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굽는 쿠키 가게 - 삶의 굴곡을 딛고 전하는 따스한 위로와 진심 어린 응원

‘정애쿠키’ 이정애 대표(영어영문학 65)
  • 2026.02.13

서울 도심에 있으면서도 한옥이 즐비하고 아날로그적인 정취가 가득한 계동길. 한 블럭만 나와도 고층 빌딩 사이 꽉 막힌 도로, 답답한 도시 풍경이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생활인들의 골목이었지만, 이곳에 다양한 세대와 국적의 사람들이 찾아오며 북적북적하다. 북촌으로 이어지는 이 계동 골목에 오래 전부터 자리를 잡고 정성을 다해 쿠키를 구우며 정다운 미소와 손길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전하고 있는 이정애 동문. 여든이 넘은 고령임에도 자신의 쓰임에 감사하며 매일매일 쿠키를 만든다.

 

유학을 잊게 한, 낭만 가득한 캠퍼스의 행복

이정애 동문은 십여 년 전, 68세의 늦깎이로 계동 골목에 작은 쿠키 가게를 오픈했다. 보통 60대 후반은 정년 후 바쁘게 달려온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고 취미를 즐기며 여유를 누리는 시기이지만, 이 동문은 인생 2막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의 이런 도전 정신은 대학 때부터 이어져 온 것. 이 동문이 우리 대학교에 입학했던 1965년에는 여성이 대학에 가는 것이 드문 일이었다. 65학번 영문학과 학생은 총 36명이었는데, 여자 동기는 단 9명이었다. 게다가 연세에 입학한 계기가 일본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서였다고 하니, 어떤 일에서든 적극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물론 개방적인 가풍도 한몫 했다. 

 

“고등학생 때 우리 집은 부산이었는데 대가족이라 아버지와 삼촌, 작은 아버지랑 전부 같이 살았거든요. 작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일본 유학을 권하셨어요. 일본에 있는 국제기독교대학에 가면 교육 수준도 좋고, 전액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하셨죠. 대신 강의를 영어나 일본어로 들어야 했는데, 일본어는 가서 살다 보면 자연스레 늘 수도 있지만 영어는 집중적인 공부가 필요했죠. 방학 때 입시공부보다는 영어 회화를 배우러 다녔어요. 그럼에도 미국 공보원에 가서 영어 테스트를 받았는데 통과가 안 됐어요. 유학은 물건너 간 것이었죠. 그런데 마침 연세대학교가 그 대학과 자매 학교여서 교환학생으로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급하게 연세대학교에 입학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됐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정애 동문은 고3 여름 방학부터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합5불’이라는 문구를 붙여 놓고, 입시를 위한 공부에 집중했다. 특히 수학 공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수학의 정석을 3회독하며 실력을 다졌다. 죽도록 몰입해서 공부했던 그때의 4개월이 인생 전체에서 무엇인가를 가장 열심히 했던 시기였다고, 그만큼 열심히 공부했다고 회상했다.
 

“그때 입학 시험은 국영수가 필수, 과학 분야와 사회 분야에서 선택 과목이 두 과목이었어요. 총 다섯 과목을 시험 보는데 수학 시험 문제가 어땠냐면, 칠판에 여덟 문제를 적어두고 백지를 나눠줬어요. 시험 마치고 나오는데 다른 남학생들은 수학이 거의 백지로 텅텅 비어 있더라고요. 면접 시험 때 교수님이 수학 몇 문제 풀었나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자신 있게 푼 거는 다섯 문제고 세 문제는 다 풀긴 했는데 맞았는지 확신이 안 선다니까 ‘합격했군!’ 딱 그러시더라고요.”

 

이정애 동문은 그렇게 높은 성적을 받고 바라던 연세에 입학했다. 하지만 원래의 목표였던 일본 유학은 가지 않았다.

 

“막상 입학해 보니, 학교가 너무너무 좋았어요. 현재 치과대학 쪽 언덕에 알로하 기숙사가 있었고 청송대 쪽으로 논지당 가는 길을 지나서 등하교를 했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 시간의 향기나 분위기가 행복감을 주었죠. 책 한 권 들고 뒷산으로 가서 읽기도 하고, 언더우드 동상 앞에서 사진 찍은 기억도 생생해요. 당시에는 문과대학이 언더우드관을 사용했어요. 그곳에서 훌륭한 교수님들의 명강의를 듣던 기억도 나네요. 그때도 아카라카가 있었거든요. 장충체육관에 연고전 농구 경기를 응원하러 다니기도 했고… 참 재미있고 낭만이 가득했어요. 열심히 공부해 연세에 들어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본 유학은 금세 잊어버렸죠.(웃음)” 

 

1) 언더우드 동상 앞에서 영문과 학생들과 함께(1968. 11), 첫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이정애 동문.
2) 노천극장에서(1968. 4), 가장 오른쪽이 이정애 동문.
3) 여학생 기숙사 ‘알로하’ 송년 파티, 1967. 12

 

 

 

 

여성으로서 느끼는 한계 속 멈추지 않은 열정

졸업 후 이정애 동문은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 증권거래소 부산지소에서 비서직으로 일하게 됐다. 당시 명문대 영문과를 졸업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최대의 기회는 임원 비서직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업무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성에 맞지 않았다. 임원 비서로는 주체적으로 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 동문은 자신에게 맞는 일을 고민했다.


“취업이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 교직이수를 했었거든요. 대학 시절 경험했던 교직 실습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며 좋았던 기억도 많아서 자연스레 교편을 잡게 됐어요. 부산의 여고에서 시작한 교사 생활은 보람도 있었고 적성에 잘 맞았어요. 결혼할 때 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축하해 줬던 기억도 나네요.” 

 

그러나 즐거웠던 교사 생활도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결혼 후 서울로 발령 받은 남편을 따라와야 했기에 교편을 놓았다. 서울에서도 교직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아이를 가지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후 오랫 동안 전업 주부로서의 삶을 살았다. 아이 셋을 기르며 살다 보니 다른 일을 꿈꿀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이 치킨 체인점 운영을 권했고 아파트 단지 앞에 매장을 열었다. 1988년, 마침 올림픽 특수로 꽤 수익을 내며 운영했다. 


 
“5년 정도 신나게 운영했죠. 그러다 분당으로 이사하게 됐고 남편 퇴직 후 본격적으로 무엇인가 해야겠다 싶어 베이커리 체인점을 알아봤는데 투자금이 너무 많더라고요. 여기저기서 정보를 듣다가 만두 체인점이 괜찮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예전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던 저는 그 체인점 간판 글씨체가 너무 마음에 쏙 들더라고요. 그래서 본사에 무작정 찾아갔어요. 초기 사업 비용도 적고, 간판의 글씨체를 중국 캘리그래퍼가 썼다고 하니 해봐야겠다 결심했어요. (웃음)” 

 

여러 지역을 고민하던 중, 수원 남문 쪽에 만두 체인점을 오픈했다. 매출이 가파르게 올라 높은 월세를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였지만, 근처에 있던 기업이 이전하며 상권이 이동하고 여러 직원들을 관리하는 스트레스도 쌓이다 보니 지쳐갔다. 그렇게 7년간 운영하던 만두 체인점을 정리했다. 

 

68세에 도전한 작은 쿠키 가게, SNS의 명소로

다시 일을 놓게 된 이정애 동문. 답답했던 그에게 딸이 작은 쿠키 가게 창업을 추천했다. 당시 이 동문의 나이 68세였다. 
“뭔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68살이었지만 계속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뭐든지 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취직을 하려고 보니 나이 때문에 갈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그렇다면 혼자서 소일거리도 될 겸, 작게 단일품목을, 잘하는 것으로 해보자 했어요. 오래 전부터 아이들에게, 학생들에게 구워주던 쿠키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딸이 추천했어요. 다들 맛있다고들 하니, 괜찮겠다 싶었죠.” 

 

그렇게 적당한 월세의 작은 공간을 구하다 만난 곳이 북촌 한옥마을 초입의 4평짜리 가게였다. 호젓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넣은 ‘정애쿠키’를 열었다. 작은 골목에서 동네 단골들과 함께 정을 나누며 자리를 지켜온 것이 어느덧 2024년 10주년을 맞았다. 현재는 젠지(GenZ) 세대라 불리는 젊은 세대부터 예전부터 즐겨찾는 단골들, 다양한 국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은 가게 앞을 지나가다, 혹은 쿠키를 사고 인증샷을 찍는 모습이 일상이 되었다.

 

정애쿠키의 대표 메뉴는 고추 쿠키와 초코 쿠키, 그리고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기본맛 정애쿠키 세 가지다. 특히 고추 쿠키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메뉴로 맛도 좋아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고추 쿠키는 사돈댁에서 매해 보내오던 고추 부각을 쿠키와 함께 먹다 의외로 어울리는 조합을 발견해 쿠키로 개발했다. 고추가 들어있으니 매울 것 같지만 담백한 맛이 반전 매력이다. 손이 많이 가는 고추 부각이 필수재료이다 보니 그만큼 정성이 배가 들어간다. 쿠키 반죽은 모두 국산 밀과 통밀을 쓸 만큼 ‘내 아이들에게도 먹일 수 있는’ 건강한 재료로 만든다. 게다가 10년간 쿠키 가격을 800원으로 유지했고, 몇 달 전 단 100원을 올렸을 정도로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행복이 피어나는 정다운 쿠키 가게

어떤 때는 일일이 수제로 정성을 다해 쿠키를 만드는 일이 힘에 부치기도 한다. 좋은 식재료에 반해 쿠키 가격이 너무 낮아 과연 남는 게 있을까 걱정될 정도다. 그 스스로도 그만두려는 마음을 먹은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일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늘어가고 있다.


 
“그냥 하다 보니 재작년에 만 10년이 됐어요. 사실 10년 정도 됐으면 그만둘 때도 됐다 싶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몇 개월 전부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에 소개가 되면서 손님이 늘었어요. 외국인 손님들도 SNS 보고 왔다면서 보여줘요. 어떤 때는 40-50대 중년 여성들이 전국에서 찾아와서 늦은 나이에 가게를 시작한 제게 용기를 얻어 간다고 하기도 하고요. 또 어떤 이들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힘이 들어 그만둘까 싶었는데 저를 보고 마음을 잡게 됐다고 하고요. 이렇게 그만두지 말라는 건가,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도구로 나를 쓰시려나 보다,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저 역시 사람들에게 용기를 얻기도 하고요. 처음에 쿠키 가게를 연다니까 반대했던 친구들도 이제는 노년에 아무일 안 하고 쉬는 것보다 더 잘한 결정이라고 적극적으로 응원해줘요. 덕분에 다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작은 쿠키 가게의 주인으로 여러 손님을 만나며 그의 마음에 즐거움과 행복을 준 사연도 많다. 

 

“가게를 오픈한 다음 해 연말, 자주 들르던 젊은 커플이 찾아왔어요. 한 해를 보내며 1년 동안 자신들을 행복하게 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정애쿠키가 있어서 감사 인사를 하러 왔다고요. 너무 감동을 받았죠.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말에 내가 올 해 무슨 일을 잘했나, 잘못했나, 내년에는 무슨 계획을 세울까 등의 생각을 할 텐데, 그 손님들은 자신을 행복하게 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감사 인사를 전한 거예요. 그들을 보면서 이렇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청년들도 있구나, 우리 미래 세대에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어려움을 감사로, 아픔을 공감으로 변화시키는 용기

사실 이정애 동문이 10주년을 채우고 쿠키 가게를 그만두려고 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건강 문제로 오래 전부터 무리를 해서 가게를 열고 있었던 것이다. 3년 전 척추협착증 진단을 받고 수개월 동안 치료 강도를 높이면서도 가게 운영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수술까지 받았다. 게다가 이 동문은 오래 전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고 현재까지도 치료받고 있을 만큼, 지속적인 건강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나이가 있으니 척추 협착증 수술을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약물 치료에서 주사 치료를 거쳐 시술까지 권유받으니, 차라리 여행도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그냥 수술을 받는 게 낫겠다 싶었죠. 마침 수술도 잘 됐고요. 93년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는 모두가 죽는 병이라 여겼어요. 마지막이다 싶었는지 친척, 가족들이 다 얼굴 보러 한 번씩 왔다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었죠. 계속 살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담담하게 치료를 받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괜찮아졌어요. 아직도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지만 먹는 약도 예전보다 점점 줄었죠.”

 

병원에 가면 몸을 아껴야지 싶다가도 이 작은 가게에 돌아오면 다시 바쁘게 일한다. 넘어져 슬개골이 깨진 일도 있었지만, 목발 짚고 고등학교 동창회 여행을 가기도 했고 빙판길에 넘어져 오른손을 다쳤을 때도 왼손이 있어 다행이다 생각하며 열심히 쿠키를 만들었다. 이 동문은 그저 이 모든 어려움이 아픈 사람을 이해해보라는 신의 뜻으로 여긴다. 

 

“팔 다리가 부러지고 허리까지, 별 경험을 다 한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원망스럽진 않았어요.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다 느껴보는 경험을 골고루 주시는 것이라고요. 그리고 이제는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내가 가진 것, 나를 보고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는구나 싶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아픈 것 같고요. 요즘은 나의 모든 재능을 사람들에게 다 쓰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요.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여러 가지 건강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것을 오히려 타인에 대한 이해와 감사로 가치 있게 바꿔내는 이정애 동문의 긍정성과 용기가 돋보인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기에 늦은 나이의 새로운 시작, 도전도 가능했던 것이리라.

 

또 다른 따듯한 이야기들을 구워 낼, 새 시작

정애쿠키는 곧 북촌 마을을 떠나 연남동으로 자리를 옮긴다(연남동 227-16). 아쉽게 정든 곳을 떠나지만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벌써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다. 3월 1일 오픈을 앞두고 화가인 딸과 사위가 나서서 인테리어 작업을 직접 해주고 있다. 딸은 언제나 이 동문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든든한 응원군이다. 

 

“처음엔 북촌 근처를 떠나기 싫기도 했지만, 집이 연희동이라 더 가깝고 근처에 시장과 주차장도 있고 위치도 딱 마음에 들어요. 가게를 새로 여는 만큼 새 메뉴도 구상하고 있어요. 바로 키토 쿠키예요. 요즘 건강식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설탕을 안 넣고 탄수화물이 안 들어가요. 밀가루 대신 아몬드가루를 쓰기도 하고.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건강식이에요. 딸이 레시피 연구도 도와주고 있어요.”

 

이정애 동문이 처음 쿠키 가게를 창업했을 때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할 수 있을 만큼 쿠키를 구울 예정’이었다면, 이제는 그 ‘언제까지’라는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팔순이 넘은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동문은 연간 363일 가게 문을 열고 있다. 설날과 추석 당일 하루씩만 문을 닫는다.

 

“수익이 남는 달도, 사실 마이너스인 달도 있어요. 그래도 그냥 하는 거예요. 그냥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알아주고 또 오게 되고, 더 할 수 있게 되고요.” 

 

오래된 골목길, 작은 테이블 두어 개가 놓여져 있는 정다운 가게에서 시작해, 이제 곧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힙플레이스에 새롭게 문을 여는 정애쿠키. 1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나눈 고소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깊어졌다. 이정애 동문은 이제 또 어떤 향기와 맛으로 새로운 인연을 만나, 세상에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전하게 될까. 정성으로 빚어낸 쿠키 한 조각마다 담긴 따뜻한 마음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다독이며 퍼져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