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군정기 한국과 일본의 교육 개혁, 국가 재건의 서로 다른 경로를 밝히다

박순용 교수팀, 해방 직후 양국의 교육 개혁이 민주주의와 국가 정체성 형성에 미친 영향 비교 분석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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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차보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박순용 교수]

 

1945년 8월 일본의 패망 이후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의 점령 아래 새로운 국가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미국은 정치·경제뿐 아니라 교육을 전후 국가 재건의 핵심 영역으로 보고 민주주의 교육을 중심으로 한 교육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같은 미국식 교육 모델을 받아들였음에도 두 나라의 교육 개혁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교육학과 박순용 교수 연구팀은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미 군정기 한국과 일본의 교육 개혁 과정을 비교 분석해 이 같은 차이가 나타난 배경을 규명했다. 미 군정과 양국 교육기관이 작성한 동시대 문서를 분석한 결과, 교육 개혁은 단순한 제도 개편을 넘어 국가를 재건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었다. 또한 교육이 미국의 연성권력(Soft Power)이 작동하는 공간인 동시에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의 유산이 재구성되는 장이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식 6-3-3 학제와 민주주의 교육 이념을 도입했지만 개혁의 출발점부터 달랐다. 해방을 맞은 한국에는 식민 지배의 잔재를 청산하고 국가 정체성을 새롭게 세워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었던 반면, 패전국 일본에서는 군국주의 교육 체제를 해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한국의 교육 개혁은 충분한 준비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작됐다. 미 군정은 행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기존 관료 체계를 상당 부분 유지했고, 교육 현장에서도 교원 부족으로 일부 친일 협력자가 다시 교단에 섰다. 그럼에도 학교 교육은 빠르게 정상화됐다. 한국어가 교육 언어로 자리 잡고 한국의 이익에 반하는 교육이 금지됐으며, 최현배 등 조선어학회 인사들이 국어와 역사 교과서 편찬을 주도했다. 고등교육기관도 크게 확대됐다.

 

연구팀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새로운 교육제도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식민 지배 이후 국가 주권과 문화적 정체성을 되찾아 가는 과정이었다고 봤다.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한국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이 함께 나타났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미국의 개입이 한국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미국은 전쟁 중부터 일본의 교육 정책을 준비했으며, 1946년 27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교육사절단을 파견해 6-3-3 학제 도입과 사회과 신설, 문부성 권한 축소 등을 추진했다. 반면 한국에는 이보다 늦은 1947년 5명의 교육사절단이 파견됐다.

 

이 같은 차이는 구체적인 교육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서는 여성 교육 전문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교육 개혁에 참여했지만, 한국에서는 성평등과 관련한 제도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국이 국가 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은 교육법에서도 확인됐다. 한국은 교육법 제1조에 ‘홍익인간’을 교육 이념으로 규정하며 민주주의를 한국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수용하고자 했다. 일본은 교육기본법에서 ‘평화적이고 문화적인 국가’ 건설을 목표로 제시하고 인격 완성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았다. 다만 ‘국민’의 범위를 일본 국적자로 한정하면서 재일 한국인은 제도 밖에 놓이게 됐다.

 

서로 다른 경로를 걸었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두 나라 모두 교육을 전후 국가 재건의 핵심 수단으로 인식했고, 미국식 6-3-3 학제와 사회과를 도입하며 민주주의 교육을 제도화했다.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국가 차원의 교육 체계를 빠르게 구축했다는 점에서도 공통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교육 개혁이 갖는 의미와 그 과정에서 드러난 한계는 달랐다. 한국에서는 교육이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미국의 냉전 전략에도 활용됐다. 일본에서는 평화주의 교육을 통해 군국주의 청산을 추진했지만 식민 지배의 역사와 충분히 대면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남겼다.

 

박순용 교수는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의 영향을 받아 민주주의 교육과 새로운 학제를 도입했지만, 각 사회가 처한 역사적 조건과 국가 재건의 과제가 달랐기 때문에 교육 개혁 역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며 “같은 교육 모델이 도입되더라도 그것이 각 사회의 역사와 문화, 정치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재구성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구는 교육을 단순한 제도 개편이나 지식 전달의 영역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다시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바라봤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미 군정기 한국과 일본의 사례는 교육이 국가 재건과 새로운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수단인 동시에 국제정치와 권력이 작동하는 공간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당시 교육 개혁 과정에서 나타난 이러한 차이와 모순이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교육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사적 맥락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Shaping Classrooms, Rebuilding Nations: Comparing U.S. Legacy in the Education Sector in Korea and Japan, 1945–1948’라는 제목으로 한국비교교육학회 학술지 「비교교육연구」 제35권 제5호(2025년 11월)에 게재됐다.
 

 

기사 작성: 연세소식단 최서윤(중어중문학 25)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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