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혁신을 억제하는가, 유도하는가

최재림 교수팀, 2015년 화학물질 규제 법안 시행 이후 기업의 혁신과 친환경 전환 양상 실증 분석
  • 2026.01.27
화학물질 규제, 기업 혁신과 녹색 전환 동시에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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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제학부 최재림 교수]

 

2010년대 초반,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구미 불산 누출 사고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남겼다.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하면서 화학물질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이에 정부는 2015년 두 개의 관련 법률을 시행하게 되었다. 바로 화학물질등록평가법(K-REACH, 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CSCA, 화관법)이다.

 

도입 당시 “기업 부담만 늘릴 뿐”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최근 경제학부 최재림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은 이러한 인식을 뒤집는다. 『Environmental Regulation, Induced Innovation, and Greener Transition: Firm-level Evidence』이라는 제목의 논문은 이 두 법이 단순히 규제로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혁신과 친환경 전환을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규제가 혁신을 제약하는가, 유도하는가”

연구진은 2015년 화평법·화관법의 도입을 ‘자연실험’으로 활용했다.


화평법은 모든 화학물질의 등록과 유해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유해 물질에 대해서는 사용 제한·금지 조치를 부과했다.


화관법은 위험물질을 다루는 시설에 대한 안전 설비, 위험관리계획 수립, 사고 보고 의무 등을 대폭 강화했다.


연구팀은 규제 전후 기업의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① 환경부의 화학물질통계조사(CSSS), ② 한국지식재산정보원(KIPRIS) 특허 데이터, ③ KIS-LINE 재무자료를 결합해 9,088개 기업의 화학물질 사용과 특허 활동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추적했다. 그 결과는 뚜렷했다. 규제 도입 후 위험 화학물질을 사용하던 기업들은 평균 1.8개(약 40%)의 위험물질 사용을 줄였다. 반면, 비(非)위험 물질의 사용량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즉, 규제가 정확히 ‘유해물질’을 겨냥해 기업의 친환경적 조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규제 이후 특허 늘어난 기업들

연구진은 이어 ‘포터 가설(Porter Hypothesis)’, 즉 “환경규제가 오히려 혁신을 촉진한다”는 가설을 검증했다.


결과적으로, 규제 이후 특허 출원은 평균 1건 이상 증가했다. 특히 위험물질을 더 많이 쓰던 기업일수록 특허 증가폭이 컸다. 규제 이전(2011~2013년)에는 이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규제의 직접적인 효과로 볼 수 있다. 최재림 교수는 “환경규제가 단기적으로는 비용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모색하게 만드는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혁신을 통한 성공의 증거들

하지만 여기에 더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규제가 늘린 혁신이 실제로 위험물질 감축에 기여했을까?”


연구진의 추가 분석에 따르면, 규제 이후 특허를 많이 낸 기업일수록 위험 화학물질 사용을 더 많이 줄였다. 반대로 규제 이전부터 혁신이 활발하던 기업이나 생산성이 높은 기업은 특별히 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즉, “규제 이후의 혁신”이 실제 감축을 이끈 핵심 요인이었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중요한 건 혁신의 ‘양’이 아니라, 혁신이 규제 목표와 얼마나 맞물리는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연구팀은 특허 데이터를 세분화해 제품 혁신(product innovation)과 공정 혁신(process innovation)으로 구분했다. 그 결과, 제품 혁신이 활발한 기업일수록 기존의 위험물질 사용 관행을 과감히 끊어냈다. 예를 들어 효성은 친환경 가스 절연 기술, 한국조선해양은 저독성 방청도료 개발 등 제품 설계 단계의 혁신을 통해 실제로 수십 종의 위험물질을 대체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화학 산업 외의 제조업에서 두드러졌다. 자동차, 조선, 섬유 등 비(非)화학 제조업체들이 위험물질을 투입재에서 제거하며 ‘친환경 설계 혁신’으로 대응한 것이다. 반면 화학 산업은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즉각적인 감축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환경 vs 성장”의 이분법을 넘어

이번 연구는 “환경규제는 경제성장을 제약한다”는 통념에 반기를 든다. 오히려, 정교하게 설계된 규제가 혁신을 유도하고, 산업의 친환경 전환을 이끌 수 있다는 실증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최 교수는 “화학물질 규제는 단순한 통제 장치가 아니라, 기업이 안전과 환경을 고려한 혁신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방향타가 될 수 있다”며 “정확한 데이터 기반의 분석과 기업의 혁신 여건이 함께 조성될 때 규제는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교훈에서 출발한 규제가, 10년 뒤 '기업의 녹색 혁신'으로 돌아온 셈이다.

 

* 논문 정보: Environmental Regulation, Induced Innovation, and Greener Transition: Firm-level Evidence, 2026년 Journal of Development Economics 게재 예정

 

기사 작성: 연세소식단 고찬주(중어중문 23)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