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 배움의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학문
- 2026.09.15
“에듀테크가 정확히 뭔가요?” 센터장을 맡은 뒤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다. 많은 사람은 에듀테크를 교육에 기술을 접목하는 일, 이를테면 온라인 강의나 디지털 교과서를 만드는 것으로 이해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에듀테크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에듀테크(EduTech)는 교육(Education)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말이지만, 그 본질은 기술 자체에 있지 않다. 사람이 어떻게 배우는지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배움의 환경을 설계하는 데 있다. 온라인 강의나 디지털 교과서, AI 튜터는 그 설계가 구체화된 여러 형태 가운데 하나다.
의료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병원은 좋은 장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치료를 설계하며,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에듀테크도 다르지 않다. 새로운 기술을 교육에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하고, 그 원리에 따라 학습 경험을 설계하고, 실제 학습의 변화를 측정해야 한다. 에듀테크는 이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적어도 세 개의 학문적 다리 위에 서 있다.
첫째는 학습과학과 교수설계다. 인지심리학이 밝혀낸 기억·주의·동기의 원리를 바탕으로 무엇을, 어떤 순서로,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 것인지를 설계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설계에 따라 학습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기술은 이 설계를 구현하는 수단이다.
둘째는 교육측정·평가다. 학습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학생이 무엇을 이해했고 어디에서 막혀 있는지를 측정한다. AI가 학생의 문제풀이 기록을 바탕으로 이해 수준을 추정한다고 해도, 그 추정이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를 검증하려면 심리측정과 통계적 방법론이 필요하다. 이 다리가 빠지면 에듀테크는 학습 효과에 대한 근거보다 기술의 가능성을 앞세우게 된다.
셋째는 컴퓨터과학과 데이터과학이다. 학습분석, 자연어처리, 생성형 AI 등을 활용해 대규모 학습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고, 이를 개별 학습자에게 적절한 피드백으로 연결한다. 수만 명의 학습자에게 각자의 수준과 맥락에 맞는 피드백을 동시에 제공하는 일은 사람의 손만으로는 어렵다. 컴퓨팅과 AI는 이러한 교육적 개입을 대규모로 구현할 수 있게 한다.
세 다리 가운데 어느 하나도 빠질 수 없다. 기술만 앞서면 그것이 왜 교육적으로 필요한지 설명하기 어렵고, 교육학적 원리만으로는 이를 실제 시스템으로 구현하기 어렵다. 또한 측정과 검증이 빠지면 그 시스템이 실제로 학습을 개선했는지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센터에는 교육학, 측정, 심리상담, 컴퓨터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함께 일한다. 에듀테크는 여러 학문을 단순히 가져다 붙인 분야가 아니다. 결국 에듀테크는 학습을 이해하고, 설계하고, 측정하고, 기술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학문이 필연적으로 만나는 분야다. 학문 간 경계가 흐려지는 이른바 ‘빅 블러(Big Blur)’의 시대에 에듀테크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에듀테크의 무대는 학교에 한정되지 않는다. 배움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어디든 에듀테크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초·중등교육에서는 개별화 학습과 학습분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 명의 교사가 교실에 있는 모든 학생의 학습 속도와 어려움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AI는 학생의 학습 궤적을 분석해 어느 지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언제 교사의 개입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두 번째 눈’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AI는 교사의 전문성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교사가 더 정확하게 판단하고 개입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확장하는 기술이어야 한다.
고등교육에서는 학습관리시스템(LMS)의 역할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연세대의 LearnUs도 이러한 변화의 한 사례다. 과거의 LMS가 강의자료를 올리고 과제를 제출하는 공간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학습자의 활동 데이터를 분석해 학습의 어려움을 조기에 포착하고, 교수자의 수업 맥락을 반영한 질의응답과 피드백까지 제공하는 지능형 학습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업교육은 이러한 변화가 특히 빠르게 나타나는 영역이다. 기술과 직무가 빠르게 바뀌면서 기업은 구성원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짧은 단위로 학습하는 마이크로러닝, 개인별 역량 진단, 실제 업무와 학습을 연결하는 시스템이 확산되는 이유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얼마나 많이 학습했는가’가 아니다. 학습이 실제 업무 수행과 조직의 성과로 이어졌는지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평생교육 역시 에듀테크의 중요한 무대다. 고령화와 노동시장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은퇴 이후의 재취업 교육, 디지털 격차 해소, 시민 대상 AI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학교 밖 성인 학습자는 학생과는 학습 동기도,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학습의 목적도 다르다. 따라서 학교 교육의 방식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생애 단계와 학습 맥락에 맞는 별도의 설계 원리가 필요하다.
결국 에듀테크는 특정 연령이나 제도권 교육을 위한 기술이 아니다. 초등학교 교실부터 대학 강의실, 기업의 업무 현장, 은퇴 이후의 학습까지, 사람이 전 생애에 걸쳐 배우는 과정을 어떻게 더 잘 설계하고 지원할 것인가를 다루는 분야다.
AI에듀테크센터는 연구와 현장을 연결하는 것을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국내 LMS 기업과 함께하는 연구에서는 학생의 활동 데이터에서 학습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신호를 찾아내고, 교수자가 너무 늦지 않게 개입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다. 여기에 AI가 학습과 협업을 돕는 기능을 더해 차세대 대학 학습 환경의 모습을 그려가는 중이다. 교육부와는 학습자와 교원을 위한 AI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그 프로그램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를 검증하는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교육적 효과까지 확인하자는 취지다.
현장에서 만난 문제는 다시 연구의 질문이 된다. AI를 교육에 쓸 때 생길 수 있는 편향과 개인정보 침해, AI 의존성의 위험을 어떻게 진단할 것인가. 인간과 AI가 함께 창작하고 문제를 풀 때 사고의 역할은 어떻게 나누는 것이 바람직한가. 센터는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한 도구와 이론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의 범위는 교실 밖으로도 이어진다. AI 과학자 시대에 인간 과학자에게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를 규명하는 정책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정부 부처와 교육 관련 기관, 시·도교육청과의 협력을 통해 연구 성과가 교육 현장과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에듀테크는 이미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산업의 성장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AI가 교육의 오래된 제약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난 수십 년간 교육은 ‘한 명의 교사가 많은 학생을 가르치는’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학생마다 이해하는 속도와 어려움을 겪는 지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든 학생에게 개별적인 도움을 제공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
AI는 이 제약을 크게 낮출 가능성을 보여준다. 학생은 자신의 속도로 배우고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교사는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느 학생에게 언제 개입할지를 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동안 좋은 교육이라고 여겨왔지만 규모와 비용 때문에 구현하기 어려웠던 개별화 교육을 현실에 가깝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곧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AI가 학습자의 사고 과정을 대신할 수도 있고, 데이터 활용은 개인정보와 학생의 권리라는 문제를 동반한다. 따라서 에듀테크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빨리 적용하느냐보다, 그것이 실제로 학습에 도움이 되는지를 얼마나 엄밀하게 검증하느냐가 중요하다. 대학의 연구센터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세는 지금 ‘Empowering Yonsei’라는 비전 아래 모든 구성원이 마음껏 공부하고 연구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대학을 지향하고 있다. 나는 이 비전에서 ‘Empowering’이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미 가진 가능성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은 교육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AI 기반 에듀테크는 이 비전을 교육 현장에서 구체화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서로 다른 배경과 학습 속도를 가진 학생들이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학습자를 empower하는 일이다. 반복적인 업무를 줄여 교수자가 학생과 더 깊이 만나고 가르치는 데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교수자 역시 empower할 수 있다. 나아가 대학의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엇이 실제로 학생의 성장을 돕는지 확인하고, 그 근거 위에서 각 교육 단위가 자율적으로 교육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대학 전체를 empower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대학이 어떤 교육을 지향하는지가 먼저이고, 기술은 그것을 구현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연세에는 대학 전체가 사용하는 학습 플랫폼, 여러 학문 분야를 연결할 수 있는 연구 역량, 교육 정책과 현장을 잇는 네트워크가 있다. 이 자산들을 잘 연결한다면 연세는 에듀테크를 사용하는 대학을 넘어, AI 시대의 대학 교육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대학이 될 수 있다.
1885년 문을 연 연세는 140여 년 동안 시대의 변화와 함께 교육의 길을 넓혀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AI가 가져올 또 하나의 큰 전환점 앞에 서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바뀌어도 교육이 답해야 할 질문은 같다. 어떻게 학습자 한 명 한 명의 배움을 더 잘 지원할 것인가,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을 충분히 펼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에듀테크를 기술의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에듀테크는 사람의 학문이다. AI와 데이터, 새로운 기술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기술의 정교함이 아니라 그것이 한 사람의 배움에 실제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가에 있어야 한다.
‘Empowering Yonsei’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능성을 더 크게 열어가는 대학을 뜻한다면, 에듀테크는 그 비전을 교육의 현실로 옮기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가장 먼저 도입하는 것보다 교육에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먼저 묻고, 그것이 실제로 더 나은 배움으로 이어지는지 끝까지 검증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에 우리 센터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