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로 예술하는 사람

박새별 싱어송라이터/인공지능 연구자(심리학 05)
  • 2025.10.17

예술적 창의성은 오직 인간 고유의 영역인가 하는 질문은 오랜 시간 동안 사색의 대상이었다. 예술 영역에 첨단 기술을 접목하려는 실험적인 시도들이 증가하고 있으나, 대다수는 기술과 예술의 본질적 독창성이 상충된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예술과 기술의 융합은 오히려 예술가의 창의적 발상을 확장하고 실현시키는 촉매제가 되며, 작품의 완성도와 독창성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음악, 미술, 문학 등 다채로운 예술 분야에서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자신만의 감성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동시에 선구적인 인공지능 연구자로서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잇고 있는 박새별 동문 역시 그렇다. 그만의 독창적인 시각과 AI 기술의 결합으로 탄생한 음악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시대를 앞서는 새로움을 선사한다.

 

연세에서 만난 ‘행복’을 향한 이정표

박새별 동문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함께 성장하며 자연스레 깊은 감수성을 길러왔다. 천재적인 피아노 실력을 지녔던 언니의 연주는 늘 그의 곁에 있었고, 덕분에 박 동문 역시 음을 정확히 짚어내는 절대 음감과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갖추게 되었다. 박 동문은 부모님의 권유로 음악 대신 학업의 길을 택했지만 그럼에도 음악을 통해 내면의 울림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감수성을 잃지 않았다. 대학 시절 전공한 심리학 공부는 그 감수성을 한층 깊게 다져주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은 그 자신에게 음악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심리학개론 강의에서 교수님께서 주신 미션이 있었어요.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 불행했던 순간을 돌아보고 자신을 정의 내리는 것이었죠. 대학에 오기까지 공부만 했지, 나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막상 대학생이 되어도 변한 것은 없었죠. 과제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박새별’밖에 없더라고요. 그게 좀 안타까웠어요. 그러면서 제 인생을 돌아보니 살면서 불행했던 것은 다 제가 만든 일이 아니라 환경적인 것, 외적인 것들 때문이더라고요. 자발적인 동기로 뭔가 한 게 있다면 그것은 음악이었어요.” 

 

자신의 삶을 더 행복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고민이 많던 시절. 그는 서은국 교수의 행복심리학 강의에서 ‘사람의 행복은 기질로서 정해져 있다. 타고난 것을 기준으로 좀 더 행복하거나 불행한 순간이 교차하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과 노력으로 교차의 파동을 더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가끔은 행복과 불행이 요동치는 상태이지만 행복해지려 노력한다면 어쩌면 매일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더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를 고민하다 얻은 답이 ‘음악’이었다.

 

뮤지션으로서의 시작, 음악으로 치유되는 시간

음악으로 삶의 방향을 다잡은 후 기회는 빨리 왔다. 당시 명문대생으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부를 수 있는, 섹시한 콘셉트의 가수를 기획하고 있던 한 기획사의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가 어쩐지 자신과 잘 맞지 않고 부담스러웠던 박새별 동문. 고민하던 차에 마침 안테나뮤직에서는 전혀 결이 다른, 명문대니 섹시 콘셉트니 하는 것 없이 피아노 치며 노래부르는 아티스트로서 여가수를 찾고 있었고, 결국 박새별 동문은 안테나뮤직에 들어가게 됐다.

 

“안테나뮤직 대표님과 유희열 님은 제게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으면서 다양한 세상을 경험해 보라고 했어요. 공부를 잘하는 것이 똑똑한 것이 아니라고요. 그 말을 듣고 무조건 이 회사에 가야 한다는 결심을 했죠. 처음 유희열 님이 미션을 주셨는데, 제가 곡을 써 봤다고 생각하셨나봐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죠. 이제 음악을 시작해 보려 한다고 하니, 그게 오히려 신선했었나 봐요. 곡을 써서 데모를 달라고 하는데, 진짜 열심히 했죠. 무려 50곡을 써서 보냈어요. 후에 대표님이 너무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날것 그대로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의 데모 음원들은, 훌륭한 뮤지션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지닌 ‘원석’임을 여실히 증명했다. 대다수의 신인 가수가 앨범 대부분을 자작곡으로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탄생한 곡들은 박새별 동문의 1집 앨범을 가득 채우며 그의 독보적인 음악적 역량을 오롯이 보여주었다. 젊은 패기와 도전으로 일궈낸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동시에 그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치유이자 깊은 성장의 시간이었다.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우울감이나 외로움들이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치유가 되더라고요. 덕분에 음악을 한다는 것이 정말 내게 맞는 옷이구나, 확신하게 됐어요.”

 

상상하며 몰입하는 ‘경험’으로서의 음악

박새별 동문은 2008년 발매된 첫 번째 EP ‘Diary’를 시작으로 2010년 첫 정규앨범 ‘새벽별’, 2013년  두번째 앨범 ‘하이힐’, 2019년 ‘Ballades Op.3’, 2023년 ‘Everblooming’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폭넓게 확장해 왔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을 넘어, 깊이 있는 감성 속에 숨겨진 단단함과 치밀한 곡 구성으로 팬들과 음악계 모두에게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마치 첫 시작에서 50곡을 써내려갔던 그 집요함과 몰입처럼, 박새별 동문은 언제나 작품의 완성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지난해 개최된 ‘Everblooming’ 콘서트 또한 단순한 음악 감상을 넘어, 오롯이 ‘음악적 경험’을 선사하고자 모든 요소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박 동문은 당시의 남다른 시도를 이렇게 회상한다.

 

“국립과천과학관 천체투영관에서 돔 스크린을 활용해 음악과 함께 자연, 사계, 우주가 펼쳐지는 경험을 전달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200명 남짓한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했지만, 일반 공연 대관은 매우 어려운 곳이었죠. 하지만 공연팀과 함께 여러 번 제안한 끝에 결국 성사시킬 수 있었어요. 다른 악기 없이 그랜드 피아노 한 대와 제 목소리만으로 두 시간을 온전히 채워야 했기에, 공연 100일 전부터 매일 리허설을 거듭했어요. 페달을 계속 밟아야 해서 공연 무대에 오를 때 드레스에 운동화를 신어야 할 만큼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죠. 심지어 ‘음악 차력쇼’라는 팬들의 후기가 나올 정도였어요. (웃음)”

 

피아노 반주와 목소리,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만으로 관객의 몰입을 극대화하는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그의 음악이 결코 고정된 형식에 머무르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공감각적으로 확장되어 관객과 깊이 소통하는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의 정수였다. 이처럼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선사하는 박새별 동문은 새로운 도전과 좋아하는 일, 그리고 반드시 해내고자 하는 놀라운 집중력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마음이 이끄는 곳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공학자가 된 뮤지션, 인공지능과의 만남

박새별 동문은 자신을 뮤지션이라는 하나의 틀 안에 가두지 않았다. 이러한 다층적인 성향은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경험하게 하려 했던 그의 시도와도 맥이 닿아 있다. 뮤지션 활동과 더불어 흥미를 느꼈던 심리학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고자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 진학한 박 동문은 공학의 세계를 접하며 과학 패러다임 변화의 중심에 인공지능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물론, 공학 비전공자로서 코딩 작업을 새롭게 배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대입 수능을 위해 <수학의 정석>을 7회독하며 개념과 공식을 모두 암기했던 박 동문 특유의 집요한 집중력은 코딩 학습을 넘어 인공지능 음악 연구라는 더욱 깊은 길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박 동문이 주목한 것은 인공지능 기술을 음악에 접목하는 것이었다. 음악을 언어처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하며, 자연어 처리(NLP) 기술을 활용해 음표와 박자 등을 언어의 문장이나 단어 형태로 구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멜로디를 텍스트처럼 변환하여 분석하는 알고리즘인 ‘멜투워드(Mel2Word)’를 고안해냈다. 멜투워드는 단순한 음정 표현을 넘어, 멜로디가 단어나 문장처럼 의미와 맥락을 가진 수치로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음악의 고유성에 대한 깊은 고민과 탐구에서 시작된 이 도구는, 음악의 독창성, 대중성, 예술성까지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2019년 학위 이수 요건을 갖추고도 연구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이수를 유예했을 만큼 그의 열정은 남달랐다. 불과 지난해 발표된 이 알고리즘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와 인공지능 음악으로 완성한 앨범

박새별 동문은 자신의 음악에 AI를 적극 활용하며 연구와 예술에 접목시키고 있다. 특히 9월 말 선보인 앨범 ‘숨:Still’에서는 보컬과 본인의 주무기인 피아노를 제외한 모든 악기 소리를 AI로 만들었다. 전곡의 작사, 작곡부터 연주까지 모든 과정을 1인 프로젝트로 완성한, 세상에 보기 힘든 새로운 앨범이다. 지난 2023년 발표했던 Everblooming의 두 번째 이야기로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만난 고요와 숨의 기록을 담고 있다. 숲이 들려준 호흡, 별빛이 남긴 기도, 거리에 스며든 손길 등 영원히 이어지는 숨결을 따라 자연, 예술, 문화 속에 스며든 시간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사계절의 순환 속에서 멈춘 듯 보이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을 노래로 담았다. 

 

9월 30일 발표한 새 앨범 ‘숨:Still’. 박새별 동문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전 곡을 만들고, 앨범 커버까지 직접 디자인했다.

 

 


특히 이 앨범은 APEC을 앞두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유튜브 채널 7707과 협업 프로젝트 ‘Gyeongju AlgoRHYTHM’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천년고도 경주의 숨결을 인공지능 기술로 구현해 낸 이 앨범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AI로 음악을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되었지만, 과연 AI가 만든 것이 진정한 예술 작품인가 하는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박 동문의 생각은 어떨까?

 

“저는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 좋은 ‘장인’에 의해서라면요. 컴퓨터와 씨름하면서 이 앨범을 약 두 달간 만들었어요. 연주자도 없고 따로 녹음을 한 것도 없고 저 혼자 만들었죠. 하나의 곡을 만드는 데 5 크레딧을 쓴다면 제가 5천 크레딧을 썼어요. 천 곡 이상을 만들었다는 거죠. AI가 무수히 다양한 버전들을 생성해 주지만 결국 무엇이 더 좋은지 알아보는 것은 인간의 역할이고 안목이라는 것이죠. 여러 버전 중에서 에센스만을 남기다 보면 곡이 나오게 되죠. AI는 짧은 시간 안에 100개의 곡을 줄 수 있지만, 사람이 그 시간에 100개의 곡을 만들 수는 없거든요. 보컬 멜로디와 피아노 반주를 제가 만들고, AI에게 드럼을 넣어 달라고 요청하면 여러 버전의 곡을 만들어 줘요. 그중에 가장 좋은 버전을 선택하고, 또 거기에 다른 악기를 넣어서 다시 여러 버전으로 편곡된 곡을 생성해 주는 식이에요. 그런 끝없는 재창작 과정에서 제 의도에 맞는 곡을 완성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번 앨범 크레딧에 ‘Instruments arrangement by 박새별, Assist by AI’라고 적었어요. AI가 나를 도와서 내가 모든 악기와 편곡을 함께 했다는 의미예요.”

 

AI가 만들어낸 무수한 소리의 원석을 아티스트의 안목으로 선택하고 다듬어 완성한 색다른 협업이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인간과 기계가 서로 도와가면서, 새로운 차원의 따뜻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재현했다. 이번 앨범은 아티스트로서도, 연구자로서도 박 동문에게 특별한 앨범이다. 결국 어떤 목소리와 악기로 어떻게 조합을 해내느냐 하는 것은 아티스트의 역할이기 때문에 예술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연세에서 받은 영감과 행복, 다시 연세를 향해

박새별 동문은 뮤지션과 공학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빼곡하게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도 현재 언더우드국제대학에서 ‘COMPUTATIONAL CREATIVITY AND AI’와 ‘MUSIC INFORMATION RETRIEVAL’ 강의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연세에서의 배움 덕분에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뮤지션으로서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기에, 강단에 서는 것이 그에게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수업이 있는 날은 다른 스케줄을 빼고 강의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학생들을 만나며 새삼 느끼고 다짐하게 되는 것들도 많다. 자신이 경험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동기 부여를 하고 멘토가 되어 그들이 삶을 설계하고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저는 연세에서 큰 영감을 받았고 너무 좋은 교수님들 덕분에 제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처음 강의를 하게 됐을 때 너무 설렜어요. 그만큼 더 열심히 강의를 준비하고 수업 준비에도 최선을 다하죠. 왜냐하면 학생들이 20년 전 저 같으니까요. 제가 연세에서 들었던 이야기, 좋은 경험을 학생들에게도 미션처럼 해주고 싶어요. 첫 수업 때 학생들에게 말해요.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선택한 수업이라면 변경하라고요. 저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공부의 즐거움을 알게 되고, 공부를 통해 세상과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졌으면 해요. 다시 캠퍼스에 오니 연세의 좋은 강의, 학창시절 들었던 이야기들, 나를 찾아가는 시간 속에서 느꼈던 백양로의 날씨, 감정까지.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그래서 너무 바쁜 일상 속에서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강의를 준비한다. 출산했을 때도 휴강을 하지 않았고, 학교 가는 길에 운전하면서 노래 연습을 할 정도로 아껴쓰는 시간이지만 얻는 보람이 더 크다. 무엇보다도 그가 나누고 싶은 소망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제가 살아가는 인생의 어떤 목표라는 것은 결국 이 세상 모두가 같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과거 교수님의 한마디에서 제가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다르게 보면 또 살아가는 힘을 어디서는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아요.”


얼핏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뮤지션, 공학자, 교수, 그리고 엄마라는 다층적인 페르소나로 삶을 영위하는 박새별 동문에게, 그중 가장 애착을 느끼는 역할 혹은 본질적인 정체성이 무엇인지 물었다. 박 동문은 이 모든 영역을 분리하지 않고, 스스로를 ‘테크놀로지로 예술하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그만큼 그의 우주는 확장됐고 작은 원석이었던 그는 이제 행복의 온기, 독창적인 감수성, 고유한 색채, 그리고 내면의 열정이 발산하는 찬란한 빛으로 다채롭게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