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영 교수팀, ‘미세한 균열’로 분자 신호 키우고 AI로 읽는 유연 센서 개발
- 2026.11.03
[사진1. (왼쪽부터) 이우영 신소재공학과 교수, 김연홍 박사후연구원, 이승현 석사과정 졸업생, 이준호 석사과정생]
신소재공학과 이우영 교수 연구팀이 금속 박막에 형성한 미세한 균열을 활용해 분자의 광학 신호를 증폭하고, 이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하는 유연 분자 감지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자연의 지질 구조에서 착안한 균열 설계에 표면증강 라만 산란(SERS) 기술과 딥러닝을 결합한 것으로, 미량 물질의 신호를 효과적으로 증폭하고 여러 분자가 섞인 시료를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표면증강 라만 산란은 금속의 미세 구조 주변에 빛을 비췄을 때 형성되는 강한 전기장을 이용해 분자의 라만 신호를 증폭하는 기술이다. 라만 신호는 물질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녀 ‘분자의 지문’으로 불리지만, 본래 신호가 매우 약해 미량 물질을 검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빛의 에너지가 집중되는 나노미터 크기의 좁은 틈인 ‘나노갭(Nanogap)’을 효과적으로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여러 물질이 섞인 시료에서는 분자별 신호가 서로 겹칠 수 있어, 증폭된 신호에서 각각의 분자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분석 기술도 필요하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의 지질 현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지각의 확장과 열적 풍화, 파랑에 의한 피로 작용 등에서 나타나는 균열 형성 원리를 응용해, 유연하고 투명한 실리콘계 고분자 소재인 폴리디메틸실록산(PDMS) 위에 은(Ag) 박막을 형성했다. 이후 기계적 인장과 극저온·열처리, 초음파 처리를 순차적으로 적용해 크기가 다른 미세 균열과 나노갭으로 이뤄진 구조를 구현했다.
이렇게 형성된 미세 균열은 빛에 의해 발생하는 전기장을 좁은 틈에 집중시켜 분자의 라만 신호를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제작 과정에 따른 구조 변화와 광학 특성을 분석하고, 전자기장 시뮬레이션을 통해 나노갭 주변에 전기장이 집중되는 현상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금속 박막의 균열이 분자 감지를 위한 기능성 나노구조로 활용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림. 자연의 지질 현상에서 착안한 유연 표면증강 라만 산란(SERS) 센서와 AI 기반 분자 분석 기술의 모식도]
실험 결과, 미세 균열을 형성한 센서는 별도의 균열 형성 처리를 하지 않은 은 박막보다 평균 라만 신호가 약 150배 높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한 기판의 100개 지점에서 신호를 측정하고 통계적으로 분석해, 일부 위치의 높은 신호에 의존하지 않고 센서의 전반적인 증폭 성능을 평가했다.
연구팀은 빛을 비추는 방향에 따른 신호 변화도 분석했다. 투명한 기판의 뒷면에서 빛을 비추는 ‘후면 여기(Backside Excitation)’ 방식을 적용한 결과, 앞면에서 빛을 비추는 기존 방식보다 약 1.7배 높은 라만 신호를 확인했다.
이러한 후면 측정 방식은 센서를 검사 대상의 표면에 부착한 상태에서도 신호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식품이나 피부처럼 굴곡이 있는 표면에 센서를 부착할 경우 감지면에 직접 빛을 비추기 어려울 수 있지만, 투명한 유연 기판을 활용하면 센서를 떼어내지 않고도 뒷면에서 빛을 비춰 분자 신호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연구팀은 AI 기반 딥러닝 기술을 결합해 여러 분자가 혼합된 시료의 신호를 분석했다. 특히 1차원 합성곱 신경망(1D-CNN)을 활용해 물질마다 다른 라만 신호의 특징을 학습하고, 서로 겹쳐 있는 신호에서 각 분자를 식별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미세 균열을 이용한 고감도 신호 증폭과 AI 기반 분자 분석을 하나의 감지 플랫폼으로 통합했다.
이번 연구는 금속 박막에서 발생하는 균열을 단순한 결함이 아닌 분자 신호를 증폭하는 기능성 구조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유연하고 투명한 기판을 이용한 후면 광학 측정과 딥러닝 분석을 결합해 다양한 표면에서 복합적인 분자 신호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마련했다.
향후 이 기술은 식품 표면의 잔류 농약 검사와 땀 속 대사물질 모니터링을 비롯해 환경 유해물질 검출, 식품 안전 검사, 바이오 분석 등 미량 성분을 정밀하게 구분해야 하는 분야로 확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센서를 대량 생산할 때에도 나노갭 구조와 감지 성능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 공정 개발이 필요하다. 아울러 센서의 소형화와 측정 재현성 확보, 휴대용 라만 분광기와의 연동 등 추가적인 기술 검증도 요구된다.
이번 연구는 고려대학교 안준성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됐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과학기술사업화진흥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센서 분야 국제 학술지 『Sensors and Actuators B: Chemical』(JCR 상위 1.9%)에 10월 6일(화) 온라인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