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 작품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술사를 들려주는 사람, 전원경 예술전문작가(주거환경학 89)
  • 2025.11.18

우리의 시선과 감성을 사로잡는 한 점의 그림, 가슴 깊이 스며드는 선율. 그저 시각과 청각을 매혹하는 아름다움만이 이유일까? 아마도 예술 작품 속에 겹겹이 쌓인,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와 마주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역사의 숨결이, 작가의 치열한 삶이, 혹은 시대를 초월한 인간 존재의 보편적 질문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 말이다. 예술에 깃든 다채로운 이야기에 인류사의 거시적인 통찰을 더해 흥미로운 서사로 풀어내는 아트 스토리텔러 전원경 동문. 그의 깊이 있는 해설을 통해 예술은 더 이상 미술관이나 공연장의 낯선 존재가 아니라, 인간 삶의 한 조각이 되어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나를 찾아가는 암중모색의 시간

전원경 동문에게 대학 시절은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학과 공부를 하며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이어졌다.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고, 찾아나설 용기도 부족했다. 되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지만, 당시에는 막막함뿐이었다고 회고한다.

 

“미국의 유명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마흔이 되어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20년 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는 거예요. 그는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 몇 달이나 생각해 봤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알 수 없었다.’고 말했죠. 제게는 대학 4학년이 바로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대학 시절은 고민의 시간들 사이로 전원경 동문에게 가능성의 길을 보여준 시기이기도 했다. 그가 가진 ‘글쓰기’ 재능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전공에는 도무지 마음을 붙이질 못했고 사회학을 부전공했어요. 한 번은 수업을 기다리면서 사회학과 리포트를 쓰고 있었어요. 당시에는 워드프로세서가 막 도입되던 때라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리포트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한 번 쓰면 고치기가 어려웠어요. 리포트를 쓰고 있는데 옆 친구가 저를 보더니 ‘어떻게 그렇게 바로바로 쓰냐’며 깜짝 놀라는 거예요. ‘너 정말 글을 잘 쓰는구나!’라고요. 그때가 제가 다른 사람에게 글에 대해 인정받은 최초의 경험입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백일장에서 상을 타본 적도 없어요.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대학 시절 알게 된 것이죠.”

 

사회학과에서 다양한 리포트를 쓰며 글쓰기 재능과 재미를 깨닫고 쓰는 방법을 배우면서, 미로 같았던 대학 시절 속에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일에 대한 단초를 찾아냈다. 그에게 또 다른 위안이 된 것은 고전음악이었다. 고전음악 동호회에 가입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안개 같았던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물론, 그때만 해도 음악이 자신의 직업과 연결될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글쓰기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또 있네요. 당시 백주년기념관이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서울시향 공연이 있었어요. 연주회 리뷰를 써서 연세춘추에 기고했다가 원고를 돌려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 신문에는 이런 원고 안 싣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순수 예술에 대한 기사를 싣는 것조차 꺼릴 정도로 민중문화 바람이 강한 시기라 제가 발 디딜 틈이 없었죠.”

 

당시에는 실패와 방황의 시간인 줄로만 알았던 4년.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느꼈지만, 사실 모든 고민의 시간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발견해 내고 있었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성공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때로는 긴 터널과 같았던 시간, 암중모색의 나날들 속에서 오히려 중요한 무언가를 만들었다고 생각돼요.”
 

글 쓰는 직장인의 삶

졸업 후에도 전 동문은 여전히 명확히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어려웠다. 결국 남들처럼 안정적인 대기업 취업을 선택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기업에서 여성 직원의 역할은 한정적이었고 기회도 많지 않았다. 비서직군으로 입사한 그는 임원들의 연설문 작성 업무를 주로 맡았다. 최선을 다했고 인정도 받았지만,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느껴 1년 반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한 국제 행사를 앞두고 필요한 모든 연설문을 제가 작성했어요. 그런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행사에 출장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만둔다고 하니, 그제야 싱가포르에 보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때도 여전히 암중모색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지만, 최소한 이곳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한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 수 있었죠.”

 

이후 전 동문은 외국계 음반사를 거쳐 국내 대표 클래식·공연 예술 전문 매거진 <객석>으로 옮기면서 예술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길을 걷게 된다. 대학 시절부터 두려움 없이 글쓰기를 해왔던 터라, 글쓰기 역량이 핵심인 이 길은 그에게 망설임 없는 선택이었다.

 

“요리 잘하는 주부들에게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아주 쉬워요.’ 하며 레시피를 알려주잖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하면 절대 그 맛이 안 나요. (웃음)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닌 거죠. 제게 글쓰기가 그런 것 같아요. 한 번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음반사에 있을 때, 클래식 음반이 100만 장 이상씩 팔리던 시절이었는데, 그 소개 글을 굉장히 재미있게 썼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인지 제가 글을 쓰면 어디선가 항상 제안이 왔어요. <객석>에서도 저를 채용한 이유였고요.”

 

전원경 동문은 연구를 업으로 삼는 남편과 함께 영국과 미국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한국의 신문, 잡지에 기고했다. 그때 그의 글을 눈여겨보던 <주간동아> 데스크의 제안으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특채로 <주간동아>에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특채는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전 동문은 업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특채 입사는 오히려 다른 직원들의 견제를 불러왔고, 그는 외로운 직장 생활을 해야 했다.

스스로를 증명한 영국에서의 박사 과정

예술전문기자로 활동하던 전원경 동문은 2009년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영국 글라스고대학교 문화콘텐츠 전공 박사 과정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직장에 다니면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상황이 싫었어요. 이대로 주저앉으면 끝이라는 생각뿐이었죠. 여러 상황에 밀려 직장 생활을 이어가긴 했지만, 제 스스로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확신했습니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돌아와도 과연 쓸모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괴롭기도 했죠. 하지만 이 박사 학위는 원피스의 브로치처럼,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나를 빛내줄 존재가 될 거로 생각했어요. 제 스스로에게 그 브로치를 선물하고 싶었죠.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아님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것만큼 큰 보상은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오랫동안 암중모색의 시간을 지나오며 단단해진 그가 선택한 길에는 어떤 미래도 약속되지 않았지만,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했다. 그렇게 영국으로 떠나 시작한 박사 과정은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공부와 육아를 병행했고, 영어 또한 능숙하지 않았다. 교수와 1:1로 논의하는 튜토리얼은 박사 과정의 필수 단계였는데, 논문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조언을 받는 시간이 늘 힘들었다. 무엇인가 써가면 지적당하고 꾸중을 듣는 듯한 기분에 의기소침해지는 날이 길었고, 박사 과정을 도저히 끝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영어가 미숙하니 하루에 A4 반 장을 쓰는 게 목표였어요. 간신히 써서 가면 지도 교수는 이러저러해서 안 된다고, 틀렸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럼 어떤 방향으로 하면 되는지 가르쳐 달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박사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망연자실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교수님이 한 문서에 서명을 하라고 하는 겁니다. 내용을 보니 3개월 안에 논문을 완성한다는 문서였어요. 의아해하자 교수님이 말씀하시더군요. ‘논문 다 했잖아.’라고요. 아마 20년 가까이 글을 쓴 경험 덕분에 글을 이끌어가는 능력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4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았고, 처음으로 제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나이 마흔넷. 함께 박사 과정에 들어간 동기들 중 그와 함께 졸업한 친구는 단 한 명뿐이었다. 그가 원했던 것처럼, 그 스스로를 증명해 보인 가장 값진 시간이었다. 

마흔넷에 다시 시작, 예술 강사로서 출발

박사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전원경 동문. 예상대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대학 강의 기회조차 얻기 어려웠다. 학부 전공은 전혀 관련이 없었고, 나이는 마흔넷이었다. 대학이 원하는 어떤 조건에도 맞지 않아 무수한 실패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 지난한 시간 속에서도 기회는 숨어 있었다.

 

“한 대학에서 전담 교수를 모집했는데, 이사장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후 대학 교수 자리는 포기했어요. 결과적으로 저는 마흔넷까지 계속 실패만 거듭한 셈이죠. 그때까지 성공한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4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죠. 그런데 어느 지인이 예술의전당 강의를 연결해 주겠다고 해서 기다렸어요. 한 달이 넘도록 연락이 오지 않더군요.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한숨을 쉬면서 말했어요. 필요하면 먼저 전화를 했지 않겠냐고요. 저는 그런 식의 거절을 20년 동안 당해왔기 때문에 별로 기가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달렸죠.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된 강의는 토요일 특강 네 번이었다. 사실 토요일 강의는 수강생이 거의 없어서 모두가 꺼리는 시간대였다. 그러나 전원경 동문은 개의치 않고 최선을 다해 강의를 준비했다. 2시간 강의 분량을 200자 원고지 100장 분량으로 모두 쓴 후, 스톱워치를 켜고 멘트 시간을 체크해 가며 강의 전체를 다 외울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렇게 매번 최선을 다해 준비한 덕분에 그의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정확한 시간 배분, 마지막 1분까지 맞추는 강의 시간은 모두가 놀라워할 정도였다. 철저한 준비만큼 강의 수준과 재미도 남다르다 보니, 그의 강의를 한 번 들으면 더 듣고 싶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 번은 예술의전당 강의 때 질문 시간을 만들었는데, 한 분이 손을 들더니 ‘선생님 강의를 계속 들으려면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묻더라고요. 강의가 더 잡힌 게 없어서 모르겠다고 대답했는데, 뒤쪽에서 한 분이 손을 들더니 ‘2학기부터 전원경 선생님 강의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처음 제가 매달렸던 예술의전당 담당 차장님이었죠. 그래서 그 이후 7년 동안 내리 강의를 했습니다.”

 

전원경 동문은 예술의전당 아카데미를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대전예술의전당 등 다양한 문화예술 기관에서 예술과 시대, 아티스트, 도시, 문화 등에 관해 강의를 진행해 왔고,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아카데믹 강의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유튜브 <삼프로TV>의 ‘아트앤더시티’ 코너에서 예술 작품을 도시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해석하고 쉽게 설명해 대중적인 인기를 끌며 주목받고 있다. 마치 한 도시를 여행하며 예술 작품을 살펴보는 듯한 그의 해설은 특색있고 흥미롭게 예술 이야기를 전한다. 현재 그가 진행하고 있는 강의는 약 80개에 달한다. 대표적으로, 대전 DTC아트센터와 두산아트센터에서는 <예술, 역사를 만들다>를, 교보문고와는 <명화, 시대를 담다 – 예술로 만나는 역사의 위대한 순간들>을 주제로 강의 중이다. 그의 강의는 미술사뿐 아니라 역사, 도시, 아티스트 등 다양한 소재를 기반으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수많은 강의로 바쁜 와중에 발간한 책도 다수다.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를 비롯해 <런던 미술관 산책>, <클림트>, <페르메이르> 등 예술과 역사, 문화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다양한 책을 써왔고 뛰어난 예술 작품이 역사의 변화와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탐구한 <예술, 역사를 만들다>를 시작으로 <예술, 도시를 만나다>, <예술, 인간을 말하다>까지 예술 3부작 시리즈는 7년 동안 집필한 전원경 동문의 대표작이다. 그림과 글이 함께 수록된 이 책들은 예술과 역사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시각으로 찬사를 받았다. 때로는 해외 현지에서 예술을 테마로 한 여행을 기획하고 인솔하기도 한다. 역사적 장소와 미술관을 탐방하며 예술 작품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현장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이다. 뉴욕 3대 미술관과 공연 예술을 함께 즐기는 테마 여행, 오스트리아 빈 기행,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도쿄 투어 등, 위대한 예술의 현장에서 작품을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안내한다. 여행 인솔을 한다는 게 신경 쓸 일도 많고 체력적으로도 부치는 일이지만 위대한 예술 작품을 목도하며 그 생생한 감동을 함께 나누는 일은 기꺼이 행복한 일이라고 전 동문은 말한다.

한 편의 작품을 만들 듯, 작품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

전원경 동문의 삶을 들여다보면 매 순간을 엄청난 에너지를 투입하며 사는 듯하다. 그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이라 자부하기에 모든 강의에서 그렇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집중력 있게 준비하고 강의하는 모습은 마치 예술가가 한 편의 공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몰입하는 것을 보는 듯하다.

 

“저는 사실 강의하는 것을 매우 좋아해요. 스스로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느낀 계기가 강의였습니다. 제가 글라스고에 있을 때, 캘빈 그로브(Kelvin Grove)라는 뮤지엄이 있는데 그 안에 ‘Every Picture Tells a Story’라는 갤러리가 있었어요. 모든 작품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다는 뜻이죠. 그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어떤 이유로 그려졌는지, 예를 들면 왕관은 무엇을 의미하고 여자의 의상은 어떤 의미로 입혀졌고, 이 벽지는 왜 그려졌는지 등을 초등학생 정도의 눈높이에서 친절하게 설명한 갤러리였어요. 그 말이 어찌 보면 제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그림이 아무런 사연 없이 그려질 리가 없으며 그 사연을 쫓아가며 설명해 주면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 것이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훨씬 더 구체적이고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겠죠. 그래서 그 사연들을 글로도 쓰고 말로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이 가지는 의미는 가볍거나 쉽지 않고 오히려 난해하기 일쑤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일이 전 동문에게 주어진 가장 큰 미션이기도 하다. 나누고 싶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추리고 완성도를 높여 강의를 준비한다. 그동안 120개 정도의 강의를 만들어 마음에 들지 않는 40개를 버리고 80개의 강의를 진행했다는 말에서 그가 강의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림이든 글이든 관심 있는 내용은 한 번 보면 대부분 기억이 난다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전원경 동문. 그가 외우고 있는 미술 도판만 3천여 점에 달한다. 책을 한 번 읽으면 삼분의 이는 거의 기억이 난다고. 강의 스크립트를 완벽하게 외워서 강의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는 그의 강연은 마치 한 편의 공연과 같다. 클래식 연주자가 자신의 연주에 더 몰입하기 위해 암보를 하듯, 강의 내용에 더욱 몰입하기 위해 외우는 것이다.

뛰어난 재능은 예술의 새로운 길을 찾는다

전원경 동문은 오랜 시간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세상을 탐색했다. 아직까지 넷플릭스나 AI 같은 신기술, 새로운 미디어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사진으로 기록이 남겨지기 전, 회화가 주요 기록이었던 근대 이전 시대의 작품, 즉 당대 일상을 상상하게 하는 작품들을 사랑한다. 클래식 음악과 미술을 넘나들며 예술 작품들의 무궁무진한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전 동문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AI 기술과 예술의 공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진기가 등장하자 초상화가라는 직업은 빠르게 사라졌어요. 그때 많은 화가들이 우려를 표했죠. 하지만 모네와 같은 젊은 화가들은 사진이 빛에 감응하여 찍히는 것임을 이해하고, 빛의 원리를 연구했습니다. 카메라 렌즈가 빛을 투과해 상을 맺듯, 사람의 눈도 렌즈를 통해 사물을 보지만 카메라보다 부정확한 대신 더 주관적으로 포착한다는 사실에 주목했어요. 그리하여 그들은 더욱 감각적인 방법으로 사물을 캔버스에 옮겨 보기로 했죠. 이것이 미술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강력한 유파인 인상파의 탄생 이야기예요. 이처럼 기술의 발전이 근본적으로 인간의 창조성을 위협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뛰어난 재능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반드시 찾을 겁니다. 모네가 그랬듯이 말이죠.”

 

전원경 동문은 강연을 통해 더 많은 대중과 만나고 싶다. 소수의 특정 회원만을 위한 강연이 아닌, 더 많은 대중에게 예술과 문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바람이다. 자신의 강의를 원하는 이들이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다. 그런 취지로 시작한 <삼프로TV>의 ‘아트앤더시티’ 시리즈는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문화예술 이야기에 관심 있는 대중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절감하는 중이다. 연세 캠퍼스에서도 생활과학대학과 경영대학에서 예술을 통한 통찰을 전하는 전 동문의 강연이 있었고, 연세소식과의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두산아트센터에서 ‘예술, 역사를 만들다’를 주제로 강연이 있었다.

전 동문은 가끔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의 강의를 듣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때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확신할 수 없었던 자신의 앞길, ‘실패가 디폴트값’이라 여겼던 시간들에 비추어 보면 오늘이 믿기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실패의 시간에도 끊임없이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고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오늘의 그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예술 작품들의 세계를 말과 글로 전달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된 것이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다. 예술 작품을 통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간 삶의 본질을 길어 올려 이야기하는 아트스토리텔러 전원경 동문. 그의 이야기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많은 이들을 예술의 심오한 세계로 초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