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작은 행복을 전하며 편안한 쉼이 되는 예능

나영석 프로듀서(행정학 94)
  • 2025.07.17

예능 프로그램은 ‘재미’다. 그리고 그 ‘재미’는 단지 한바탕 웃어버리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재미의 목적에 따라 웃음을 전하는 방식도, 사람도, 장면들도 각기 다르다. 때론 웃음의 지평 너머에 ‘인간다움’의 감동과 위로도 공존할 수 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예능계의 ‘미다스 손’으로 불리는 나영석 동문은 신선한 시도와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콘텐츠로 편안한 웃음과 위로, 일상 속의 즐거움을 전해왔다. 나영석 동문이 만들어내는 예능은 일상에 지친 이들을 위한 쉼의 시간을 전하며, 따듯한 시선으로 일상의 행복을 찾아간다.

 

나를 찾아가는 대학 시절 극회 활동

나영석 동문은 우리 대학교 행정학과 출신이다. 예능계에서 한 획을 그은 프로듀서이기에 그의 학부 전공은 다소 의외로 느껴진다. 아직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선택한 진로였다고.

 

“당시 막연히 연세대에 가고 싶은데,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는 깊게 고민하지 못했어요. 지방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제게 연세는 멋지고 쿨하게 보이는 느낌, 그런 이미지가 있었어요. 그때는 요즘처럼 자신의 재능이나 진로에 대해 깊게 고민하던 시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공무원을 하라고 하셨고, 그래서 행정학과를 가게 됐어요. 진로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대학 시절 여러 경험을 하면서 고민하게 됐죠.”

 

입학 후 탐색했던 꿈, 미래에 대한 고민은 사회과학대 극회 ‘토굴’ 활동으로 이어졌다. 나영석 동문의 청춘, 그리고 삶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친 시간이다.

 

“그때만 해도 초중고 시절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점수를 따는 곳이었죠. 저 역시 공부 말고는 다른 활동을 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어요. 대학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나 자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그런 고민을 하다, 딱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없지만 연극부에 들어가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회과학대 극회에 들어갔어요.”

 

극회 경험을 떠올리며 나 동문은 ‘재미있었다’고 추억한다. 연기, 연출, 극작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보며, 그는 스며들 듯 연극부 활동에 깊은 애정을 갖게 됐다.

 

“학과 수업을 듣는 것보다 연극부 활동을 해보니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됐어요. 연출, 연기, 대본 작성 등을 하면서 내가 이 행위를 참 좋아하는구나 생각했죠. 꼭 연극이나, 프로듀서가 아니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쩌면 제가 현재의 예능 PD 일을 하게 된 건 연극부에서의 경험 덕분인 셈이죠.”

 

극회에서 경험한 각각의 역할도 재미있었지만, 나영석 동문이 가장 매력을 느꼈던 점은 ‘함께 협업한다’는 점이었다.

 

“서로 각각 다른 사람들이 모여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작업을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대립하기도 하고 합심하기도 하면서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매력적이었어요. ‘내가 연극 연출가 혹은 작가가 돼야겠다’는 구체적인 꿈은 없었지만 이런 협업 과정을 통해 무엇인가를 완성해 나가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희미하게 그런 열망은 있었어요.”

 

비슷한 일을 찾아나서며, 그는 영화사에서 조연출로 일해 보기도 하고 코미디 대본 공모에 응모하기도 했다. 코미디 작가에 도전했다니 ‘극회’ 하면 떠오르는 무게감, 진지함과는 거리가 있는 것도 같지만 듣고 보니 현재의 예능 PD로서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이었다.

 

“연극에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비극도 있고, 희극도 있고, 현대극도 있고 전통극도 있고. 다 경험해 보니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만드는 소동극’과 같이 좀 재미 있는, 사람들에게 편하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쉬운 장르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너무 어려운 연극, 수십 년 전의 대본을 가지고 극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거기서는 매력을 못 느끼겠더라고요.”

 

어쩌면 협업의 과정에 매력을 느끼고, 대중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에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나영석 동문의 길이 자연스레 예능 PD로 이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여러 번의 진로 탐색을 거쳐, 그는 KBS PD 입사 시험에 도전했고 PD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시청자를 사로잡은 나영석표 예능의 편안함

방송국에 입사한 나영석 동문은 하고 싶었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아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투입됐다. 낙담하기도 했다지만, 사실 어떤 프로그램이든지 여러 사람들의 협업 없이 완성하기는 힘든 일이기에 그 안에서 재미와 매력을 느끼고 배울 점들을 찾아갔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이제 평생의 일이 됐다는 나영석 동문. 정해져 있는 프레임을 벗어나 사람들과 함께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에 재미를 느끼며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중적 인기와 사랑을 받게 됐다. KBS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은 분당 시청률 50%를 돌파하며 전 국민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았고, 그는 스타 PD로서 이름을 알리게 됐다. 배우, 가수, 코미디언 등 다양한 출연자에 가끔 출연하는 스태프들까지, 함께 모여 마치 MT를 가거나 캠핑을 하듯 하루를 보내며 게임도 하고 밥도 같이 먹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1박 2일의 리얼함을 그대로 담았다. 스태프들이 함께하는 모습까지 보여지는 것은 단순한 리얼함이 아니라 ‘함께 완성해 간다는 것’의 의미, 그 즐거움을 뭉근하게 드러낸 것이 아닐까.

 

<1박 2일>을 책임지는 PD로서 성공을 거둔 후 나 동문은 오랜 친구와 이별하듯 KBS, 그리고 <1박 2일> 프로그램을 떠나 CJ E&M의 TVN으로 소속을 옮겼다. 이후에도 <꽃보다 할배>, <윤식당>, <삼시세끼> 등 나 동문이 기획하고 연출한 프로그램들은 큰 인기를 끌며 승승장구했다. 손대는 작품마다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며 그만의 스타일이 확고하게 정립됐다. 여행, 시골 생활, 요리 등 일상 속 먹고사는 소소한 일들, 그 속에 즐거움이 녹아있다. 이전까지의 예능은 다소 과장된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그는 좀 더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예능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 목적. 나영석 동문은 일상의 소소함 속에 누구나 그리는 행복을 찾고 보여주며 고단한 삶에 위로와 쉼이 되기를 소망했다.

 

“예능은 웃음을 전하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휴식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늘 추구하는 것이죠. 모두 돈벌이에 고단한 삶을 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일하며 휘둘리고, 힘든 하루를 보내요. 집에 들어와 TV를 켜고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비로소 한숨을 돌리죠. 그때 TV를 보면서 휴식이 됐으면 좋겠어요. 예능을 보며 껄껄 웃어도 좋지만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일상 속에서 잠시 쉬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 틀어 놓고 딴 일 해도 좋을, 그런 류의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어요.”

 

대단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

나영석 동문이 만든 프로그램의 또 한 가지 매력은 ‘반전’이다. 출연자는 언뜻 생각하기에 예능과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이다. 진지하고 베일에 싸여 있을 것 같은 배우들이 자주 출연하는 것이 흥미를 끄는 지점이다. 평범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배우들의 일상, 보지 못했던 그들의 인간미를 느끼게 된다. 환상을 깨고 그들과 공감하게 되고, 그 반전의 매력에 자꾸 빠져들게 한다.

 

“저는 사람들이 TV를 보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TV를 켰는데 멋진 사람으로만 나오던 배우가 TV 속에서 물을 엎지르고 실수하고 실없는 농담을 한다면 시청자가 느끼는 것은 안정감이거든요. 저 대단해 보이는 사람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네, 하며 동질감을 느끼죠. 예를 들어 윤여정 선생님과 같은 경우, 요리를 하며 실수도 하잖아요. 말도 못 붙일 것 같은 이미지였지만 내 친구, 옆집 이웃 같은 그런 소박한 모습에 인간적 매력도 담겨 있고, 결국 보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 점이 제가 만드는 예능 프로그램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이가 우리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나 동문의 프로그램은 시청자뿐만 아니라 출연하는 이들에게도 그만큼 새롭고 편하다. 그래서 기존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이들이 그가 섭외하면 흔쾌히 출연한다. 그런 제작 의도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에 잘 출연하지 않는 이들도 소위 ‘나영석 사단’이라 불릴 만큼 나 동문과 기꺼이 함께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프로그램이 다 의미 있고 애정이 가는 콘텐츠이지만 나 동문이 꼽는 가장 뜻깊은 프로그램은 <꽃보다 할배>라고 한다. 배우인 어르신들이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며 겪는 과정 속에서 재미와 감동이 모두 녹아 있어 애정이 남다르다. 돌이켜 보면 그 역시도 많은 것을 배웠다.

 

예능 PD는 ‘잘 듣는 사람’

나영석 동문은 예능 PD로서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많은 이들이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영감은 트렌디한 그 무엇이기보다는, 모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학창 시절 연극반 생활에서부터 이어져 온 그만의 철학이자 그가 생각하는 예능 PD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PD를 하길 참 잘했다 생각을 가끔 하는데 제가 볼 때 예능이라는 장르가 거의 유일하게 집단 창작 체제를 이루고 있는 방송의 카테고리인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만 해도 작가나 감독이 중심이 되지만 예능은 때론 10명 이상의 작가와 난상 토론을 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요. 그래서 제가 트렌디함을 캐치하기보다는 함께 일하는 사람 중 트렌디한 사람이 있으면 돼죠. 기발함도 좋지만 예능 PD의 역할은 사실 ‘그냥 잘 듣는 일’이 아닌가 해요.”

 

나 동문은 TVN을 거쳐 현재 이우정 작가와 함께 설립한 ‘에그이즈커밍(Egg is Coming)’이라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에서 일하고 있다. 유능한 PD, 작가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는 에그이즈커밍은 최근 ‘핫하다는 콘텐츠들은 다 이곳에서 만든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참신하고 재밌는 콘텐츠들을 내놓고 있다. 이곳에서도 나영석 동문은 그만의 스타일을 잃지 않으면서도 과거 예능의 룰에 갇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예능을 선보이고 있다. 예능의 세대 교체라 불릴 만큼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뉴미디어의 시대, 예능의 변화

유튜브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한 변화도 빠르게 받아들였다. 처음 개설한 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에서 나 동문은 뉴미디어의 ‘날것’의 특성을 살린 콘텐츠들을 선보였다. 사옥 곳곳에서 일하는 이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나영석의 나불나불>과 같은 코너에서는 그가 호스트인 토크쇼처럼 그의 예능에 함께했던 출연자들과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편하게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직접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계획에 없던, 재미있는 이벤트를 만들기도 한다. 백상예술대상 수상 공약으로 시작된 그의 팬미팅이 실제 진행되기도 했다. 나 동문의 인기만큼 티켓팅의 열기도 매진 속도도 빨랐다. 유튜브를 잘 해보기 위해 파워 유튜버이자 웹툰 작가 ‘침착맨’의 채널에 직접 출연해 유튜브 운영과 소통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콘텐츠 역시 재미와 화제성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구석구석 소소하지만 재미있고, 편안하면서도 트렌디한 콘텐츠들이 그의 플랫폼에 가득하다.

 

새로운 뉴미디어와 나영석 동문이 가지는 예능의 결이 맞닿는 지점은 결국 날것의 편안함,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생생한 즐거움이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뉴미디어 플랫폼으로의 전환 속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시도하고,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그는 뉴미디어의 가능성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봐요. 그리고 그 변화는 예측보다 무척 빨리 왔고 또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요. 내가 필요한 특정 일, 공부와 관련해 보는 게 아니라 단지 재미로 콘텐츠를 본다고 할 때, TV를 켜고 본다는 사람은 10%도 안 될 거예요. 이제 대부분 휴대폰이 자신의 메인 플랫폼이 되고 SNS로 소통하고,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짤막한 영상으로 프로그램을 소비하잖아요. 이제 더 이상 오늘 무슨 프로그램을 하니 빨리 집에 가서 봐야지, 하지 않아요. 요즘 친구들은 그런 세대가 아니죠. 몇 시에 어떤 프로그램을 한다, 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요. 그런 경험이 없는 친구들이 사회에 나가 주도층이 될 텐데 그런 세대에게 TV라는 플랫폼은 의미 없는 플랫폼이 되지 않을까요?”

 

나 동문의 말대로 이제 특정 시간에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본다는 개념은 희미해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것이 중심이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게시된 추천 프로그램을 VOD나 OTT에서 직접 찾아 소비하는 시대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이런 플랫폼들이 더 강력해질 것’이라는 나 동문의 말에 무게가 실린다.

 

예능 대표 PD로서의 책임을 놓지 않는 길

카메라 뒤에만 있던 예능 PD가 주목받으며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고,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면서 스타 PD라는 타이틀로 불리게 된 것은 나영석 동문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평가받는다. 그만큼 그가 무엇을 하든지 현재까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고 매 프로그램은 기대를 받는다. 예능 콘텐츠계에서 그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도 크다. 특히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갈 후배들에게 더욱 그렇다. 최근 나영석 동문과 함께했던 많은 후배 PD들의 활약은 이미 많은 인기프로그램에서 입증되고 있는데, 나 동문에게 배운 후배들이 예능의 미래를 책임지는 대표 PD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의 예능에 대한 남다른 안목, 공식이 있을까 싶다.

 

“딱 보면 잘될 프로그램인지 아닌지, 사실 그런 건 잘 몰라요. 예능 프로그램이 워낙 종류가 다양하니까요. 제 관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건 예상 외로 잘되는 프로그램은 무척 간단해요. 기획 의도가 간단하죠. 사람들은 몹시 복잡하고 흥미를 끌 만한 여러 요소를 더하고 그래야 잘된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후배들에게 늘 하는 얘기 중 하나는 기획의도가 한 줄이 넘어가면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곧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것이죠. 사실 예능을 보는 사람들도 복잡한 것은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나영석 동문은 디렉터로서의 역할이 커진 만큼 후배들과 예능 분야의 성장을 위해 남다른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현업을 한 지 오래됐고 이제 후배들이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그런 위치가 된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프로그램 하나둘 더 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글쎄요. 제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예능 프로그램이 국내에서만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하나쯤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거든요. 그 과정에서 제가 일정 부분이라도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예능 PD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청했다. 나영석 동문은 예능 PD의 자질이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감각을 키우기 위한 경험을 했으면 한다고, 신중하게 말한다.

 

“사실 조언이라는 것이 참 조심스럽긴 해요. 10명의 PD에게 물어보면 대답이 다 다를 거예요. 저는 책을 읽는 것을 권해요. 어려운 학문서가 아니라 만화책이든 무협지든 눈에 닿는 책, 재미있어서 보게 되는 그런 책들이요. 특히 소설은 기승전결이 있는 ‘극’이잖아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스토리라는 것은 대부분 구조가 있거든요. 그 구조에 대한 감각이 좀 있으면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많은 도움이 돼요.”

 

이와 함께 그가 강조하는 것은 팀플레이 경험을 해 보라는 것, 이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고 통합하는 경험은 예능 PD로서 가져야 할 같이 일하는 법, 협업의 스킬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요즘 팀 과제를 많이들 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많이 싸울 거예요. 어떤 사람은 나만 다 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은 그냥 무임승차하는 것 같고.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조율하고, 통합하는 일이 참 중요해요. 그런 스킬, 협업 감각이 꼭 필요합니다.”

 

연세를 대표하는 얼굴로, 애정을 담아

나영석 동문은 지난 6월 26일, 우리 대학교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연세의 가능성, 정신,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선정됐다. 그 스스로는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모교에 대한 추억을 되짚어보게 된 계기도 됐다. 큰 각오보다는 연세에 대한 애정을 먼저 말한다.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홍보대사에 선정이 됐네요. (웃음) 사실 바쁘다 보면 모교는 잊고 살게 되거든요. 그런데 간혹 학교에 오면 반갑고 너무 좋아요. 오늘도요. 대학 시절의 감성이 다시 떠올라요. 백양로를 올라올 때의 느낌, 언더우드관의 벽돌의 감촉, 담쟁이 덩굴과 함께 피는 꽃들, 청송대에 부는 바람. 너무 개인적이지만 그만큼 큰 행복이죠. 학교에 올 때마다 그 순간이 제겐 모교가 주는 정서이고 소중함이에요. 지난해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러 학교에 왔었는데, 일반적인 신촌의 젊은 분위기 이런 것보다는 연희관, 청송대 등 제가 좋아했던 곳들의 감성을 담았죠. 저한테는 무척 소중한 추억이어서 앞으로도 연세에 대해 무엇인가 콘텐츠를 만들게 된다면 홍보의 관점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연세’를 담고 싶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을 담아내는 시선 자체가 따듯하지 않을까요.”

 

나영석 동문은 홍보대사로서 거창한 역할보다는 연세 동문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 우선일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 제가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해요. 학교에 누가 되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냥 열심히 해야겠다는 것이에요. 그게 가장 기본이 될 것 같아요.”

 

‘쓸모 없는 일’을 하며 멋지게 나이들기

예능 PD로서의 삶은 사실 편집실에서의 밤샘, 전 세계 곳곳으로의 출장, 밤까지 이어지는 아이디어 회의 등 쉴 틈없이 분주하다. 많은 이들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 수많은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정작 나영석 동문의 삶은 쉴 틈 없이 바빴을 터다. 그런 그가 미래에는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원할까. 나 동문이 꿈꾸는 미래, 그만의 멋진 삶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건강하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죠. 그런데 동시에 요즘은 그렇게 공부가 하고 싶어요. 학교 다닐 때도 그렇게 공부에 열심이지 않았는데요, 일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편한 시기가 되면 ‘쓸데없는 공부’가 하고 싶어요. (웃음) 공부라는 게 어딘가에 의미가 있으면 집착하게 되잖아요? 빨리 변호사 시험에 통과해서 돈을 벌자 그러면 스트레스가 되죠. 하지만 예를 들어 통역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순수하게 관심이 가서 라틴어를 좀 공부해야겠다 싶으면 그야말로 지적 호기심과 재미를 위한 것이잖아요. 가장 멋지게 나이가 드는 것은 그런 거 같아요. 또, 여유가 생기면 딸과 함께 촬영지로 갔던 곳 중에서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을 여행하고 싶어요. 스페인과 페루 같은 곳이요.”

 

나영석 동문이 오래 전 썼던 책의 제목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는 그가 지내온 삶을 대변하는 말이자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스스로를 ‘길치’라고 말하지만 그는 매 순간 자신이 재미를 느끼는 것, 사람들에게 편안한 즐거움을 주는 일에서 길을 찾아왔다. 길치가 돼 지도를 들여다보는 일이 잦아지고 막막하더라도, 오히려 그는 기꺼이 헤매며 길을 묻고, 동행을 만나고, 돌아가는 과정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찾아가는 길에서 만난 예능 PD의 삶, 전형적인 것에서 벗어나 기대하지 않았던 삶의 단면을 길어올리는 그의 여정은 계속되고, 또 다른 새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