도 했지만, 김원지 동문은 보다 실용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진로를 생각하고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또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 오빠를 보며, ‘오빠만큼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우리 대학교를 선택하게 됐다.

 

입학 후 만난 대학 생활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다양한 문화와 배경 속에서 경험을 쌓아온 친구들과 만나며 문화적인 충격을 받기도 했고, 때로는 스스로 작아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김 동문은 위축되기보다는 더 폭넓은 경험 속으로 발을 내딛기로 했다. 그의 캠퍼스 생활은 다양한 경험과 인연, 그리고 성장의 시간들로 가득했다. 

 

“입학해서 만난 친구들이 다 해외에서 살다 온 경험도 많고 외국어도 네이티브처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느꼈어요. 한동안은 스스로가 작게 느껴졌고 너무 평범하게 살아온 것만 같았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긍정적 자극이라고 할까요? 저 친구들만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홍보대사 인연에 지원했고, 적극적으로 활동했죠. 홍보대사 활동은 제게 큰 전환점이 됐어요.”

 

김원지 동문은 학교 행사, 캠퍼스 투어 등을 준비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 관계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힘 등을 배웠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키웠다. 200여 명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캠퍼스 투어를 진행했던 일은 아직도 즐거운 추억이다. 게다가 홍보대사로 함께 만난 선후배 동기는 이제 평생의 인연이다. 그는 스페인, 런던, 싱가포르 등 졸업 후 커리어를 쌓으며 오랜 시간 외국에서 지냈지만, 현재까지도 홍보대사 선후배들과 꾸준히 만남을 이어가며 서로를 응원한다. 

 

“저처럼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홍보대사 출신 친구도 있어요. 그 친구와 만나서 우리가 여기서 일하게 될 줄 알았냐며 웃었죠. 저는 그냥 평범하게 한국에서 남들처럼 살아갈 줄 알았어요. (웃음) 사실 싱가포르에는 연세동문회도 운영되고 있어서 종종 연세인들끼리 의기투합하죠.”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만큼 대학 시절 상경대 밴드부 ‘한솔’에서의 활동도 캠퍼스 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2년간 활동하며 직접 공연에 참여하고 타 학교 친구들과 연합 밴드를 만들어 공연할 만큼, 음악에 몰입하며 즐겼다. 키보드를 주로 담당했지만 여름 방학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드럼 학원에 다닐 정도로 열정을 쏟으며 음악적 감성의 폭을 넓혔다. 그뿐만 아니라 학과 내 학회 활동에도 참여하며 미래를 준비했고, 3학년 2학기와 4학년 1학기를 스웨덴의 옌셰핑 대학교(Jönköping University)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영어를 잘하는 나라로 손꼽히는 곳이 스웨덴이었어요. 그리고 옌셰핑 대학교가 비즈니스 분야에서 유명한 교수님이 계셨고요. 강의도 영어로 진행되고, 실생활에서도 영어가 공용어처럼 쓰여서 영어 실력을 키우기에도 좋은 환경이었어요. 교환학생을 가기 전 홍익대 앞에서 한 외국인이 말을 건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대답을 못할 정도로 얼어버렸죠. 그래서 교환학생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한국인이 거의 없는 곳. 초반에 좀 고생하더라도 매일매일 현지인과 대화를 해야만 하는 곳을 찾기도 했었어요. 저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넣었다고 할까요. (웃음) 덕분에 영어에 대한 공포증은 없는 수준까지 만들고 돌아오긴 했죠.”

 

그렇게 김 동문은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정적인 대학 시절을 보냈다.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한 시간들이 쌓여, 신입생 시절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껴졌던 자신을 넘어서 누구보다 당당하게 앞서 나가고 있었다.

 

다이내믹한 무역 회사의 업무, 없던 시장을 개척하다

졸업 후 김원지 동문은 삼성물산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지치지 않는 열정과 전공 지식, 뛰어난 외국어 실력,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갖춘 그는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다이내믹한 업무에 더욱 큰 흥미를 느꼈다. 그룹 공채로 입사한 그는 그룹 내에서 소수 정예로 단 50명을 선발하는 삼성물산에 지원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특히, 2만여 명이 참가한 신입사원 연수에서 프레젠테이션 2등을 차지할 정도로 패기와 열정이 넘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입사 이후, 그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기회를 얻게 되었다.

 

“대학 시절 전공과목 중 숫자와 관련한 분야는 사실 제 적성에 잘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회계사나 투자회사 입사 등과는 거리가 멀었죠. 하지만 전략, 사업 개발, 마케팅 관련한 수업들은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마침 삼성물산에 입사한 후 광물사업부에서 처음 업무를 시작했어요. 사실 광물사업부를 지원한 것은 오일 & 가스 등 일반적인 에너지 자원 트레이딩보다 파이낸스와 결합시켜 볼 수 있는 분야가 더 도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실상은 멋있기보다는 매일 로이터 통신 화면을 띄워 놓고 가격 보고서 작성하는 숨 가쁜 시간들이 이어지죠. 하지만 비철금속 트레이딩 부서에서 구리, 아연 등의 원료 거래를 담당하면서 국제 원자재 시장, 물류, 계약 구조, 글로벌 공급망 등에 대해 배웠고, 시장의 거시적인 구조를 읽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설계하는 일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삼성물산에서 6년여 간의 커리어를 쌓으며 그는 칠레, 페루, 볼리비아 등 중남미와 중국 전역의 제련소와 정련소로 출장을 다니며 비즈니스 산업 현장을 누볐고, 런던, 상하이의 거래소, 싱가포르의 선물 회사 등 관련 산업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거점들을 방문할 기회도 가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대학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비즈니스 모델 개발 전략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하나의 아이템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야 하잖아요. A 회사와 B 회사가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는 제안서를 가지고 계약을 성사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 안에 사업 전략도, 재무도, 마케팅도 모두 들어가야 해요. 그런 전략적이고 거시적인 일들을 배우면서 알게 모르게 배우는 것들이 많았죠. 그곳에서 비즈니스의 A to Z를 모두 배웠어요. 세계 곳곳을 출장 다니며 출장지까지 가는 데만 36시간이 걸려도 너무 즐겁기만 했어요. 게다가 여성 직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저는 더욱 성취감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다녔죠.” 

 

런던과 스페인에서 낯선 시장을 연결하다

김원지 동문은 이후 결혼을 하며 코트라(KOTR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런던 무역관으로 이직한다. 사실 교환학생 시절, 유럽 13개국을 여행하던 중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만났던 한국인을 3년 뒤, 삼성물산 재직 시절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됐고, 그를 통해 소개받은 외국인과 부부의 연으로 이어졌다. 

 

“런던 여행 중 만났던 사람을 회사 로비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거예요. 그 우연한 만남 후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게 됐고,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남편은 스페인 사람이에요. 마침 남편이 런던으로 가야 했고, 저는 회사에 큰 변화가 있던 시기라 남편을 따라 런던으로 이직했죠. 우리 인연을 생각해 보면, 정말 인생은 예상하지 못한 기회와 연결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옮긴 코트라 런던지사에서 그는 한국 기업의 유럽 진출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중소기업을 적극 지원하는 일이었기에 보람이 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좋은 제품이라도 시장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면 선택받기 어렵다’는 점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공공의 문화와 그가 겪어온 사기업의 문화 차이도 크게 느낀 시간이었다. 동시에 아이가 태어나 육아에 대한 고민도 맞물려 김원지 동문은 코트라를 그만두고 시댁이 있는 스페인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는 육아에만 올인하지 않고, 자신의 커리어를 다시 찾아 나섰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에 좀 더 유연한 ‘창업’에 도전했다. 익숙한 국내도 아니고 낯선 해외에서의 창업이라니, 더욱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스페인어를 조금은 할 줄 알았지만 다시 배우는 것부터 시작했죠. 막상 현지에 가보니 슈퍼마켓에서 환불해 달라는 말조차 안 나왔어요.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 놓고 스페인어를 배우고 창업 학교에도 다녔어요. 사실 창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어요. 스페인에서 엄마들은 아이가 12세까지 노동법상 해고가 안 되기 때문에, 엄마들이 새로 취업하는 일이 쉽지 않아요. 저 역시 이력서를 300개 넘게 보냈고 인터뷰는 30곳 넘게 봤지만 모두 취업에 실패했죠. 그래서 코트라에서 한국 회사와 유럽 회사를 연결해 줬던 업무 경험들을 기반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태평양 시장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스페인 회사들을 지원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창업했죠.”

 

창업을 통해 그는, 매출이 곧 생존인 상황에서 고객의 실제 니즈를 치열하게 이해하는 경험을 가진 값진 시간이었다. 게다가 그는 창업과 육아의 틈 속에서도, 낯선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동기부여하기 위해 스페인에서 코칭 수업을 이수하며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코칭 수업을 들으면서 진정한 나를 알아가고 싶었어요. 힘든 상황에서는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코칭 수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됐죠. 사실 그때가 둘째 임신 중이었는데 4개월 동안 힘들게 수업을 들었죠. 코칭 수업이 끝나고 5일 뒤에 출산했을 정도였어요. 무엇보다 내가 스페인어로 코칭 자격증을 따고, 해냈다는 성취감에 뿌듯했죠.” 

 

싱가포르의 삶, 사업과 사업을 이어, 잠재된 가치를 창출하다

김원지 동문은 스페인을 떠나 싱가포르로 이직했다. 첫 회사는 스마트팩토리 분야 등 산업 공정 최적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글로벌기업 AspenTech. 이곳에서 그는 한국 시장을 담당하며 제조, 화학, 배터리, 반도체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를 다루는 APAC(Asia-Pacific) 세일즈팀 매니저 역할을 했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생산 공정에서 일어날 문제들을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고, 예지 보전을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이다.

 

이후 오퍼를 받고 현재까지 글로벌 전문직 네트워크 플랫폼인 링크드인(LinkedIn)의 APAC Talent & Learning Solutions 파트의 디렉터로 역시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며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채용, 학습, AI 시대의 조직 경쟁력에 대해 논의하는 Enterprises SaaS 세일즈를 담당하고 있다. 링크드인은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한 플랫폼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자회사다. 링크드인으로 연결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는 채용뿐 아니라 커리어 개발, 홍보 연계 플랫폼으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비즈니스와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국경을 넘어 잠재 고객, 잠재 투자사, 잠재 파트너사 등과의 연결 고리가 되고 있어 더욱 각광받고 있다. 

 

김원지 동문은 싱가포르로 이주하기까지 5년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국제적인 감각을 갖추면서도 안전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으면 했고, 딱 맞는 곳이 싱가포르였다. 그가 대학 시절 처음 해외 경험을 한 곳도 싱가포르. <대학내일> 리포터로 뽑혀 싱가포르로 취재를 왔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며 다시 못 올 것이라 생각했던 그곳에 돌고 돌아 다시 연결되어 첫 회사의 첫 출장지로 다시 오고, 이제는 삶의 터를 잡았다. 오랜 준비를 거쳐 그는 싱가포르에 직장을 구했고 남편은 스페인에서 창업했던 사업 모델을 이곳에서 이어오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는 줄줄이 사업 계약이 취소돼 위기가 닥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안정적이다. 유연한 재택근무 제도 등이 잘 갖춰져 일과 삶의 균형도 잘 맞춰가고 있다.

 

잠재된 기회를 잡는 첫걸음, 연결을 통해 알리고 발견되기

김원지 동문은 링크드인의 APAC에서 일한다는 것에 자부심이 크다. 게다가 첨단 기술의 첨병에 있는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보이는 것들이 있다.

 

“최근에는 AI 시대의 커리어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아요. 실제로 많은 산업에서 AI 가 기존에 여러 명이 할 일을 프롬프트 몇 번의 입력만으로도 단시간에 해 내죠. 많은 일에서 인력을 점점 대체해 가고 있어요. 그런데, 이 빠른 변화의 파고에 올라탈 수 있는 핵심 역량은 역시나 ‘연결’인 것 같아요. 무엇을 오래 했는지가 아닌, 무엇을 새롭게 연결할 수 있는지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직무를 단순히 반복해서 수행하는 사람이 아닌, 문제를 한발 앞서 정의하고,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더 나은 구조를 만드는 사람이 더욱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김 동문은 이 변화의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직업을 지키는 시대가 아니라, 스스로 역할을 계속 재정의하는 시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후배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세상에 드러내고, 세상 속 기회와 자신의 역량을 연결하기 위해 링크드인을 적극 활용하라고 권한다.

 

“요즘은 너무 취업하기가 힘들죠. 구직을 하시는 분들은 꼭 링크드인을 쓰셔야 합니다. 링크드인은 살아 숨 쉬는 생태계예요. 이곳에서 스스로 PR 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간혹 너무 쑥스러워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열심히 참여했던 동아리 활동부터, 보유한 스킬, 성장을 위해 배웠던 것들을 단순히 한 줄의 경험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주도했던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만들길 권해요. 자기 PR의 매개체로서,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링크드인을 활용하셨으면 해요. 현재 프로필에 쓸 아무런 경력이나 경험이 없더라도 먼저 가입해서 관심 있는 전문가나 채용 담당자에게 일촌 신청(Connect 신청)을 하세요. 그리고 자신을 피칭할 수 있는 이력서도 보내세요. 아무것도 보내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기억에 남지 않을까요? 특히 글로벌 기업 입사를 원하신다면 더욱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셨으면 합니다. 무조건 ‘검색이 되는 곳’, 네트워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발견이 됩니다. 비워진 이력은 계속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고요.”

 

구직뿐 아니라 협업이 필요할 때도 링크드인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세계 곳곳 링크드인 전문가 네트워크 내에서 연결되고 또다시 연결되어서, 실제로 저 역시 우연히 만나게 된 분과 4번의 세미나를 함께 한 경험이 있어요. 이 ‘연결’이라는 것이 재미있어요. 어디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한 번 이어진 그 인연들이 나중에 또 어떻게 확장돼 갈지 더 기대되지 않나요? 링크드인에서는 수많은 연결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갈 수 있어요.” 

 

김원지 동문은 네트워크 안에서 나를 ‘알려’, ‘발견’되게 하고, 자신의 역량을 쌓아가면서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은 ‘세일즈’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인에 대한 세일즈를 하셔야 해요. 집에서 넷플릭스만 본다면 너무 편하겠죠. 하지만 때로는 온라인을 넘어 직접 나가서 사람도 만나고 채용 담당자를 직접 찾아가 보기도 하면 어떨까요. 때로는 거절도 당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진짜 사회생활에 대해서 배워 갈 수도 있죠. 무엇보다 본인을 잘 알리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거예요.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을 해 보세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 세 가지의 교집합을 찾아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람과 사회에 가치를 전하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길

김원지 동문은 자신의 역할을 통해 사람들이 역량을 확장해 나가고 새로운 기회를 발견해 가는 일에 계속 함께하고 싶다. 더불어 그는 어떤 가치든 사람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김원지라는 사람을 통해서 링크드인을 활용해 비즈니스의 수익이 창출되고 더 성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일에 대한 압박감도 점점 커지고 있어 언젠가는 디지털 노매드도 꿈꾸고 있긴 해요. (웃음) 하지만 제가 일론 머스크처럼 전 인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까지 고민이 닿진 못하더라도, 보다 큰 그림을 그려가며 단순히 나와 내 가족이 아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기억이 됐으면 좋겠어요.”

 

김원지 동문의 커리어를 되돌아보면, 언제나 자신의 현재 자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더 나은 다음 스텝을 찾고 기회를 잡아왔다. 매 순간을 쉬지 않고 열정을 다하며 스스로를 동기 부여하고 한계까지 몰아붙인 치열함이 있었다.

 

“사실, 저도 때론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익숙한 곳(Comfort Zone)을 벗어나 도전하며 살아온 것에는 후회 없이 스스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엔 작은 일만 생겨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었죠. 그런데 이젠 웃으면서 이보다 나빠질 수 있을까, 이제 바닥을 찍었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 싶어요. 경험치를 쌓아가며 그렇게 제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했다고 할까요. 저는 모든 경험들이 모여 자신만의 샐러드볼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거기에 자신만의 특별한 소스를 넣는 거죠. 제겐 그 모든 과정이 힘들지만 동시에 성장하는 즐거움과 가치가 있었어요.”

 

김원지 동문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연결’이었다. 사람과의 인연에서 없던 시장을 만들고 낯선 시장을 연결해 온 커리어까지. 그는 자신이 쌓아온 다채로운 경험들 속에서 흩어져 있던 기회를 연결해 누구보다 단단하게 성장하며 그 연결의 힘을 증명해 왔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이제 사람과 사람, 커리어와 기회, 비즈니스와 비즈니스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어주고 있다. 그가 앞으로도 이어갈, ‘연결’에서 시작될 새로운 이야기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