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을 담아낸 밀도 있는 건축
- 2026.03.20
건축은 단순히 형태를 설계하고 짓는 행위를 넘어선다. 하나의 건축물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그 장소의 기억과 현재의 삶, 나아가 도시의 흐름까지 담아내는 언어가 된다. 건축 설계는 도시의 맥락과 관계를 해석하고 읽어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김이홍 동문은 이미 존재하는 조건을 깊이 이해하며,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 집중하는 건축가다. 그의 사무소 곳곳에 놓인 모형과 프로젝트 이미지에서는, 무엇을 만드는지를 넘어 그 가치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질문이 섬세하게 깃들어 있었다.
공간과 건축, 그리고 자신의 프로젝트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김이홍 동문의 모습에서 타고난 건축가의 면모가 엿보인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건축가가 되겠다는 명확한 꿈을 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과 성향을 자연스레 인지하며, 그것이 결국 건축가라는 길로 이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어요. 10대 시절 1년간 미국에서 지낼 때 목공 수업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간단하게 제도 수업도 해보고 직접 만들기도 해봤죠. 그때 만든 소품 몇 개는 아직도 소중히 가지고 있어요. 완성도 있게 무언가를 만드는 데 재능과 흥미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요. 물론 ‘만든다’는 행위 자체가 건축가의 필수 자질은 아니에요. 만든다는 것 자체로는 조소과가 더 잘 맞을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건축이라는 것이 건물을 만들고 완성하는 일이다 보니, 디테일에 대한 관심과 완성도를 높이는 자질과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수학을 잘했고 3차원적인 사고에 흥미가 많았는데 오히려 그런 점이 건축가로서 더 장점이 되었죠.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 아파트 밖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집의 구조를 유추해 본다든가 하는 일도 많았고, 또 그게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건축공학과는 김 동문과 결이 잘 맞는 전공이었다. 게다가 우리 대학교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늘 가고 싶었던 학교였고, 늘 친숙한 곳이었다.
“아버지께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셨어요. 동생도 응용통계학과를 나왔죠. 아버지 사무실에 종종 들르기도 했고, 어린 시절부터 연세대 교정을 보고 자란 제겐 너무 친근한 곳이었어요. 연세대에 입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입학 후 학교 생활도 충분히 좋았어요.”
김이홍 동문은 학과 생활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건축사 같은 이론 수업은 물론, 1학년 때 ‘선 긋기’ 연습부터 시작해, 2학년부터 시작되는 설계 수업까지 빼곡한 건축학과의 교육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기 일쑤였다. 교과외 활동에 참여할 여유도 많지 않았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김 동문은 공모전에 적극 참여하며 열정을 쏟았고, 건축가로서의 미래를 꿈꾸며 매일을 충실히 보냈다. 그때의 시간들은 그의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
“대학 시절은 학과 내에서의 삶이 가장 컸어요. 건축 설계 작업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에요. 또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서 시간을 들여 노동 집약적으로 작업을 해야 하니 성실함도 중요하죠. 자신의 작업물에 대한 논리적인 설득력, 발표력도 필요해요.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스킬도 늘게 되죠. 이런 것들은 단지 건축 분야에서만 필요한 역량은 아니죠. 그렇지만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이러한 다양한 역량을 쌓아가는 데 건축 만큼 좋은 분야도 없는 것 같아요.”
김이홍 동문은 넓은 세상에 나가 폭 넓은 시야를 갖추고 자신의 역량의 깊이도 쌓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졸업 후 유학이었다.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고 싶은 동경, 바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가장 큰 무대인 미국, 어린 시절 잠시 겪었던 보스톤 지역에 가고 싶었어요. 특히 하버드 건축대학원은 그 안에서의 전공이 다양해요. 한국은 공과대학 내에 건축공학과가 있는데, 미국은 건축 분야 자체가 단과대로 따로 있고 건축대학원 내에 건축과 연관된 분야, 예를 들어 건축, 조경, 도시 등 다양성 있는 전공들이 함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죠. 실제로도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되었고요.”
대학원 시절 김 동문이 가장 애착을 가졌던 공간은 층층이 겹쳐 배치된 작업대들로 이루어진 스튜디오였다. 각 학생에게 주어진 작업대는 하나의 지붕 아래 계단식 단차를 두어 배치되어, 위나 아래에서 바라보면 모든 층의 작업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다양한 학생들의 작업물이 한눈에 펼쳐지는 이 열린 구조는 서로 영감과 자극을 주고받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그 큰 학교에서 사실 모든 학생들과 교류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하나의 건물 안에 건축 스튜디오, 조경 스튜디오, 도시 스튜디오가 섞여 있다 보니 작업 공간을 오고가며 다른 분야 동료들의 작업을 보는 것만으로도 제 시야를 넓힐 수 있었어요. 폐쇄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배우고 느끼는 거죠. 그 공간 자체가 주는 큰 힘, 메시지가 있었어요. 건축이라는 것이 건물을 짓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경이나 도시 계획과 같은 것과 잘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에 상호 이해나 보완이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됐죠.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과 좋은 네트워크도 갖게 됐고요.”
하버드에서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김이홍 동문은 귀국해 국내 탑 건축사무소인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본격적으로 건축설계사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삼우에서는 전문가로서의 기본기, 시스템을 익힌 시기였다. 동시에 또 현재까지도 건축설계스튜디오, 대기업 등 여러 곳에서 활동하며 교류하는 선후배 동료들을 만난 곳이다. 현재 자신의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김 동문에게 스튜디오의 체계를 구축하고 운영 방식을 세팅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3년간의 경력이다.
김이홍 동문은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스튜디오에서도 경력을 쌓았다. 바로 대학원 시절, 프랭크 게리가 설립한 게리 파트너스(Gehry Partners)에서의 경험과 삼우종합건축사 퇴사후 입사한, 스티븐 홀 아키텍츠(Steven Holl Architects)에서의 경력이다. 두 곳 모두 모형 작업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곳. 사실 모형 작업이 설계를 잘할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역량은 아니지만, 모형 작업을 좋아하는 그와 결이 잘 맞았기에 즐겁게 일했다.
“스티븐홀 입사 때 2차 면접이 스티븐홀과 직접 면접이었어요. 제가 평소 좋아했던 모형을 직접 들고 가서 모형 만들기를 좋아하는 제 성향과 역량을 보여줬던 것이 스티븐홀 스튜디오의 성향과 잘 맞았고, 또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지금도 저는 모형 만드는 작업을 다른 스튜디오에 비해 꽤 많이 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그 두 곳에서 거장 건축가의 이름 속에 내재된 ‘건축가의 태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건축가로서의 태도, 그리고 ‘건축가가 어떤 일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해 배웠던 것 같아요. 특히 스티븐 홀에서는 3년 반 동안 워싱턴 DC에 있는 케네디센터의 증축 프로젝트 하나만을 설계했었어요. 그만큼 매우 긴 작업이었고 중요한 프로젝트였죠. 건물 자체도 설계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문손잡이라든지, 벽에 붙어있는 장식품, 샹들리에 펜던트 등 공간의 장식적인 부분까지 하나하나 디자인을 하는 곳이었죠. 디자인적인 요소뿐 아니라 그런 디테일의 편의성, ‘손맛’까지 다 고려하며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는 경험을 할 수 있었죠. 현재도 이런 부분들까지 건축주에게 제안하는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심히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이홍 동문은 2014년 뉴욕에 자신의 건축사무소인 ‘김이홍 아키텍츠’를 개소한 후, 2016년 서울로 사무실을 확장했다. 동시에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부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뉴욕이라는 큰 무대에서 한국으로 다시 오는 일이 아쉽지는 않았을까.
“제 포트폴리오를 보고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와서 한국에도 사업자를 냈죠. 2017년에는 아예 귀국을 했고요. 사실, 설계는 원격으로 일하는 것이 불가능해요. 옆에서 긴밀하게 소통해야 해요. 건물이 지어지는 동네도 잘 알아야 하고, 건축주와도 빈번하게 만나야 하죠. 설계 단계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한국에 나오긴 했지만, 착공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어요. 결국 귀국을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프로젝트가 한 패션 브랜드의 ‘DAN’ 사옥이다. 키워드는 ‘소통’. 외부와 내부 및 내부와 내부, 외부와 외부가 긴밀한 소통을 이룰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춰 설계했다. ‘숨바꼭질’이라는 개념 작업에 기반한 공간 구성 방식을 차용해, 내부 공간들이 접히고 연결되며 다양한 공간을 형성하고 관계성을 맺게 된다. 김이홍 동문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에 사무소를 개소한 지 1년여 만에, 2018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다. 젊은 건축가상은 일반적으로 한 해에 3-5명 선정되는 데다, 국내 차세대 건축가의 등용문으로 꼽힌다. 건축물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건축가의 철학과 실험성, 미래 가능성까지 함께 평가한다. 김 동문은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대한 세심한 관찰, 개념 설정과 구축의 경계를 오가는 집요한 작업 과정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을 끌었다.
이전부터 김이홍 동문은 건축 작업에서 그 의미를 단순히 조형미 있는 건물을 만들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에서 찾지 않았다. 김 동문의 건축물은 언제나 ‘문제 해결’이라는 관점 위에 세워진다. 그래서 그는 건축물이 지어지는 쓰임, 환경, 역사, 물리적 소재, 사회적인 소통을 한가운데에 두고 확고한 ‘맥락(Context)’을 찾는다.
“저는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좋아해요. 아무것도 없는 사막 같은 백지에서 신축을 짓는 것은 자유롭고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죠. 반면에 리모델링은 건축 구조물의 뼈대 안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제약 조건이 많아요. 하지만 그 해법을 찾아내는 묘미가 있죠. 그만큼 논리적이어야 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요. 특히 제 스스로도 설득이 되어야 하죠. 그 과정에서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봐요. 쉽게 보이지는 않는 창의성이라고 해도 그 발견이 재미있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이성과 감성 둘 다 섞여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웃음)”
면밀한 관찰에 기반한 ‘맥락’에서 시작되는 김 동문의 건축 프로젝트들은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 하나의 줄기로 의미 있게 이어진다. 한계 속에서 가능성을 불어넣는 일들이다. 그에게 주어진 조건의 한계는 ‘긍정적 제약’이다. 그만큼 한 수 한 수 둘 때 마다 작은 부분까지 치열한 고민이 이어진다.
“맥락에서 하나의 콘셉트나 아이디어로 발전이 되지만 실제로 예산 문제 등으로 흔들릴 때가 많아요. 하지만 조금 더 의미 있게 만들어지는 줄기가 콘셉트이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에는 큰 틀에서의 형태, 그 다음은 재료, 재료 중에서도 소재 등으로 그 고민이 이어지죠. 다 좋아 보이는 여러 옵션으로 고민스러울 때는 다시 맥락으로 돌아가곤 하죠. 같은 소재라도 이 건물이 지어지는 곳과 맞는 것이 무엇인지 선택할 때 하나의 힌트가 돼요. 확실한 콘셉트, 아이디어에 맞는 최대한 담백한 건축을 지향합니다.”
또, 건축가는 이성과 감성 그 사이, 창의성과 논리 사이에서 균형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그만큼 늘 해결해야 할 문제도, 고민해야 할 거리도 많다.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건축주나 시공사와의 설득, 조율의 과정도 거쳐야 한다. 그래서 김 동문은 ‘건축가는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건축가의 역할은 코디네이터’라 말한다.
“건축가는 여러 사람과 많이 소통해야 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는 꽤 재미난 직업 중 하나예요. 특히 주택을 설계하게 되면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다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거든요. 한 번은 건축주께서 현관은 집에서 처음 맞이하게 되는 공간이라며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대개는 집에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어두는 공간 정도로 여기는데 그 분 생각은 달랐어요. 수납장도 필요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현관을 중요한 공간으로, 예쁘게 만들어드렸던 기억이 나요.”
김이홍 동문을 대표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바로 순환경제 스타트업 수퍼빈의 자원순환 공장인 ‘아이엠팩토리’다. 이곳은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을 고품질 플레이크로 제조하는 시설이다. 김 동문은 이곳을 단순기능적인 ‘공장’이 아닌, 생산과 함께 재활용 과정을 전시하고 관람할 수 있는 복합 공간으로 만들었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는 난제도 많았다. 공장 부지를 방문했을 때는 여느 공장 부지와 마찬가지였다. 고속도로 옆 한적한 곳, 주변에는 논밭과 창고뿐이었다. 폐기물 시설이었기 때문에 처음 겪는 행정 처리 절차도 복잡했다. 리사이클링 공정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기계 설비 설치를 위해 확보되어야 할 최소 공간이 모자랐다. 여러 도전에 직면했지만 시야를 달리 했다. 한계를 ‘긍정적 제약’으로 여겼다. 대지의 제한으로 곤란했던 설비 배치는 U자형 동선 형태로 마무리됐고 U자 형태의 각 끝부분은 입출고를 담당하는 하역장으로 구성했다. 이는 곧 순환 경제 자체를 상징하는 형태이기도 하다.
수퍼빈 아이엠팩토리, 2021-2023, Leehong Kim Architects
각종 소음과 오염 물질, 위험할 수 있는 설비가 있는 공장이 하나의 문화 공간이 양립할 수 있을지에 대한 도전도 있었다. 김 동문은 ‘공장’ 하면 떠오르는 모습, 그 반대편을 그리기로 했다. 3층에는 공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과 재활용 제품 전시 갤러리를 배치하고 4층에는 카페와 이벤트홀, 테라스도 구성했다. 일부 공간은 유기견 임시보호소로 사용된다. U자형 배치를 최대한 활용해 동선을 만들고 이어지는 창문들을 배치해 바깥에서 공장을 견학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동문은 공장이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드러내면서도 과감하게 공간을 개방한 ‘새로운 폐기의 공간’이라 말한다. 모든 도전의 시간들이 다 김 동문에게 의미가 있지만, 특히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도 깨닫게 됐다.
“저희 사무소의 첫 공장 건축 프로젝트였어요. 공장 전문가도 아니고 폐기물 전문가도 아니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공부가 됐어요. 사실 폐기되는 과정은 잘 보이지 않잖아요. 우리가 평소 잘 신경을 쓰지도 않고요.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프라인데도요. 의미 있는 건축주와 프로젝트를 만나서 제 스스로 건축가가 환경 오염, 폐기물 등의 사회적 문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회적 책임감을 갖게 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을 더욱 확장해 온 김 동문은 지난 해 <폐기의 공간사>라는 책을 냈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폐기의 공간들을 통해 단순히 기피시설이 아닌 휴식의 공간, 도시의 랜드마크 등 긍정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해 가는 모습을 따라가며 도시 속 폐기 공간의 존재 이유를 철학적, 건축적으로 탐구해 보았다. 폐기물, 쓸모없다 여겨지는 공간에 새로운 쓰임을 고민하며 건축가로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이어 나가며 사회에 새로운 숨, 가치를 불어 넣고 있는 김 동문은 이를 좀 더 확장해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재건축되는 3천 세대 정도의 큰 아파트 단지에 아이엠팩토리 같은 인프라 시설을 지하에 조성해 보면 어떨까요. 각 세대 안에서 집하장으로 플라스틱을 이동시킨 후 무인으로 플레이크를 생성하고 이를 각자 집에서 3D 프린터로 생필품이나 장난감을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생산의 순환이 가능한 도시 인프라 시스템이 담긴 주거 모습을 설계해 보고 싶습니다.”
47 Modules, 2019-2021, Leehong Kim Architects
이와 더불어 김 동문이 의미 있는 프로젝트로 꼽은 작업 중 하나는 ‘압구정역 지하철 출입구’ 프로젝트다. 6번 출구, 압구정동의 랜드마크인 현대백화점 앞 출입구. 계단을 에스컬레이터로 변경하면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47개의 모듈을 구성해 출입구 구조물을 만들었다. 공공 시설물이었기에 방수벽 설치나 투명하게 보이는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 등 안전과 관련한 제약 사항들이 많았지만,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완성도를 높였다.
“일반적인 평평한 유리는 존재감이 없잖아요. 그래서 왜곡이 될 수도 있고,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색이 들어갈 수도 있는, 다양성 있는 유리의 물성을 연구했어요. 여러 논의 끝에 좀 굴곡이 있는 유리를 선택했고 화강암 석재 부분과 함께 총 47개 모듈이 모여서 만들어졌어요.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라 기억에 남고 성취감도 컸어요.”
김이홍 동문은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찾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창의성과 논리성 그 가운데 어느 지점에 있는 건축가로서 그의 균형 잡기를 잘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건축가로서 분주하게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해 나가는 와중에도 김이홍 동문은 틈틈이 건축 외에 인테리어, 공공예술, 전시 디렉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회사를 운영하고 수많은 프로젝트를 챙기면서도 새로운 제안이 오면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제 스스로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도전해 보는 거죠. 건축가는 창의성이 중요하지만, 법규의 규제로 인해 한계를 마주할 때도 있기 때문에 때로는 자극을 받고 또 자신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풀어낼 창구가 필요합니다.”
김이홍 동문이 또 지속적으로 의미를 찾는 일은 바로 강단에 서는 일. 그는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가르치는 자리이지만 그 역시 배우는 자리이기도 하다.
“건축은 혼자 앉아서 배우거나 가르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건축주를 통해서도 배우고 계속 새로운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하고요. 또 건축 수업은 일방적으로만 이뤄지지 않고 크리틱을 통해서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게 돼요. 학생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는 일도 뜻깊지만 제가 성장하는 데 참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사무소 운영에서도 변화를 주고 있다. 무엇보다 모형이 곳곳에 가득 쌓여있을 만큼 수공예적이고 디자인에 초점을 두어 아틀리에를 운영 중이지만 이러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사무소의 운영과 설계 프로세스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설계 방식의 적용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맥락에서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 새롭게 창출하는 김이홍 동문. 10년 후 김 동문은 또 어떤 가치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
“AI 시대임에도 건축가의 창작 작업은 현장이 중요합니다. 건축가가 직접 몸소 느끼고 소통하며 맥락에 적합한 해결책을 찾아야 하죠. 그럼에도 사무소의 시스템을 잘 구축해 향후 해외 진출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이전 뉴욕에서의 프로젝트 경험뿐 아니라 현재 일본 건축가 ‘켄고 쿠마’의 한국 파트너 건축사로 ‘대구 수성구 진밭골 목재커뮤니티센터’ 설계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경험들이 모여 언젠가 해외 사무소 개소의 토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이홍 동문은 기존에 있는 것, 보이지 않던 곳, 누군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낯설게 본다. 그래서 그의 청사진은 늘, 허공에 떠 있지 않고 현실 위에 새로움을 더해 단단하게 지어진다. 그 밀도 있는 관찰과 몰입으로 완성된 건축물의 쓰임이 어떻게 사회에, 사람에, 환경에 새로운 가치를 전할지 확고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