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현상이 K-컬처의 미래를 말하다
- 2025.10.16
지난 여름내내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이하 케데헌) 열풍으로 전 세계가 뜨거웠다. 서늘한 가을이 된 지금도 케데헌 열기가 여전히 식지 않고 있음을 <케데헌>이 세운 놀라운 기록과 <케데헌>을 매개로 발생한 글로벌한 문화 현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케데헌>은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투자 및 배급한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지난 6월 20일에 넷플릭스에서 개봉되었고, 주요 내용은 케이팝 아이돌 헌트릭스가 악령을 물리치고 노래로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이다. 개봉된 지 단 3개월 만에 누적 시청수 3억 뷰를 넘기면서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되었고, OST 수록곡들은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에서 아직도 내려올 줄 모른다. 특히 주제곡인 ‘골든’(Golden)은 영국의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서 통산 8주째 1위(9월 27일 현지 시간)를 차지했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 핫100에서 통산 8주째 1위(10월 7일 현지 시간)를 달리고 있다. 동시에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200에서도 1위(10월 7일 현지 시간)를 차지하면서 케이팝 장르로는 두 번째로 빌보드 싱글 차트와 앨범 차트를 모두 석권했는데 이 기록은 2020년 BTS의 앨범 ‘비’(BE)와 타이틀 곡인 ‘라이프 고스 온’(Life Goes On) 이후로 5년 만이다.
이런 놀라운 흥행 기록 외에, 국내외 인기 가수들, 해외 유명인들, 그리고 일반 대중들이 앞다투어 <케데헌> OST와 댄스를 커버하여 유튜브와 SNS 상에서 공유하면서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케데헌>의 주요 배경 및 소재가 된 한국 및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자 수많은 해외 관광객들이 한국으로 몰려와 <케데헌>의 배경이 된 장소들을 찾아 인증샷도 찍고 <케데헌> 주인공들이 먹었던 김밥, 컵라면, 순대, 설렁탕 등 한국 음식을 즐기기도 하였다. 이제 <케데헌>이 단지 하나의 콘텐츠가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즐기는 하나의 글로벌 문화 현상이 된 것이다.
케데헌 현상에 대해 미국의 주요 언론 매체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기사들을 쏟아냈다. 예를 들어, 타임(TIME)은 8월 21일자(현지 시간) 기사에서 이 영화가 코미디, 액션, 음악, 초자연적 요소를 잘 결합했고, 다양한 한국적 요소 및 음악의 완성도로 인해 문화적 특이성뿐만 아니라 보편성까지 잘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즈(NYT)도 8월 28일 ‘비평가의 노트’라는 코너에서 이 영화의 매력은 생생한 영상미, 중독성 있는 노래들이라고 하면서 팬덤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팬들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 함께 교감한다는 점을 높히 평가했다. 이외에도 CNN, USA투데이, 포브스, 할리우드 리포터 등 미국의 주요 매체들도 케데헌 현상에 주목해 <케데헌>에 대한 호평을 이어갔다.
미국 언론들이 호평을 쏟아내는 반면, 국내 언론의 시각은 다소 복잡하다. <케데헌>은 분명히 한국 및 한국 문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이긴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과 투자 및 배급이 모두 해외 자본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케데헌>이 과연 K 콘텐츠인가 아닌가’라는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크게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하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케데헌>이 한국 문화로 잘 포장되어 있지만 미국 기업이 제작한 완벽한 할리우드 영화이고, 미국 대중문화산업은 항상 이런 식으로 타문화를 자기 것으로 빨아들여 흥행 수익을 올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케데헌>을 누가 제작했고 흥행 수익을 누가 가져가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케데헌>을 매개로 한국 문화 및 콘텐츠를 전 세계인들이 함께 즐기게 되었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논쟁은 언론계뿐만 아니라 문화계 및 학계에서도 이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대체로 <케데헌>이 주는 긍정적인 가치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케데헌 현상은 우리에게 놀라운 충격과 동시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고, 다시 한번 K-컬처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했다. 그렇다면, 케데헌 현상이 우리에게 어떤 점들을 시사하고 있을까? 무엇보다도 먼저, K-컬처의 힘은 강하다는 것이다. <케데헌>을 통해 K-컬처가 세계적으로 힙한 문화가 되었고 전 세계인들이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의 어리고 젊은 세대들이 <케데헌>을 통해 한국 문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즐기는 모습은 앞으로 K-컬처의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이것은 마치 한국의 기성 세대가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미국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자라나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즐기는 것과도 유사하다. 이제 K-컬처는 아시아 변방의 독특한 문화라는 경계를 넘어 전 세계인들이 즐기는 트렌디한 글로벌 문화로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진화하고 있는 K-컬처가 앞으로 새롭게 형성될 글로벌 문화 생태계에 어떤 기여를 하게 될지 몹시 기대가 된다.
다음으로, K-컬처의 정체성이 재정의되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세계화 시대를 넘어 글로컬(Glocal) 시대이다. 글로컬 시대란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이 공존하는 시대, 즉 세계성과 지역성이 모두 공존하는 혼종의 시대인 것이다. 과거 한 국가의 문화 정체성은 뚜렷한 문화적 경계를 가진 집단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형성되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화로 인해 문화적 경계가 흐려짐과 동시에 각 지역의 고유성도 강조되는 그런 시대가 되었고, 따라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K-컬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케데헌>은 바로 이런 K-컬처의 정체성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케데헌>이 한국에서 제작한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한국인 케이팝 제작자들의 참여, 한국 문화를 잘 아는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의 연출, 그리고 한국계 미국인들의 목소리 참여 및 아티스트로서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글로컬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한류 패러다임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한류는 한국에서 한국 제작사들이 만든 콘텐츠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의미했다면, 이제는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제작한 콘텐츠가 아니어도 한류가 될 수 있음을 <케데헌>이 보여주었다. 즉, 한국 콘텐츠가 지금보다는 훨씬 다양한 제작 주체와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 질 수 있고,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들이 새로운 한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해외 제작사들이 K-컬처가 중심이 된 콘텐츠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아마존 MGM 스튜디오가 한국을 배경으로 제작한 드라마 <버터 플라이>, 미국 제작사 미디어 레즈가 만든 드라마 <파친코>, 그리고 미국 애플TV+가 제작한 케이팝 장르의 음악 경연 서바이벌 프로그램 <케이팝드(KPOPPED)> 등이 그런 콘텐츠들이다. 특히 케이팝의 경우, 이미 다국적 작곡가들와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더 나아가 케이팝 제작 시스템으로 육성된 한국인 멤버가 없는 다국적 아이돌 그룹들이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케데헌>은 바로 이런 제작 트렌드가 영화 산업에 반영된 하나의 콘텐츠이고, 이런 콘텐츠들이 앞으로 세상에 쏟아져 나올 때 새로운 한류 패러다임이 완성될 것이다.
그렇다면, <케데헌> 현상이 보여준 K-컬처의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데 이윤재 현대문화예술연구원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먼저, 연구원은 ‘시대정신(Zeitgeist)’을 잘 읽어낼 수 있는 글로컬 감각을 가진 인재들을 길러야내야 할 것이다. 연구원 교육센터에서는 이런 인재 양성을 위해 다양한 강의들을 개설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야 한다. 이렇게 길러진 인재들이 앞으로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속에서 그들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한다면 K-컬처의 미래는 아주 희망적일 것이다.
다음으로, 연구원은 <케데헌>이 쏘아올린 K-컬처 관련 여러 이슈들을 심도있게 연구하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연구원 연구센터에서는 한국의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있는 한국 학자들과 세계의 여러 학자들 간의 학술 교류를 추진하여 K-컬처의 무한한 가능성 및 K-컬처의 발전적인 미래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연구원이 K-컬처의 글로벌 허브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연구센터에서는 다양한 학술 프로그램 및 학자들 간 교류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