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서거 80주기, 건축으로 남긴 기억

성주은, 염상훈 교수가 만든 시인의 공간
  • 2025.06.23
윤동주기념관, 그 설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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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왼쪽부터) 성주은 교수, 염상훈 교수]

 

2025년, 윤동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되었다. 시인은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의 시와 삶이 머물렀던 공간이 캠퍼스 안에서 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시인이 실제로 거주했던 기숙사 건물 '핀슨관'을 리모델링한 윤동주기념관은 단순한 복원이 아닌, 윤동주의 정신을 건축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다.

 

윤동주 시인 서거 80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문학적 유산을 다시 한번 조명하고자, 윤동주기념관을 설계한 성주은, 염상훈 교수와 함께 공간에 담긴 이야기와 설계의 철학을 들어봤다.

 

성주은, 염상훈 교수는 건축공학과에서 건축 설계를 전공하고 있으며, 건축가이자 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윤동주기념관 프로젝트를 통해 두 사람은 건축의 기술을 넘어선 해석과 감성의 설계를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상징적인 공간을 마주한 건축가의 각오

윤동주기념관을 설계한다는 것은 건축가로서 크나큰 영광이자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었다. 윤동주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시인이며, 그의 이름이 갖는 상징성은 깊고 묵직하다. 그런 인물을 기리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닌 기억을 공간으로 엮어내는 일이었다.

 

"매우 큰 영광이었지만, 동시에 큰 부담이기도 했습니다. 윤동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지닌 상징성과 함께 100년 가까이 된 건물을 보존하며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통상적인 건축 설계와 달랐다. 공간 구성과 전시 콘텐츠 기획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업이 필요했다. 문과대 교수들과의 깊이 있는 논의부터 조명, 가구 디자이너와의 협업까지, 설계 과정 자체가 하나의 공동 창작의 장이었다. 성균관대학교 윤인석 명예교수와 유족들의 유품 기증, 그리고 독어독문학과 동문인 시몬느 박은관 회장의 기금 쾌척 또한 이 공간을 가능케 한 중요한 밑거름이었다.


윤동주를 다시 읽는 일에서 출발한 설계

설계를 시작하며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보다는, 윤동주라는 인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이미 널리 알려진 그의 이미지가 아닌, 대학이라는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그를 기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먼저였다.

 

"처음부터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윤동주 시인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이미지를 다시 질문하고, 새롭게 공부하는 과정이 먼저 필요했습니다.“

 

윤동주기념관은 사람마다 다른 감정과 해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했다. 그래서 특정한 이미지를 정해두기보다는, 해석이 열려 있는 상태로 설계 방향을 설정했다.
 


시간의 흔적 위에 쌓아 올린 건축

윤동주기념관은 오랜 시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던 기존 건물을 전시관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이었다. 공간의 기능이 바뀐 만큼, 형태 또한 변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어떻게 새로움을 더할지에 대한 고민이 중심에 있었다.

 

"기존 건물이 지닌 시간의 흔적을 살리며, 동시에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바꿔낼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지움으로 지음'이라는 설계 철학이 자리했다. 새로 짓기보다는, 지우고 남길 것을 선택하는 과정이었다. 새로운 요소들이 제 기능을 하도록 조율하는 동시에, 과거의 흔적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전시 공간에 담긴 감성과 디테일

윤동주기념관은 건물 자체가 전시의 주체가 되는 공간이다. 겉으로는 고스란히 남은 외벽, 내부로 들어서면 대비되는 현대적 전시 공간이 맞이한다. 교수들은 전시 공간의 구성에 있어, 빛과 재료, 흐름이 시인의 정신과 연결되기를 바랐다.

 

"전시 공간은 깔끔한 하얀 벽으로 조성해 시선을 집중시키고, 오래된 건물의 흔적들은 마감재나 벽돌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빛의 흐름과 동선의 여백을 통해 시인의 내면을 상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재료가 갖고 있는 거친 질감을 의도적으로 남겼다. 새로 들어간 요소들과 충돌하지 않도록 조율하면서도, 낡은 재료가 주는 물성과 시간성이 공간에 깊이를 더하길 원했다.

 

"오래된 벽면이나 천장 마감의 일부는 완전히 새로 만들기보다는 남겨두었습니다. 거기에 새로운 조명이 닿거나, 관람자의 시선이 흐르면서 시간의 결이 드러나게끔 했습니다. 단순히 전시물을 보는 곳이라기보다는, 건물 자체가 전시되고, 시간의 결이 느껴지는 장소가 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곳이 윤동주 시인이 실제로 머물렀던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교수들은 이 건물이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물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인의 시선을 담아낸 ‘창’이라는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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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윤동주 기숙사]

 

윤동주 시인을 공간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상징적인 장치는 '창'이었다. 시인이 실제로 창밖을 바라보며 시를 쓰던 기억과, 연희전문 시절 바라보았을 캠퍼스 풍경은 그의 시세계에 깊이 녹아 있다. 설계는 이러한 시적 상상력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했다.

 

"윤동주가 실제로 창밖을 바라보며 시를 썼고, 연희전문대학 시절의 풍경이 그의 시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창은 시인의 '눈'과도 같은 의미였습니다.“

 

기존의 창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살리는 동시에, 창 밖 풍경이 관람자에게도 전달되도록 반투명 블라인드를 사용해 시야를 열었다. 이는 시인의 시선을 따라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설계적 장치였다.
 


복도와 동선, 설계로 이어지는 전시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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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다락방]

 

기존 핀슨관은 복도를 중심으로 각 방이 나뉜 구조였다. 전시 공간으로 재구성하면서 관람객의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교수들은 공간 사이의 벽을 과감히 열었다. 선형 동선을 따라 흐르듯 이어지는 관람 경로는 윤동주 시인이 바라보았을 창과 외벽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원래 건물은 복도를 중심으로 각 방이 분리된 구조였기 때문에 복도가 동선으로 역할했지만, 관람객이 선형 동선으로 원활히 이동하도록 돕기 위해 각 방 사이 벽을 뚫어 동선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한 동선 설계를 넘어 시인이 남긴 시선과 공간을 방문객이 함께 경험하는 방식이다. 교수들은 특히 중앙 복도에 전시물을 배치하지 않고 비워두는 방식을 택했다.

 

"중앙 복도는 전시를 하지 않고 비워두었는데 이는 관람자로 하여금 과거 기숙사 복도가 가진 원래의 조용한 분위기, 단정한 리듬감을 그대로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특히 복도에는 조명을 사용해 기숙사 방문이 열려 빛이 새어 나오는 풍경을 떠올리도록 연출했습니다. 이를 통해, 관람자에게 조용한 사유와 감정을 불러일으키길 바랐습니다. 이 복도 자체가 하나의 전시물이 되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시인의 흔적을 여는 서랍, 조용한 사유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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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서랍형 전시 가구]

 

전시 콘텐츠 중 하나인 서랍형 전시 가구는 단순한 보관 방식이 아닌, 시인의 세계를 체험하는 도구로 설계되었다. 교수들은 이 가구를 통해 관람자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움직임을 통해 윤동주의 시와 삶에 더 깊이 다가가기를 바랐다.

 

"햇빛에 의한 지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서랍형 전시 가구를 사용했습니다. 또, 윤동주 시인의 책의 표지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용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책의 사본을 제작하고 해체해 서랍 안에 배치했습니다. 관람객이 직접 열어보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집중하고, 사유에 머무를 수 있도록 의도한 장치입니다.“

 

교수들은 특히 대학이라는 장소의 맥락을 고려해, 이 기념관이 살아 있는 연구 공간으로 기능하길 바랐다.

 

"대학 내에 있는 기념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에 있는 곳이기 때문에 계속 윤동주에 관한 연구와 토론이 일어나는 살아있는 기념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1층을 전시 공간으로 만들고 2층은 라이브러리로 만들어 윤동주 관련 자료를 수집·보존하고 연구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윤동주기념관은 정적인 과거의 보존을 넘어서,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기념 공간을 지향하며 설계됐다.
 


오래된 건축에서 비롯된 뜻밖의 변수들

100년이 넘은 핀슨관의 구조는 설계 당시 예상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정확한 도면이 없었기 때문에 철거 과정 중에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구조적 불확실성은 설계자의 유연한 대처와 현장 밀착형 대응을 요구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예상치 못한 건물 구조의 불일치였습니다. 100년이 넘은 건물이다 보니 정확한 도면이 존재하지 않았고, 철거가 진행될 때마다 '기둥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다'는 식의 문제가 반복됐습니다.“

 

그러나 현장과의 거리적 이점을 활용해 자주 방문하며 실시간으로 조율했고, 시공사 역시 설계의 의미를 충분히 공감하고 협력해주며 함께 해결해 나갔다.


오래 머물고 다시 찾고 싶은 공간으로 남기를

교수들은 윤동주기념관이 단순한 추모 공간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랐다. 방문자 각자가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머물고, 생각하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 오래 머물고 다시 찾고 싶은 장소. 그들이 기념관에 부여하고자 한 의미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정신적 풍경에 가까웠다.

 

"이 기념관이 단순한 추모 공간이 아니라 다시 찾고 싶고 오래 머물고 싶은 장소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윤동주를 조금 아는 사람이든, 깊이 연구하는 사람이든 각자의 방식으로 머무르며 사유하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수들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말을 인용하며, 이 공간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창작의 불씨로 기능하기를 기대했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남긴 말 중 인상 깊은 구절이 있습니다. 'Tradition is not the worship of ashes, but the preservation of fire.' 전통이란 재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키는 것이다는 내용입니다. 과거를 단순히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윤동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와 창작이 계속해서 생산되는 '살아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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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을 걷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사진 5. 윤동주 기념관]

 

윤동주기념관은 설계자의 손에서 완성되는 공간이 아니라, 방문객에 의해 완성되는 공간이다. 교수들은 이곳이 단지 전시물을 보고 떠나는 곳이 아니라, 머무르며 의미를 새겨가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기념관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공간이 아니라, 찾아오는 사람들이 함께 완성해 나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을 단순히 '보고 가는' 장소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머무르고 흔적을 남기며 새로운 의미를 쌓아가는 공간으로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윤동주의 시가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듯, 이 공간도 위안과 사유, 재충전의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시간의 결을 따라 걷다 보면, 그 속에서 시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윤동주기념관은 단순히 한 인물을 기리는 공간이 아닌, 기억과 해석, 창작이 공존하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이 공간이 연세 구성원과 방문객 모두에게 오래도록 의미 있는 장소로 남기를 기대한다.
 

 

기사 작성: 연세소식단 윤도연(식품영양 25)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