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기찬데요”
- 2026.02.09
[사진 1. 남형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큰 녀석이 우연히 발견했다며 유튜브 동영상 하나를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연세대 동문회 경품 추천 레전드”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이다.
“2026 연세동문 새해 인사의 밤”, 손범수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경품 행사에서 학교법인 이사장이 기증한 1년 주유권이 경품으로 나왔다. 총장이 뽑은 행운의 주인공으로 단상에 올라온 백발의 노신사는 뜻밖에도 “제가 차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게 필요 없어요. 기증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일순간 장내는 짧은 탄성과 이어 정적이 흘렀다. 순연된 행운은 누가 차지할까? 모두 긴장한 가운데 차가 없다고 하신 분이 뽑은 사람은 교목실장이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갖다 대자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저도 차가 없어요. (웃음) 저도 기증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마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받아서 가족이나 지인에게 선물해도 될 텐데.. 여전히 살아 있는 기회는 장내의 기대감과 긴장을 더 끌어올렸다. 교목실장이 또다시 뽑아 나온 동문은 “당첨은 처음인데..”라며 좋아하더니, 곧이어 “저는 전기찹니다.”라고 했다. 이 동영상의 하이라이트였다. 우리 가족 단톡방에서 이 동영상에 붙은 댓글은 “전기차 ㅋㅋ”다. 그 뒤로 화면은 편집되었고, 주유권은 꼭 필요한 동문에게 돌아갔다. 이 대목에서 사회자의 멘트가 화룡점정이다. “경품 행사에서 기념사진은 원래 두 분이 찍어야 하는데 다섯 분이 찍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장내의 큰 웃음으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사진 2. (왼쪽부터) 윤동섭 총장, 유성권 동문, 정미현 교목실장, 김용준 동문, 이윤재 G&G스쿨 이사장]
기름 한번 넣을 때마다 적잖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인데, 1년 주유권이라니.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탐냈을까 싶은 경품이다. 동영상으로 떠돌아다니는 이 훈훈한 이야기는 맨 처음 당첨자로 나와 차가 없다고 한 분에서 시작됐다.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이 모두 아는 그는 몇 년 전 큰돈을 학교에 기증하신 동문이다. 직접 운전하지 않을 뿐 기사 있는 차를 타실 것이 분명한데 양보한 것이다. 많이 가졌다고 해서 욕심이 적은 것은 아닐 터, 자기가 쓰지 않아도 주변의 필요와 선사하는 기쁨까지 고려하면 그분의 행위는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내가 여성용 향수를 경품으로 받았다고 할 때, “나는 여성용 향수를 쓰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주면 기쁨이 두 배가 될 수 있는데.. 아무튼 그분은 주유권을 받아 자녀나 직원에게 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의 필요를 줄여버린 것이다. 그의 양보는 이어지는 양보의 물꼬를 텄고 기념사진에 나온 다섯 사람을 넘어 행사장에 있던 수백 명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 기쁨은 ‘두 배’와 비교되지 않는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장 24절)
141년 전 조선의 땅에 하나의 씨앗이 떨어졌다. 그 씨앗이 오늘의 연세가 되었다. 양보와 희생은 전염성이 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당시 미국에서 잘 나가는 기업 가문 출신이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가난과 전쟁, 전염병으로 얼룩진 이 땅에 오게 했을까? 목포에서 개최되는 성서번역 회의에 참석차 배를 타고 가다가 서천 앞바다에서 선박충돌 사고가 났을 때 함께 승선한 여학생을 구하다가 사망한 아펜젤러 선교사는 또 왜 그랬을까? 언더우드의 후손은 아무런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연세대학교를 떠났으며, 아펜젤러의 자녀들 또한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아버지와 함께 묻혀있다.
[사진 3. 본관 전경]
모두가 이기심을 합리로 포장한 멋진 세상에서 질주하고 있을 때, 언더우드, 아펜젤러와 같은 분들은 자연(自然)을 거슬러 살았다. 참 ‘자유(自由)’를 누린 사람들이었다. 욕심이 없었으니 두려움도 없었을 것이다. 진정한 자유인, 그리고 그들을 자유롭게 한 ‘진리(眞理)’, 연세대학교의 교훈이다. 그들은 본관과 그 주변 건물의 이름으로 남아있을 뿐 아니라 연세의 정신으로 살아 있다. 짧은 동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며 작은 씨앗을 발견한 것 같아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