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RC, 삶을 함께 빚어가는 공동체의 시작
- 2026.02.19
2026학년도 신입생 선발이 모두 끝났다. 우리 대학교 학부 1학년으로 입학하는 모든 신입생은 앞으로 1년간 국제캠퍼스에서 레지덴셜 칼리지(RC, Residential College) 교육을 받게 된다(일부 학과 제외). 우리 대학교는 공동체적 가치를 함양한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전통적인 학습과 생활 체험 교육을 결합한 RC 교육을 2012년, 국제캠퍼스에 전면 도입했다.
세계적인 명문 사학으로 손꼽히는 하버드나 옥스퍼드, 예일, 프린스턴 등과 같은 대학들은 오래전부터 기숙형 교육을 제공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이러한 시도는 우리 대학교에서 최초로 이뤄진 것이었다. 당시 RC 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 학계의 반응은 기대와 우려가 모두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어느덧 14년째를 맞이하는 연세 RC 교육은 한국 대학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RC 교육을 직접 경험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음은 물론이거니와 다수의 대학들이 우리 대학교의 RC 제도를 벤치마킹한 기숙형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140년 전, 언더우드 선교사가 불모지와 같은 이 땅에 복음과 교육의 씨앗을 심었던 것처럼 새로운 일의 시작에는 무수한 도전과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헌신이 깃들어 있다. RC 제도가 처음 도입되던 시기에 RA(Residential Assistant)로 참여해 RC 프로그램의 초석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황대훈 동문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연세 RC의 가치를 새롭게 되새겨본다.
2012년 당시 황대훈 동문은 군 입대와 휴학 등으로 학교를 오래 다니고 있는 학부생이었다. 학교를 오래 다닌 만큼 동아리, 학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선배들로부터 연세의 학풍을 전수받았고 연세 정신에 대한 자부심과 실천의지도 투철했다. 황 동문은 신입생 대상의 RC 교육을 국제캠퍼스에서 시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명감에 이끌려 RA에 자원했다.
“친구들과 동아리, 삶의 터전이 전부 신촌에 있는데 그걸 버리고 송도로 온다는 게 사실 쉽지 않은 일이죠. 그때 생각했던 것은, 저는 연세로부터 정말 많은 걸 받았다고 생각했거든요.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정신과 문화, 학풍 같은 것들이 굉장히 소중하고 어떻게 보면 전공 수업보다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1학년 후배들이 그 모든 것들과 단절돼 국제캠퍼스에서 새로 시작해야 된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었어요. 나 같은 사람이라도 가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사회과학대학 소속이다 보니 아무래도 학생들끼리의 연대와 다양성의 존중 그리고 사회 문제에 대해서 같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참여하려는 태도가 제 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도 했고요.”
황대훈 동문은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연세의 정신적 가치들을 RA 활동을 통해 후배들에게 전해줘야 한다는 특별한 사명감을 느꼈다. 황 동문은 평소 낮에는 신촌캠퍼스에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거나 공강 시간에는 항상 국제캠퍼스에서 학생들과 어울리며 2년간 언더우드 하우스 RA로 활동했다.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게 했어요. RA 중에는 국제캠퍼스에서 공부하고 있는 약대생이나 UIC 출신 학생들의 비율이 높았는데, 저처럼 신촌에 있으면서 신입생들에게 연세의 학생 문화를 전수해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온 학생은 그리 많지는 않았어요. RA는 각 하우스의 RM(Residential Master) 교수들이 직접 선발했는데 경쟁률이 제법 높았죠. 한 개의 하우스당 10명 정도로, 세 개의 하우스에서 총 30명의 RA를 선발했어요.”
RC의 물리적인 시설은 빠르게 완성되었지만, 그곳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당히 많은 것들을 RM 교수와 RA들이 함께 만들어야 했다.
“지금은 총 12개의 하우스가 있지만, 초기에는 언더우드, 에비슨, 알렌 3개의 하우스로 시작했어요. 저는 언더우드 하우스의 RA였습니다. RM이었던 김태훈 교수님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개척 정신과 나눔의 삶을 RC에 불어넣고자 하셨고, 저희 RA들은 ‘Share & Pioneer’를 슬로건으로 하우스 정신과 문화를 함께 만들어갔습니다. 하우스 로고와 컬러도 저희가 직접 다 만들었고, 지금 입고 있는 이 후드집업도 그때 만들었던 것입니다.”
단톡방을 통한 실시간 소통으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면서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선배 역할을 맡았고, 매주 RM 교수와의 회의를 통해 학생들의 진로와 고민을 점검했다. 또한 매 학기 의무제로 1:1 학생 상담을 진행하면서 기숙사 생활에서 겪는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며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었고, 때로는 학생들이 교칙을 위반했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RC 2년 차부터는 RHC(Residential Hall Coordinator)라고 사감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분들을 따로 뽑았어요. 상당히 고학번 선배나 대학원생들이 와서 감독하는 역할을 해주었고, 저희 RA들은 같은 기숙사에서 먹고 자면서 전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든든한 형, 오빠 같은 역할을 했어요. 학과에서는 만날 수 없는, RC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선배인 거예요.”
황대훈 동문은 RC가 단순히 기숙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RM 교수, RA 학생, 그리고 하우스 친구들이 서로 ‘삶의 동반자’가 되어, 대학 생활을 넘어서는 ‘인생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촌과 송도를 매일 오가며 학업과 RA 활동을 병행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지만, 그래도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보람이 컸다고 회상한다.
“RC가 ‘삶을 함께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 사건이 있었어요. 제가 담당했던 학생 중에 미국에서 유학 온 웰쉬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이 학생이 어느 날 새벽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는 호소를 하는 거예요. 한밤중에 송도에 문을 연 병원을 찾아야 했고, 상황이 긴급했어요. 여러 군데 전화를 하고 수소문 끝에 응급실을 운영 중인 큰 병원을 가게 됐는데, 알고 보니 이 학생이 매우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었고 그게 발작을 한 거였어요. 스무 살짜리 미국 청년이 한국에 와서 의료보험도 안 되고, 지병으로 큰일을 당하게 생겼으니 굉장히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상황이었어요. 본국에 있는 부모님과 통화를 했는데 부모님들이 현장에 RA와 RM 교수가 있다고 하니까 안심된다고 하시면서 곁에서 잘 지켜봐 달라고 하셨고 상당히 큰 비용이었는데 바로 의료비를 송금해 주셨어요.”
학생의 부모님은 RA와 RM 교수를 신뢰하며 현장의 도움을 청했고, 황 동문은 직접 의료비를 밤중에 인출해 지불하는 등 모든 과정을 책임졌다. 다행히 그 학생은 무사히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그때 진심으로 ‘내가 이 아이들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나중에 그 부모님께서 손 편지를 써서 보내주셨는데, 우리 아들이 멀리 한국 땅에 가서 공부한다고 할 때 사실 굉장히 걱정이 많았고 발작이 일어났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연세대에 있는 선배와 교수들이 이렇게 잘 관리를 해줘서 너무 안심되고 고맙다는 내용이었어요.”
황대훈 동문은 RC 하우스 프로그램 외에도 초창기 다양한 RC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김태훈 교수가 자전거 업체와 협력해 국제캠퍼스에 300대의 자전거를 유치했을 때 황 동문은 자전거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자전거 공방 ‘굴리샘’을 만들고, 학생들이 직접 자전거를 관리하고 수리할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으로 이어지게 했다.
“오랜만에 국제캠퍼스에 와봤는데, 1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자전거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고 학생들이 그걸 잘 사용하는 걸 보니까 뿌듯하네요.”
황 동문은 주말에 집에 가지 않고 하우스에 남아 있는 학생들과 함께 센트럴파크를 산책하는 송도 프로그램, 자전거 투어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고, 밸런타인데이나 블랙데이, 빼빼로데이 등 각종 기념일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이벤트를 열어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희망하는 학생들을 모아서 밥과 술을 먹으며 인생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여러 가지 활동들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가졌던 활동은 사회과학 도서 읽기 모임이었어요. 신촌캠퍼스에서 진행하던 사회과학 도서 읽기 모임을 RC에도 도입해, 전공 불문하고 희망 학생을 모집했는데 약 20명의 학생들이 모였어요.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책을 읽고 각자의 주장과 논의를 펼치는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씩 2년간 꾸준히 진행했는데, 사회 문제를 토론하며 지적 성장을 도모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때의 학생들 중에는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는 학생도 있고, 저를 따라 기자가 된 후배도 있답니다.”
연말에는 언더우드 하우스 전원 300명을 대상으로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해리 포터 롤플레잉’ 이벤트를 일주일간 진행하기도 했다. 캠퍼스 곳곳을 해리 포터의 세계관으로 꾸미고 RA들이 교수 역할을 하며, 빗자루 타기나 죽음을 먹는 자 찾기 등 게임을 운영해 학생들을 몰입시키는 대형 축제였다.
“인테리어에도 무척 공을 들였고 여러 가지 이벤트를 준비하는 데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기억이 납니다. 온라인의 세계관과 오프라인이 연동되는 거대한 테마파크 같은 것을 만든 셈이었어요. 학생들에게 이곳이 곧 ‘집’이 되고 ‘가족’이 된다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게 우리의 목표였어요. 실제로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공동체 유대감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학과 공부는 알아서 하는 것이지만 함께 부대끼고 즐기면서 만든 추억이 연세대 생활의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교육적 효과도 크다고 생각해요.”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행사가 있어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너무도 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 웅크리고 있는 소심한 학생들은 누군가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한다. 바로 RA들이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었다.
황대훈 동문은 RA 1기로 RM 교수들과 함께 해외 선진 RC 대학들을 탐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버드, 예일, 유펜, 브라운 등 독창적이고 오랜 전통을 가진 대학들을 찾아가서 그곳의 학생들과 마스터 교수들과 대화하며, 학생들이 살고 있는 룸에도 방문해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었다.
“해외 대학의 경우 학과 시스템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에 RC 하우스가 졸업할 때까지 정체성을 형성하는 문화이죠. 하우스들끼리 스포츠 경기를 하기 때문에 운동 잘하는 학생을 빼가려는 경쟁까지 발생해요. 반면에 한국은 학과 중심의 문화가 공고히 자리 잡고 있죠. 비록 외국 대학처럼 4년 동안 RC를 하긴 어렵지만, 학생들의 인격적 성숙을 키울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인 1학년 때 서로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진 다른 학과의 학생들이 같은 방을 쓰며 친구가 되는 경험은 그 어느 대학에서도 쉽게 누릴 수 없는 연세 RC만의 독보적인 강점이에요.”
“RC 교육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굉장히 많은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죠. 제가 RA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기자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연세대학교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이 자판기에서 물건을 사듯 등록금을 내고 교육 서비스를 구매하는 곳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고 개인의 성장을 이끌어주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대학들도 RC 시스템을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손쉽게 지식을 얻을 수 있는 AI 시대에는 더더욱 삶의 배움이 실현되는 RC의 가치가 더 중요해질 겁니다.”
황대훈 동문은 국제캠퍼스에서의 RC 1년은 신촌캠퍼스에서 본격적인 대학 생활을 하기 전의 유예된 기간이 아니라 자신만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귀한 시간이라면서, 학생들에게 ‘국제캠퍼스만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줄 것을 당부한다.
“대학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에요. 대학에서 누리는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와 전통을 배우는 것, 그게 그 대학을 가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연세가 만들어 놓은 학생 문화와 학생 사회의 전통은 무엇일까요? 신촌에 가보면 140년 된 배움의 터전에서 선배들이 살아왔던 것들, 그리고 선배들이 한국 사회에 자기를 던져 참여하면서 실천해 왔던 많은 것들이 우리의 문화로 남아서 다른 대학과는 차별화된 연세인만의 학풍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죠. 그러니 이곳 국제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어울려서 문화를 만들려고 했으면 좋겠어요. 학교에만 맡기지 말고, 학생들이 함께 돌아보고 나누며 새로운 문화를 지속해서 꽃피웠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