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이다: 문명사적 전환과 사회과학의 질문
- 2026.07.10
2026년 6월,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자국의 인공지능 기업 앤트로픽(Anthropic)이 개발한 최신 언어모델의 해외 접근을 제한했다. 이 조치는 인공지능(AI)이 더 이상 기업의 연구개발 성과나 상업적 상품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정 AI 모델에 대한 접근권이 기업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의 산업 경쟁력과 안보를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공상과학 소설 속 이야기로 치부되던 모습이다. 그러나 오늘날 AI는 국가 전략과 기업 경쟁력은 물론, 시민의 일상과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까지 재편하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명사적 전환 앞에서 사회과학은 무엇을 연구하고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먼저 사회과학의 본래 역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회과학은 사회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그 속에서 형성되는 권력과 제도, 인간의 행동과 사회질서를 이해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AI 시대에 사회과학이 주목해야 할 대상은 AI라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AI를 둘러싸고 새롭게 형성되는 사회적·정치적 질서다. 알고리즘 편향 논란, 데이터 독점, 자동화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 소버린 AI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이는 권력과 제도, 공적 책임에 직결된 문제다. 누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가, 그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가. AI 시대 사회과학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민주주의, 노동, 국제질서라는 세 가지 영역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첫 번째 과제는 민주주의다. 흔히 AI의 편향성을 우려하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은 ‘무엇을 편향으로 규정할 것인가’와 ‘그 기준을 누가 결정하는가’에 있다. 과거 산업혁명기 증기기관과 철도가 등장했을 때, 노선을 어디에 설치하고 요금을 어떻게 책정할 것인지는 의회와 공론장에서 치열하게 다루어졌다. 철도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산업과 지역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 사회기반시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AI 역시 그에 버금가는 사회적 인프라가 되고 있다. 챗GPT를 비롯한 거대언어모델(LLM)은 정보를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사람과 개념을 범주화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일상적 판단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검색 결과를 배열하고, 추천 콘텐츠를 제시하며, 위험 정보를 걸러내는 모든 과정에는 수많은 가치판단이 개입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결정들이 충분한 공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 없이, 오로지 기술적 판단의 영역으로 치부된다는 점이다. 공동선과 안전을 위해 어떤 가치를 학습시킬지, 무엇을 위험으로 규정할지, 어떤 편향을 제거할지는 시민사회 전체가 논의해야 할 영역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당수의 결정이 거대 기술기업 내부의 설계와 운영 기준에 따라 손쉽게 처리된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주권자로 참여하기보다 시스템이 제시한 결과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소비자로 전락한다.
AI가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은 과거 산업사회와도 다르다. 산업사회에서는 시장이 ‘가격’으로, 관료제가 ‘규칙과 분류’로, 민주주의가 ‘대표와 선거’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 왔다. 반면 AI는 ‘추천과 배열, 분류와 예측’을 통해 직접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새로운 거버넌스 형태이자 권력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 권력이 민주적 정당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시민의 삶을 규정하는 판단 기준이 빅테크 기업의 사적 원칙에 의존하고, 그 여파는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 따라서 AI 시대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는 알고리즘 권력을 민주적 통제와 공적 책임의 틀 안으로 포섭하는 것이다. 사회과학은 이 새로운 권력의 작동 방식을 해부하고, 민주주의가 이를 어떻게 통제하고 정당화할 것인지 제도적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두 번째 과제는 노동이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거나 보완함에 따라 사회적 관심은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인가’에 쏠려 있다. 생성형 AI는 이미 글쓰기, 번역, 디자인, 프로그래밍, 데이터 분석 등 지식노동의 전반을 수행하고 있다. 과거의 자동화가 육체노동의 양상을 바꾸었다면, 오늘날 AI는 지식노동의 영역을 근본적으로 재편한다. 물론 일자리 감소도 중대한 문제지만, AI 시대 노동의 핵심은 단순히 사라지는 일자리의 수치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능력으로 평가받고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에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기술혁신은 늘 노동질서를 흔들었다. 방직기의 도입은 숙련 노동자의 지위를 떨어뜨렸고, 대량생산 체제는 노동을 파편화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야기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었다. 노동법, 최저임금제, 사회보험, 공교육 같은 사회적 제도가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 냈으며, 사회과학은 그 현장을 분석하고 제도를 설계하는 주역이었다.
AI 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연구들은 인간이 AI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기억력과 메타인지 능력이 저하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할수록 길 찾기 능력이 감퇴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어떤 직업이 사라질지 예측하는 데는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인간이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를 아끼고 있다.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역량은 AI가 내놓은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맥락과 가치, 윤리적 판단을 더해 결과를 검증하는 능력이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새로운 불평등이 발생한다. 산업사회에서는 자본과 학력이 격차를 결정했다면, AI 시대에는 데이터 접근권과 AI 활용 능력, 그리고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 새로운 신분과 격차를 만든다. 소수의 플랫폼 기업이 막대한 데이터를 독점하며 영향력을 확장하는 동안, 다수의 개인과 조직은 기업이 구축한 규칙에 적응해야 하는 위치로 내몰린다. 사회과학은 이 변화가 고용, 교육, 복지제도에 미칠 파장을 분석하고 새로운 사회계약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세 번째 과제는 국제질서다. AI 기술 주도권을 쥐기 위한 미·중 경쟁은 단순한 기술 격차를 넘어 국제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데이터, 클라우드 인프라, 거대언어모델은 국가 경쟁력과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자산으로 부상했으며, 기술패권 경쟁은 향후 국제정치의 최우선 의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기존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도 커다란 균열을 일으킨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국제기구와 보편적 규범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경제, 안보, 공급망, 디지털 영역을 망라하며 전면화됨에 따라 기존 국제 거버넌스의 안정성은 약화되고 있다. 데이터와 AI 기술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은 지역 분쟁을 넘어 글로벌 차원의 갈등을 한층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주목할 점은 이 디지털 인프라의 절대 다수를 민간 빅테크 기업이 소유·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신망, 위성, 클라우드, 검색 플랫폼, LLM에 이르기까지 거대 기술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한다. 과거 무역을 넘어 외교와 군사력까지 행사했던 동인도회사처럼, 오늘날 글로벌 빅테크는 개별 국가에 맞먹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단일 국가가 이들을 독자적으로 통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부각되는 ‘소버린 AI(Sovereign AI)’ 논의 역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는 단순히 국산 AI 모델을 개발하자는 산업적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언어와 데이터, 인프라를 특정 국가나 소수 기술기업에 종속시키지 않고, 국가가 자체적인 자율성과 통제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따라서 소버린 AI는 기술 정책인 동시에 국가안보, 산업정책, 디지털 주권을 포괄하는 사회과학적 의제다.
산업사회에서 사회과학의 핵심 질문 중 하나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였다. 생산수단의 소유권, 이익 배분, 국가의 역할에 관한 논의가 산업사회의 제도와 정치 틀을 형성했다. AI 시대에도 권력의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 권력이 작동하는 무대가 공장과 자본에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통제하는가, 그리고 그 결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떻게 공적 책임과 통제를 물을 것인가이다.
AI 시대의 질문은 단순히 “인간과 기계 중 누가 더 많은 일을 할 것인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핵심은 “인간 사회가 AI를 어떤 가치와 원칙 아래 운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다. 19세기 마르크스가 ‘자본’이라는 권력을 분석하고 베버가 ‘관료제’라는 권력을 해부했듯, 오늘날 사회과학 앞에는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권력이 서 있다.
사회과학은 알고리즘이 사회를 어떻게 조직하고 권력을 배분하는지 분석하는 데서 나아가야 한다. 민주주의와 노동, 국제질서 속에서 AI가 인간의 자유와 공공선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제도와 규범을 설계해야 한다. 기술은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줄 뿐, 그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회의 선택이다. AI 시대에 사회과학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