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케이블의 보호, 국제법의 사각지대…이기범 교수 ‘안전수역’ 설정을 통한 해법 제시
- 2025.10.28
[사진. 이기범 교수]
전 세계 데이터 트래픽의 99%를 책임지는 해저 케이블이 국제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법학전문대학원 이기범 교수(국제법)는 최근 학술지 『국제법평론』 71호에 발표한 논문 「해저 케이블의 보호와 국제해양법」에서 “연안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외국 선박이 해저 케이블을 훼손하더라도 연안국이 직접 대응할 수 있는 집행관할권(enforcement jurisdiction)이 국제해양법(UN해양법협약)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행 UN해양법협약 제113조에 의하면 연안국에게는 해저 케이블의 절단 또는 훼손을 처벌 가능한 범죄로 규정해야 하는 ‘입법’ ‘의무’만 존재하지만, 그 대상은 ‘자국’ 선박 또는 ‘자국’ 관할권에 속하는 사람에게만 한정된다. 이 때문에 EEZ에서 외국 선박이 케이블을 손상시켜도 연안국이 곧바로 나포하거나 처벌 절차를 개시할 법적 권한의 존재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이 교수는 “EEZ는 연안국의 주권적 권리가 미치지만 동시에 항행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해적 성격도 지니고 있어, 외국 선박에 대한 집행관할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행 국제해양법의 한계를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법적 공백을 메우는 가장 실효성 있는 방안으로 UN해양법협약 제60조 제4항의 해석적 활용을 제시했다. 이 조항에서는 “연안국은 필요한 경우 항행의 안전과 인공섬, 시설 및 구조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이러한 인공섬, 시설 및 구조물의 주위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합리적인 안전수역을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해저 케이블을 경제적 목적의 ‘시설 또는 구조물’로 간주하면, 연안국이 케이블 주변에 안전수역(safety zone)을 설정해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케이블 훼손의 주된 원인이 선박의 닻 끌림인 점을 고려할 때, 안전수역 내 ‘닻 내리기 금지’ 등은 합리적 조치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법적 논리로 연결지을 수 있다. 추가로 안전수역 내 위반 행위는 연안국 국내법령 위반이 되어, 추적권(right of hot pursuit)과 결합할 경우 나포·처벌의 법적 근거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안전수역 설치와 추적권의 결합은 현 UN해양법협약 체제에서 연안국이 집행관할권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해저 케이블 훼손을 해적행위로 간주하자는 시도가 있었지만, 2015년 국제해양법재판소가 러시아 시추선의 시추활동을 방해하다가 러시아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던 네덜란드 국적 선박 Arctic Sunrise호 사건에 대해 내린 판례에 비춰볼 때 EEZ 내 고정 시설물은 해적행위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또한 보호수역 지정 사례를 참고하자는 논의도 제기되었지만 호주 등 일부 국가는 UN해양법협약이 허용하는 500m 범위를 넘어서는 범위에서 ‘보호수역’을 운영하고 있고, 이는 타국 선박의 항행의 자유와 충돌할 소지가 크다. 이에 비해 이번 연구는 UN해양법협약 체제 내에서 실질적으로 작동 가능한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실제로 핀란드 EEZ에서 발생한 ‘Eagle S호 사건(2024)’처럼 외국 선박에 의한 해저 케이블 훼손 사례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UN해양법협약 제60조를 활용한 안전수역 설정과 추적권 결합이라는 해법은, 국제법 체제 내에서 연안국이 실질적 집행관할권을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안으로 평가된다. 이기범 교수의 이번 연구는 한국을 비롯한 연안국이 해저 케이블을 국가 핵심 인프라로 보호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대응을 마련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기사 작성: 연세소식단 고찬주(중어중문 23)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