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사유로 읽는 한강의 소설
- 2026.08.06
2024년 노벨문학상을 한강 작가에게 수여한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소설들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했다. 소설과 시는 서로 다른 장르로 인식되는 만큼, ‘시적 산문’이라는 표현은 다소 낯설게 다가온다.
국어국문학과 조강석 교수도 이러한 '시적 산문'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그에 대한 해석을 전개한다. 2025년 12월에 발간한 논문 「한강의 ‘시적 산문’의 주요 특징 연구」에서 그는 한강의 소설들을 이미지-사유 개념에 주목하며 해당 표현의 의미를 자세히 분석한다.
조 교수는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희랍어 시간』 등 한강의 대표적인 소설들을 분석하며 그것들을 '시적 산문’으로 만드는 요소들을 살펴본다. 한강의 소설에 나타나는 시적인 특징과 소설적인 특징을 각각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나타난 ’시적 산문'으로서의 “변별적 자질(distinctive features)을 통해 한강의 작품 세계의 주요 특징을 설명하는 것”이 연구의 핵심이다.
한강 문학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미지-사유의 힘'이다. 일반적인 소설이 사건의 전개와 인물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면, 한강의 소설은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를 서사의 중심에 놓고 작품을 전개한다. 이러한 특징은 등단작 『붉은 닻』부터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한강의 작품 전반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한강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플롯보다 독자에게 강렬하게 각인되는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활용하며, 이를 통해 정서와 의미를 더욱 깊이 전달한다.
등단작 『붉은 닻』에서는 가족의 상처와 화해라는 서사와 함께 녹슨 붉은 닻의 이미지가 함께 제시된다. 붉은 닻의 이미지는 가족의 상처와 치유를 상징하는 동시에, 독자가 사건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감정을 보다 근원적이고 정서적인 차원에서 경험하도록 만든다.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눈 덮인 벌판과 검은 나무의 꿈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가 되어 제주 4·3의 기억을 현재 속으로 불러온다. 이처럼 한강의 작품에서 이미지는 작품의 중심에서 의미를 응축하고 시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활용은 한강의 작품이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읽히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시가 사건의 전개보다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정서의 강렬도와 지속을 통해 독자에게 호소하듯, 한강의 작품 속 이미지는 현실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비추며 독자의 고정된 인식을 흔들고, 사유와 질문을 이끌어내는 힘으로 작동한다.
이미지-사유를 통해 한강의 작품 속 사태는 독자의 눈 앞으로 순식간에 다가와 현재의 감각으로 다가온다.이는 소설의 선형적 서사보다 시적 산문이 만들어내는정서적 집중의 순간을 더욱 부각한다. 이에 걸맞게 한강의 소설 속 인물들은 시대와 환경의 전형적인 인물을 제시하기보다 상징적인 어떤 극단 위에, 다시 말해 ‘날 위에(on the edge)’ 서 있다. 이들은 사회의 어떤 일면을 대표하는 대신 지극히 개인적인 상처를 헤집는 데 골몰한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위치가 우리 공동체의 경계 끝에 아슬하게 걸쳐져 있다는 점에서, 주요 인물들이 보이는 이 결벽증적인 탐구는 곧 책을 읽는 독자가 속한 세계에 대한 하나의 질문으로 다가선다.
『채식주의자』의 1부 주인공 영혜가 날 위에 서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독자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3부의 주인공, 영혜의 언니 인혜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일상 속의 폭력을 용납할 수 없어 일체의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채식을 택한 영혜는, 분명 맹목적으로 개인의 문제에 몰두하며 공동체에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구성원이 모두 그러한 문제에 골몰하며 스스로를 경계 너머로 몰아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경계를 넘어가지 않으면서도 질문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야 할 우리는 바로 인혜와도 같은 존재다. 어떻게 날 위에 아슬히 서 있는 채로 살아갈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인혜를 넘어 독자에게 주어진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문학은 치유가 아닌 증상이며, 해답이 아닌 질문이다. 그리고 한강의 인물들은 가장 날카롭고 강렬한 이미지의 사유를 통해 우리에게 지금 과거와 현재, 경계 안과 그 너머 중 지금 어디 즈음에 서 있는가를 묻는다. 서사가 아닌 이미지를 통해 삶에 숨겨진 증상을 우리 앞에 드러내는 문학. 한강의 작품이 소설이 아닌 시적 산문이라는 평을 받은 데에는 우리 삶의 가장 본질적 차원을 드러내기 위해 지난한 사유의 고통을 경유해온 그녀의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기사 작성: JSC 김용현(경영 22), 부소연(영문 23), 홍윤기(국문 21)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