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오일처럼, 전고체전지도 ‘윤활’한다
- 2026.09.16
[사진. (왼쪽부터) 화공생명공학과 김원영 연구원, 유석현 연구원, DGIST 이효빈 연구원, KBSI 이영주 박사, 서울대 이원보 교수, 이용민 교수, 이상영 교수]
자동차 엔진이 금속 부품 사이로 스며든 엔진오일 덕분에 매끄럽게 작동하듯, 전고체전지의 고체 입자 사이에도 ‘윤활’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설계 원리가 제시됐다.
우리 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이상영·이용민 교수,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이원보 교수,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이영주 박사 공동연구팀은 소량의 유동성 전해질을 고체전해질 입자 사이에 침투시켜 끊어진 리튬이온 이동 경로를 다시 연결하고, 동시에 계면 부반응을 억제하는 ‘전해질 윤활(Electrolyte Lubrication)’ 기술을 개발했다.
전고체전지는 고체전해질을 사용해 높은 안전성과 에너지밀도를 구현할 수 있지만, 고체 입자 사이에 생기는 미세한 빈 공간과 충·방전에 따른 접촉 손실이 리튬이온의 이동을 방해한다. 특히 황화물계 전고체전지는 높은 이온전도도와 우수한 가공성을 갖추고 있음에도 안정적인 고체–고체 접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실제 셀 구현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지를 높은 압력으로 지속적으로 누르는 방식이 널리 사용돼 왔다. 그러나 높은 가압 조건은 별도의 압력 유지 장치를 필요로 해 배터리 시스템의 무게와 부피, 구조적 복잡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전고체전지 상용화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난제 중 하나로 꼽힌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더 강하게 누르는 문제’에서 ‘동적으로 윤활하는 문제’로 전환했다.
핵심은 일반 액체전해질을 단순히 첨가한 것이 아니라, 리튬이온과 음이온이 조밀하게 모여 있는 ‘응집 클러스터 전해질(aggregate cluster electrolyte)’을 설계한 것이다. 이온 응집 구조를 통해 반응성이 높은 자유 용매의 활동을 억제해 황화물 고체전해질과의 부반응을 줄이는 한편, 전해질의 유동성을 이용해 고체 입자 사이의 미세공극을 채우고 끊어진 이온전도 경로를 연결했다.
[그림. 전고체전지의 전해질 윤활 원리]
전해질 윤활제는 고체전해질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13 wt% 수준의 소량으로 투입돼 고체 입자 사이의 계면과 미세공극에서 이온전도 접촉을 보완하며, 이온 전달의 주된 경로는 여전히 고체전해질이 담당한다.
즉, 기존에는 성능 저하의 원인이었던 ‘빈 공간’을 전해질 윤활제로 채워 리튬이온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로 전환한 것이다. 물리적 접촉 손실에 대응하는 유동성과 계면의 화학적 안정성을 하나의 전해질 설계에서 구현한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전해질 윤활제를 적용한 전극에서는 리튬이온 이동 저항이 약 67% 감소했고, 사용 가능한 양극 용량은 약 18% 증가했다. 리튬 금속 대칭전지에서는 작동 수명이 약 2.7배, 단락 없이 견딜 수 있는 전류 수준이 약 3.9배 향상됐다. 이러한 결과는 5 MPa의 낮은 외부 압력 조건에서 확인돼, 전고체전지 상용화의 주요 장애 요인인 높은 가압 의존성을 완화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상용 전기자동차의 고속도로 주행 패턴을 적용한 디지털 트윈 전산 모사에서도 전해질 윤활제를 적용한 전지는 리튬이온 흐름과 전극 반응이 보다 균일해졌다. 특히 전극 표면 보호층의 열적 분해가 시작되는 약 90 °C에 도달하는 시간이 약 2.6배 지연돼, 국부적인 반응 집중과 발열을 완화할 가능성을 전산모사로 확인했다.
이번 연구가 제시하는 관점의 전환은 계면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전고체전지의 계면을 한 번 만들어지면 고정되는 정적인 접촉면이 아니라, 충·방전에 따른 접촉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동적 이온전도 계면’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영 교수는 “지금까지 전고체전지는 고체 입자 사이의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더 높은 압력을 가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 왔지만, 이러한 높은 가압 요구는 실제 상용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난제”라며 “이번 연구는 더 강하게 누르는 대신, 자동차 엔진을 윤활하듯 고체 입자 사이를 화학적으로 안정한 전해질로 ‘윤활’해 접촉 손실과 계면 불안정성을 동시에 제어하는 새로운 전고체전지 설계 원리를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량의 전해질 윤활제를 기존 전고체전지 구조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대면적·고에너지 전고체전지와 실제 제조 공정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통해 고가압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전지 시스템을 단순화함으로써 전고체전지의 상용화를 앞당기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우리 대학교 김원영 박사, 유석현 석박통합과정생,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이효빈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 연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한국연구재단 개인기초연구지원사업(중견) 및 국가전략기술미래소재기술개발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미국화학회(ACS)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JACS)’에 게재 승인됐다. 연구팀은 관련 핵심 원천특허를 확보하고 한국·미국·중국에 총 14건의 특허를 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