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문화예술의 성취를 보는 시각
- 2025.07.22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글로벌 관심과 애정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본격적인 글로벌 한류가 시작된 2010년대 이후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이어 BTS 열풍이 있었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 시리즈가 전 세계적 인기를 누렸다. 대중문화만 인기를 누린 것이 아니다. 조성진과 임윤찬은 전 세계 모든 공연이 매진되는 인기몰이를 하고 있으며, 시각 예술 분야에서도 한국 젊은 작가들이 글로벌 아트페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한국 문학 작품이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되면서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기 시작해 급기야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 문화예술의 눈부신 성취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최근 정부마다 문화∙예술 융성을 목소리 높여 강조했지만 문화∙예술의 성취를 정책적 지원의 결과로 보는 문화예술인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정부와 정치권이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경계가 심하다. 그러면 문화산업에 속한 기업들의 높은 경쟁력이 이러한 성공을 뒷받침한 것인가? 대중음악 아이돌 그룹의 인기에는 기획사들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기업들의 역할이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주로 프로젝트 형태로 생산이 이루어지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혁신과 경쟁력의 원천이 기업 안에 있기보다는 기업의 바깥 혹은 기업 간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와 예술의 글로벌 성취가 가능했던 것은 내적으로 문화예술계 혹은 문화예술 생태계 역량이 약진하였기 때문이고, 외적으로 글로벌 문화예술의 구조재편 과정에서 생긴 기회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먼저 내적 역량의 축적과 약진을 보자. 한국의 근대 문화예술계는 일제강점기 1920년대 문학, 음악, 미술 분야에서 형성되었다. 일본을 거쳐 들어온 근대 예술에 매료된 청년들을 중심으로 동인지, 문학지, 음악회가 만들어졌고 일본 총독부가 미술전람회를 개최해 예술의 생산과 매개, 소비가 자리를 잡았다. 1930년대까지 빠르게 성장했던 문화예술계는 일제말 탄압, 해방 후 정치적 혼란, 한국전쟁을 거치며 와해되었다. 1960년대 문학, 음악, 미술 예술계가 재건되고, 영화, 무용, 연극 문화예술계가 만들어져 예술가 교육과 훈련 및 등단, 예술 작품 발표와 평론의 제도적 기반이 갖추어졌다. 하지만 1972년 10월 유신 이후 권위주의 정권에서 문화예술계는 시련을 맞았다. 창작의 자유가 제약되고 문화와 예술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거나 투쟁의 수단이 되었다.
위축되었던 문화예술계가 새로운 기회를 맞은 것은 민주화와 경제 성장으로 창작의 자유와 민간에서의 지원이 갖추어지고, 문화예술 시장이 확대된 1990년대였다. 해외 교류 자유화로 밀려들어온 해외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전문 예술교육기관이 설립되며, 공연과 전시기관 설립과 함께 이를 운영할 인력도 양성되었다. IMF 경제위기를 거치고 200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문화와 예술의 시장화 우려도 있었지만, 중앙 및 지방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도 조금씩 늘었다. 과거에 비해 좋아진 조건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추구한 것은 민족성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글로벌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한국적인 것과 글로벌한 것이 결합된 혼종적 문화와 예술이었다.
혼종 문화가 글로벌 무대에서 각광을 받은 예는 과거에도 있었다. 음악 분야에서 1920년대 미국 재즈와 아르헨티나 탱고, 1960년대 브라질 보사노바, 1970년대 자메이카 레게 등이 대표적이다. 혼종 문화의 약진에 공통된 특징은 견고한 국제 문화질서가 느슨해지거나 재편되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한국 문화예술의 글로벌 약진에도 외부적 조건과 기회는 매우 중요했다. 두 가지 변화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첫째 문화·예술의 글로벌화이다. 문화와 예술의 생산, 매개, 소비가 글로벌화될 뿐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관점도 글로벌화되었다. 서구 문화가 중심이고 비서구 문화는 주변인 질서가 약해진 것이다. 글로벌 인구이동의 증가로 사회의 인종 다양성와 문화 다양성도 높아졌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 비서구 문화로 한국 문화와 예술에 대한 편견이 줄고 그 자체로 즐기고 감상하려는 태도가 퍼지기 시작했다. 둘째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과 급속한 확산이다. 디지털 플랫폼 매체는 과거에 비해 훨씬 역동적이며 특히 문화예술계의 게이트키핑을 해체했다. 그 결과 방송 PD나 DJ, 영화 배급사 등 게이트키핑을 거치지 않고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매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문화 콘텐츠의 직접 전달이 가능해졌다. 싸이와 BTS의 성공에 유튜브가, 오징어 게임의 인기에 넷플릭스가 기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 문화·예술의 놀라운 성취에 기여한 내외적 요인들에 대한 집중적 검토에서 더 나아가 이윤재 현대문화예술연구원은 문화예술 성취의 분야별 분석과 문화예술 현장과의 소통, 그리고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한 건설적 제안 등의 활동을 학제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