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집에서, 더 나은 삶을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 홈즈컴퍼니 이태현 대표(도시공학 93)
  • 2025.03.19

1인 가구, 여행 마니아, 워케이션, 액티브 시니어, 세컨드 라이프 등 시대가 변하면서 개개인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필요로 하는 주거의 형태나 요구도 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집을 투자 수단으로 여기는 인식이 강하지만,  어떠한 형태이든 집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는 그 공간을 통해 더 나은 삶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집의 가치와 본질에 집중하며 부동산 산업의 가치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홈즈컴퍼니 이태현 동문을 만났다.

 

 

도시공학과 1기, 무한한 꿈을 키운 첫걸음

이태현 동문은 도시공학과 1기다. 도시공학과가 있는 학교는 현재도 그리 많지 않지만, 93년 당시에는 더욱 낯선 학과였다고 한다. 아직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있거나, 이끌어주는 선배 멘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구체적인 진로가 검증된 학과도 아니었지만, 이태현 동문은 시대적 분위기를 보며 기대를 품었다.

 

“처음 생긴 학과였지만 도시 계획이라니, 졸업하면 굉장히 멋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죠.(웃음) 사실 도시공학과는 다양한 학제 간의 연구가 결합된 학문이라 해외에서는 주로 대학원 과정에 개설돼 있어요. 그런데 당시 건축공학과와 토목공학과 교수님들께서 의지를 가지고 신설하셨죠. 마침 우리나라에 1기 신도시가 막 탄생하는 시점이라 그만큼 도시공학이라는 분야가 무척 중요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죠.”


그럼에도 이제 막 개설된 학과에 진학한다는 것은, 학생들에게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막연함과 불확실함이 있었을 터다. 이태현 동문은 되려 막연했기 때문에 도전적인 대학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는 그때그때 주어진 환경을 즐기는 스타일이거든요. 대학 시절 장난처럼 그러잖아요. 자동차학과에 다니면 언제 자동차 만드냐고요. ‘너는 도시를 언제 만드나?’하는 질문을 듣다 보니 ‘나는 진짜 멋진 도시를 만들거야’, 하는 의지가 생겼죠. 그러려면 실제로 많은 도시를 봐야 하니까 세계 여행도 많이 다녔고, 펀딩을 받아서 학과 차원에서 교수님과 함께 해외 도시를 보러 나가기도 했죠.”

 

그가 기억하는 도시공학과 1기의 캠퍼스 생활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과 같았다. 막연했지만 열려 있는 꿈이 도전과 열정을 북돋았다. 게다가 캠퍼스는 낭만으로 가득했다. 여기에 소규모 학과인 만큼 학생들 간의 끈끈함이 더해져, 이태현 동문의 대학 시절은 밀도 있고 풍성했다.


“처음엔 한 학년밖에 없으니 마치 고등학교 같았어요. 더 친밀했죠. 그게 너무 좋아서 1대 학생회장을 했어요. 당시 90년대의 신촌은 전성기였어요. 농구대잔치에서 연세대 농구팀이 실업팀을 이기고 우승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고, 축제 문화도 이전과 달리 참여하는 축제로 탈바꿈해 백양로 일대에서 각종 이벤트들이 열렸죠. 우리끼리 그 시대, 신촌을 누비며 풍성한 대학 생활을 한 것 같아요. 이후 후배들과도 끈끈했고, 우리 과는 어떻게 가야 할까, 고민도 함께 했죠. 그래서 우리의 꿈이 상처받지 않은 채 졸업할 수 있었어요.”

 

살기 좋은 도시에서의 유학 생활이 준 영감

 

도시공학에 애정이 깊은 만큼 이태현 동문은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고, 때마침 학과 교수의 추천으로 일본 규슈대학교(Kyushu University)로의 유학 기회를 잡게 됐다.


“교수님 지인이 일본 대학교에 있었는데, 유학을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 주시겠다고 하셨죠. 가겠다며 손 든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다들 미국 유학을 가고 싶어했죠. 저도 처음엔 미국 유학을 생각했었지만 남들과 똑같은 곳에 가기보다는 좀 다른 선택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마침 누나도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고, 중학교 때 일본에서 잠시 홈스테이를 한 적도 있어서 심리적 부담이 없었어요. 꼭 일본이라서는 아니고 워낙 해외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데다 좋은 기회까지 생기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죠.”


이태현 동문의 유학 생활은 학업에 대한 내공을 쌓는 것뿐만 아니라, 도시 설계와 관련해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규슈대학교가 있는 후쿠오카는 당시 타임지가 뽑은 ‘아시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에 선정된 만큼, 도시공학 전공자로서 좋은 도시를 들여다보고 체감할 수 있는 거리들이 많았다. 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유학 생활은 없었다.

 

“후쿠오카는 교통, 자연을 갖췄을 뿐 아니라 활기차고 다양성이 가득한 도시예요. 그래서 도시설계 관련 좋은 프로젝트들도 많았어요. 세계 5대 건축가가 공동 주택 단지를 나눠 개발하기도 하고, ‘캐널 시티(Canel City)’라는, 책에서만 보던 유명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가 막 오픈하기도 했어요. 그곳에서 지방 도시가 도시 정책과 계획, 개발을 통해 매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유학 생활은 도시계획이라는 학문의 깊이나 책에서 본 이론이 현실화된 모습까지 모든 시간, 장소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도시개발 전문가

일본에서 석박사를 마친 이태현 동문은 귀국해 병역특례 연구원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입사해 연구원으로 일하며 또 다른 기회를 맞았다. 마침 전국에 혁신도시 10 곳을 선정해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LH가 이 사업을 주도하며 도시계획을 전공한 그의 역할도 커졌다. 전 세계 신도시를 누비며 우리나라 신도시의 조성 방향에 대해 고민했고, 수많은 보고서를 쓰는 날이 이어졌다. 일에 파묻혀 지냈지만 되짚어보면 행복했던 시기다.


“신도시 개발에 참여하는 일은 선진국에서는 좀처럼 쉽지 않아요. 선진국은 더 이상 신도시가 필요가 없어요. 도시 재생을 하죠. 하지만 당시까지 우리나라는 신도시 개발의 여지가 있었고 그 흔치 않은 기회를 통해 신도시를 만드는 일에 몸담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재미있었겠어요?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도시계획 전공을 살려 실무로 연결한 전공자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LH에서 병역특례를 마치고 토지주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던 이 동문은 용산에 대규모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삼성물산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대부분의 도시개발 프로젝트는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만큼 민간기업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의 규모나 기회의 폭이 축소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첫 번째 제안에는 이직을 실행하지 못했다가 몇 년 후 같은 회사에서 다시 제안을 받고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공공 부문을 경험해 보고 민간 사업까지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제가 쌓아온 것들을 더 촘촘하게 민간 프로젝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됐어요. 공공은 명분이 중요하지만 반대로 민간은 사업성이 우선이죠. 도시개발에 국한되지 않고 자금 조달, 콘셉트 개발 등 모든 분야를 꿰뚫고 있어야 했어요. 새벽 2시 전에는 집에 못 갈 정도로 일했어요. 아직도 당시 사업 규모 수치가 기억이 날 정도예요. (웃음)”


일의 강도가 상상 이상이었지만, 민간기업 최초로 추진하는 대규모 업무지구 개발에 참여하며 일의 보람, 또 다른 기회로의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었다. 무엇인가를 새로 만들어 가며 길을 내는 것은 그의 숙명인 것만 같았다. 세계적인 거장 건축가와의 협업, 전 세계 곳곳의 상업 지구 탐방, 세계 최고 브랜드 유치 등 독보적인 프로젝트인 만큼 전 세계의 탑티어들과 대면할 수 있었다. 점점 자신감이 붙어가며 이 동문은 마스터 플랜 기획부터 구현을 위한 최고 플레이어 탐색과 협업, 자금 유치와 운영까지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며 한 단계 도약했다. 그 성장의 원천은 역시 ‘재미’였다.


“민간에서는 이런 일들을 모두 할 수 있어야만 해요. 기획이나 전략을 경험하며 너무 재미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첫 번째 마스터 플랜이 완성되고 한 명품 브랜드 유치를 위해 설득하는 과정에서 제 업무 스타일을 보고 오히려 프랑스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었죠. 그만큼 매사에 최선을 다했어요.”

 

 

국내 부동산 산업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동문들과의 공동 창업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공공과 민간에서 굵직한 성과들을 냈지만, 이태현 동문의 마음 한편에는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왜 우리나라에는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이 없을까?’였다.

 
“좋은 부동산을 개발해서 도시를 더 좋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땅을 싸게 산 다음 브랜드 건물을 짓고 비싸게 팔아 돈을 벌어요. 서비스업이라기보다는 제조업에 가깝죠. 그런 현실에 대해 회의가 생겼어요. 건설사나 시행사가 아닌, 도시개발 전문 회사에 가고 싶었지만 국내에는 없고, 해외를 나가려니 아이가 태어난 시점이라 만만치 않고. 그래서 ‘내가 한 번 만들어 볼까?’하고 생각했죠. 늘 새롭게 무엇인가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별로 두렵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부동산 분야는 시장의 규모가 큰 만큼 필요한 자금 규모도 크다. 작은 기업에서는 시도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대기업에서 느꼈던 한계와 시장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자 실행에 나섰다. 같은 학과 선후배로 돈독했던 이승준 동문(도시공학95), 이재우 동문(도시공학 97)과 함께 1년 반 동안 매주 주말에 만나 스터디를 시작하며 꾸준히 창업을 준비했다.

 

“학생회장을 하면서 학과 친구, 후배들과 함께하는 게 너무 좋아서 ‘U410’이라는 학회를 만들었어요. 같은 학회 멤버로 30년 이상 서로 교류하며 친밀하게 지냈죠. 그러다 보니 서로의 뜻이 잘 맞았어요.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 DNA를 가진 친구들에게 제안했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한 일이다 싶었어요.”

 

사진 왼쪽부터 이재우 대표/코빌리지 부문(도시공학 97), 이태현 대표이사(도시공학 93), 이승준 대표/코리빙 부문(도시공학95)

 

 


의기투합한 그들은 2015년, 홈즈컴퍼니를 공동 창립했다. 3명이 함께 사업을 하면서 사업 관점이나 추진 과정 중 갈등은 없었을까. 각자의 영역에 대한 독립성을 존중하고 서로의 신뢰가 깊은 만큼, 그런 일은 별로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을 모두 경험한 이태현 대표가 전통적인 상업 부동산의 커리어를 바탕으로 산업을 멀리 내다보고 꿈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재우 대표는 제일기획과 네덜란드 MVRDV를 거친 경험을 살려 브랜드 마케팅, 디자인, 홍보 전략을 담당하면서 코빌리지 부문의 대표를 맡고 있다. 현대자동차 신사업 개발, LG CNS 컨설팅 부문에서의 경력을 기반으로 신사업 기획, 비즈니스 컨설팅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이승준 대표는 컨설팅 업무와 더불어 꼼꼼한 운영, 관리를 챙기는 홈즈컴퍼니의 살림꾼 역할도 도맡아 하고 있다. 현재 홈즈컴퍼니의 사업 영역 중 가장 큰 매출을 내고 있고 코리빙 부문의 대표를 맡고 있다.


같은 전공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각자의 강점과 스타일을 가진 세 사람이 함께함으로써 얻게 되는 시너지는 매우 긍정적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도 신뢰지만 세 사람 모두 자기주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데다 그 기저에는 연세 도시공학인으로서의 자부심, 청년 시절 각인된 DNA가 있다고 말한다.


“연세는 자유로움, 자율에서 오는 창의성이 가장 큰 자산인 것 같아요. 흔히들 연대 출신들이 좀 개인적이고 뭉치는 힘이 약하다고들 하지만, 갈수록 더 뭉치는 힘이 커지는 것 같고요. 자율성을 기반으로 집단 지성이 발휘될 때 연세 동문들은 더 뛰어난 경쟁력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큰 자부심을 느끼게 돼요.” (이승준 대표)


“대학에서 학업도 중요하지만 대학 문화를 통해 사회를 경험하게 되잖아요. 그런 점에서 연세의 문화는 타 학교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덕분에 사람들을 만나고 사업을 만들어 갈 때도 틀에 갇혀 있기보다는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재우 대표)


처음에는 부동산 컨설팅회사를 창업해 꽤 승승장구했지만, 보다 실체가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시장과 달리 부동산업이 잘게 분리돼 있다. 시행은 시행대로, 건설은 건설대로, 중개는 중개대로. 이렇게 쪼개져 있기 때문에 산업으로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고민을 계속 안고 있던 이태현 동문은 부동산업의 본질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사업을 꿈꿨다. 그의 말대로 ‘공간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아이템을 가지고, 지속 운영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갔다.


“큰 규모의 자금이 없는데 부동산업을 시작한 것은 스타트업의 성장 공식에서 기인한 것이에요. 가능성 있는 사업 모델로 투자를 잘 받고 이를 기반으로 다음 투자가 이뤄지고. 그렇게 만들어 가면 되겠다 싶었어요. 궁극적으로 부동산에서 한계가 없는 분야가 무엇일까, 고민할 때 결국 주거, 즉 ‘집’에서 답을 찾았죠.”

 

‘진짜 집’을 제공하는 종합 부동산 기업 홈즈컴퍼니

창업한 지 10년이 된 홈즈컴퍼니는 이제 부동산 중개, 개발, 운영 세 가지 주요 축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부동산 기업이 되었다. 창업 초기 투자를 어떻게 받는지, 어떻게 사업을 키워갈지 막막했지만, 특유의 도전의식을 기반으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최대 누적 가맹 수를 기반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부동산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형 부동산 중개 프랜차이즈 ‘미스터 홈즈’를 시작으로, 국내 최초 기업형 코리빙 하우스 ‘홈즈스튜디오(Homes Studio)’, 숙박과 주거 사이, 워크 & 스테이를 위한 레지던스인 ‘홈즈스테이(Homes Stay)’, 라이프스타일 빌리지로 타운형 공유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빌리지(Co-village)’ 등 주거를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 사업을 시작할 무렵도 주거형 부동산 임대시장에는 이미 많은 회사가 있었고, 차별화가 관건이었다. 남들처럼 예쁜 인테리어 마케팅에 집중하기보다는 도시공학 전공자들이 만든 회사답게 넓은 시야로 본질에 집중하고자 했다. 좋은 입지를 저렴하게 구매해 오래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지속적인 가치 창출에 집중했다.


“전국 편의점과 부동산 중 어떤 곳이 더 많을까요? 골목마다 있다는 편의점의 3배 만큼 부동산이 있어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찾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부동산 중개를 전략적으로 시작하게 된 거죠. 또 주거를 아이템으로 하면서 우리가 주거 사업을 하면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더 좋은 집에서 더 나은 삶을 살게 하자’는 미션을 세웠죠. 미션을 줄기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고 코리빙 사업을 시작했어요. 1인 가구들은 사실 집에 산다기보다는 ‘방’에 사는 셈이잖아요. 그들에게 더 좋은 집을 제공하고 ‘진짜 집’에 살게 해주고자 공유 공간에 집에 있던 기능을 넣었어요. 거실처럼 쉴 수 있는 공간, 일하는 공간 등을 패키징 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처음 만든 개념이 쉐어하우스와는 다른 ‘코리빙’이고 홈즈스튜디오 브랜드로 탄생했어요.”

 

1. 홈즈레드 명동  2. 홈즈스테이 명동  3. 홈즈스테이 수원  4. 홈즈스테이 G밸리 가산  5. 홈즈스튜디오 신주쿠(사진 제공: 홈즈컴퍼니)

 

 

 

홈즈컴퍼니의 대표 브랜드인 홈즈스튜디오는 전국 8개 지역과 일본 신주쿠에 위치해 있다. 홈즈스테이는 코로나 시기 위기를 맞은 호텔들을 인수해 공유 공간이 있는 레지던스형 호텔로 론칭했다. 최근에는 좀 더 확장된 개념의 ‘집’을 만드는 데 도전했다. 바로 회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그간의 역량을 집결한 ‘마을’ 조성 프로젝트 ‘코빌리지’다.

 

“도시공학과를 나왔으니 도시를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얘기를 하곤 했어요. 아무 것도 없을 때부터요. 교외에 진짜 주거 마을을 만들어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고 싶었죠. 스마트시티 개념도 도입할 수 있고요. 간삼건축과의 협업으로 강원도에 2만 평 규모로 조성하고 있어요. 올해 착공할 예정이고 2027년도에 600세대 규모로 오픈 예정입니다. 세컨하우스나 워케이션 공간이 될 수도 있겠죠.”


스타트업임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도전을 만들며 독보적인 부동산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홈즈컴퍼니의 가능성은 영국계 글로벌 자산운용사 ICG(Intermediate Capital Group PLC)의 3,000억 원 투자 MOU를 통해 입증됐다. ICG는 이미 유럽에서 코리빙 분야의 상품을 많이 취급해 왔었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의 기관투자자들보다 홈즈컴퍼니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었다.

 

공간에 콘셉트와 콘텐츠를 더해 가치를 높이다

홈즈레드 명동에는 자유롭게 라면을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누들 스테이션이 마련돼 있다.

 

 

 

 

홈즈컴퍼니만의 독창성이 발휘되며 시장을 변화시키는 지점 중 하나는 남다른 콘셉트와 콘텐츠를 통해 세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 일본 신주쿠에 위치한 홈즈스튜디오가 대표적이다.


“사실 부동산 회사는 글로벌 시장 진출이 어려워요. 로컬에 기반한 사업이기 때문이죠. 특히 일본은 시장이 너무 촘촘하기 때문에 좋은 회사와 협업해야 하는데, 도쿄부동산이라는 큰 회사와 서로 간의 니즈가 잘 맞아 신주쿠에 코리빙 공간을 운영하게 됐어요.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타깃팅을 했어요. 기대 이상으로 잘 됐죠. 해외에서는 좋은 집을 찾기가 어렵잖아요. 이제는 한국인 외에 미국 등 다른 국가 사람들도 입주하며 글로벌 브랜드가 됐어요. 철저히 일본에 있는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해 브랜드 가치를 높였고, 최근 일본 부동산 1등 회사인 미츠이 부동산에서 연락이 와서 시나가와에 홈즈스튜디오 2호점을 오픈할 예정이에요.”

 

이태현 대표의 포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외 시장 진출의 확신을 가지게 된 그는 조만간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서의 사업 추진도 계획 중이다. 코리빙이라는 주거 범용 서비스에서 시작해 그가 계획하고 꿈꿨던 ‘가치 중심’의 부동산 산업의 혁신과 변화를 이끌어 가고자 한다. 최근 충무로역 인근에 문을 연 ‘홈즈레드 명동’은 ‘K 컬처 팬들을 위한 가장 편안한 집’을 콘셉트로 설정했다. 단순히 편안한 주거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다른 혁신 산업과 결합해 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시도이다.


“혁신 도시는 결국 혁신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중요해요. 혁신 기업을 유치하면 좋은 사람들을 불러오고 더 혁신적 가치가 생겨 도시 전체가 발전하죠. 우리와 만날 수 있는 혁신 산업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케이팝 산업에 주목했어요. 우리나라에 머무르며 오디션을 보러 오는 이들, 팬미팅이나 쇼케이스,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저희가 직접 기획사 투자와 인큐베이팅까지 하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어요. 이 안에서 케이팝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일본, 태국, 베트남 등까지 아우를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브랜드 네이밍도 ‘레드(Real Experience for Dream)’라고 지었어요. 꿈을 향한 ‘진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죠.”


주거에 혁신을 더해 단지 살거나 머무르는 곳이 아닌 경험의 영역까지 확장, 공간에 더 큰 가치를 더하고 있는 홈즈컴퍼니가 만들어갈 브랜드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장기적으로는 서울 시내 주요 역마다, 도쿄, 서울,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 글로벌 주요 도시에 홈즈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홈즈를 통해 독립했을 때, 결혼했을 때, 나이가 들었을 때, 좋은 집을 필요로 하는 순간들에 많은 이들의 생애 주기마다 찾을 수 있는 도시, 홈즈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진화하는 주거 산업을 누구보다 깊이 있게 통찰하며, 고객에게 ‘집다운 집’을 제공해 남다른 가치를 전달하는 이태현 동문. 홈즈컴퍼니는 2025년 창립 10년 만에 1,200실을 보유하게 됐다. 그는 다음 10년, 글로벌 10개 도시, 국내 100개 역에서 홈즈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늘 새로운 길에 첫걸음을 내디딘 그였기에 그 확신에 힘이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