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와 베토벤 음악으로 만나는 연세의 길
- 2025.06.18
지난 5월 9일(금) 저녁,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연세대학교 창립 140주년 기념 음악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음악대학 주최로 마련된 이번 공연은 음악대학 소속 교수들과 재학생, 동문 음악가들이 참여해, 빛나는 연세 140년의 역사를 기념하고 희망찬 미래의 길을 소망하는 뜻깊은 무대가 되었다. 음악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연세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베리타스콰이어’, ‘콘서트콰이어’ 합창단이 참여했으며, 관현악과 양성원 교수와 임지영 교수, 피아노과 안종도 교수가 협연자로 무대를 빛냈다. 프로그램의 기획과 지휘는 관현악과 최수열 교수가 맡았다.
음악회 프로그램은 교향곡과 이중협주곡으로 구성된 1부와 협주와 중창, 합창이 함께 어우러진 2부로 구성됐다. 1부에는 관현악과 학생들로 구성된 연세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브람스 교향곡 제4번 1악장(Symphony No. 4 E minor, Op.98 1st mov.)을 연주했고, 이어서 첼리스트 양성원 교수와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교수의 협연으로 브람스 이중협주곡(Double Concerto in A, Op.102)을 연주했다.
2부에는 피아노 협주곡에 성악과 합창을 결합시킨 베토벤 합창환상곡(Choral Fantasy in C minor, Op.80)이 공연됐다. 2부 무대에는 연세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안종도 교수, 소프라노 윤상아, 오예은, 알토 임은경, 테너 김효종, 조중혁, 베이스 최승원의 연주, 그리고 베리타스콰이어와 콘서트콰이어의 합창이 어우러져 웅장한 울림을 빚어냈다. 베리타스콰이어는 성악과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이고 콘서트콰이어는 교회음악과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이다. 85인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85인의 합창단원, 6명의 성악가 솔리스트, 협연 연주자까지 약 180명이 함께 만들어낸 대형 무대였다. 관객들은 훌륭한 연주를 펼친 음악가들의 무대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감동을 함께했다.
지난해 우리 대학교에 부임한 최수열 교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부지휘자를 거쳐 부산시립교향악단과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에서 예술감독과 수석지휘자를 역임하며 음악에 대한 통찰력 있는 탐구와 해석을 이어왔다. 특히 지휘자로서 곡의 해석을 넘어 기획 전반에 깊이 관여하며 대중적으로 익숙하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좋은 음악을 적극적으로 관객 앞에 선보여왔다. 부산시립교향악단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과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을 이끌었던 최 교수는 이번에 연세대학교 창립 140주년 기념 음악회를 맡게 돼 본의 아니게 ‘창립 기념 음악회 전문가’가 되었다.
“지금도 객원지휘자로 외부 활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학교에 부임하기 전에는 교향악단 소속으로 있었어요. 부산시립교향악단에서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일 때 창단 60주년을 맞아 기념 음악회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일을 했고, 이후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에서도 창립 60주년이 돼서 기념 공연을 했어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올해 또 60주년이고요, 연세에 왔는데 올해 창립 140주년이자 음악대학 창립 70주년인 거예요. (웃음) 음악대학장님이 중책을 맡겨 주셔서 140년이라는 엄청난 역사를 기념하는 공연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최수열 교수는 140주년이라는 빛나는 역사를 조명하기 위해 연세가 창립된 1885년에 초연된 브람스 교향곡 제4번 1악장을 첫 번째 곡으로 선택했다. 브람스는 4개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1번부터 3번까지의 교향곡은 당시 브람스를 ‘베토벤의 후계자’라는 평에 머물게 했지만, 4번 교향곡에 이르러서 브람스는 베토벤의 굴레에서 벗어나 가장 브람스다운 자신만의 교향곡을 완성했다. 최 교수는 브람스 4번 교향곡의 첫 소절이 우수에 찬 가을 분위기를 머금고 있어 CF나 드라마 배경 등에 사용돼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중적인 친숙함이 있으면서도 서양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곡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음악회의 두 번째 곡으로 선택한 작품은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 가단조 작품 102번이다. 이 곡은 브람스의 창작력이 절정에 이른 54세 때의 작품으로 고전주의자 브람스의 원숙한 내면 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불후의 명곡이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같이 협연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두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건 있어도 오케스트라와 같이 협연하는 곡은 별로 없어요. 보통 협주곡이라고 하면 독주가의 기량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데, 브람스는 거기에 오케스트라도 주인공이 되게 해요. 오케스트라가 어떤 연주자의 반주를 하는 개념이 아니라 협주를 하는 것이죠. 브람스 이중협주곡은 바이올린과 첼로가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부딪히고 갈등하다 끝내 화합을 이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한 연주가 이어집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마치 ‘삶’ 같다는 생각을 해요.”
최수열 교수는 연세의 과거, 현재, 미래를 표현하기 위해 3개의 곡을 선정했다며 곡을 선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모든 기념 음악회는 과거를 돌아보며 축하하고 또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희망을 갖는 세레모니이기 때문에 그런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곡은 베토벤만큼 좋은 작곡가가 없어요. 베토벤은 굉장히 불우한 인생을 살았지만 항상 음악으로 자기의 고난과 시련을 극복해 더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작곡가이죠. 그리고 대부분의 곡들이 고통에서 승리로, 희망으로 귀결돼요. 어려움에서 시작해 최고조의 환희로 끝나는 게 베토벤의 전형이죠. 140주년 기념 음악회 곡을 선정할 때 사실 작곡가를 먼저 생각했고, 베토벤과 브람스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음악사적으로는 베토벤(1770-1827)이 브람스(1833-1897)보다 앞선 선배 음악가이지만 저희 음악회는 감상하는 입장에서의 음악적 흐름과 디테일을 고려해 베토벤 곡을 마지막에 배치했어요.”
이번 음악회에서 연주된 베토벤 곡은 가장 많이 알려진 9번 ‘합창 교향곡’이 아닌 ‘합창 환상곡’이다. 환상곡(Fantasia)은 즉흥적 성향의 악곡으로 형식적 제약을 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다. 베토벤 합창 환상곡은 피아노 협주곡으로 시작해 성악 6중창의 칸타타가 가미되고 곡의 후반부에 합창이 얹어지면서 장엄하고 화려하게 펼쳐진다. 합창 환상곡은 베토벤이 38세에 쓴 곡으로 훗날 9번 교향곡의 기초가 됐다. 베토벤은 실러의 시에 곡을 붙여 이상적인 인간에 대해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했다고 전해진다. 베토벤이 젊은 시절 작곡한 합창 환상곡의 합창 파트 가사에는 이상적인 인간에 대해 ‘예술의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말년에 작곡한 합창 교향곡에서는 이상적인 인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이 차이를 극복하고 형제가 되는 인류애와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교향곡(Symphony)을 기악의 집대성이라고 일컫죠. 아주 완벽한 비율을 적용한 최고의 음악의 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곡가가 교향곡을 작곡한다는 것은, 그 틀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장르인 거예요. 베토벤의 화두는 결국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 틀 안에 개인적인 감정이나 정서를 담은 게 아니라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등 근본적인 것들의 의미를 담고자 했어요.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9번 교향곡을 작곡하기 전에 합창 환상곡을 시도해 본 것이었고, 성공을 거두면서 합창 교향곡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죠. 원래 교향곡에는 합창을 쓰지 않거든요. 순수한 악기로만 구성돼야 하는 게 교향곡의 중요한 조건이었는데 베토벤이 1808년, 이 합창 환상곡을 선보이면서 최초로 쓴 거예요. 당대 작곡가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겠죠. 하지만 교향곡에 합창을 붙인 9번 교향곡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너무도 위대한 곡이고 전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으며 연주되는 곡이지요. 독일어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그 멜로디와 합창 부분까지 도달하는 음악적인 과정에서 베토벤이 항상 추구했던 ‘고난에서 승리로’의 메시지를 최고조로 전달받게 돼요.”
합창 환상곡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합창 교향곡에 비해 더 많은 솔리스트가 필요하고 피아노 연주자도 있어야 하는데 연주 시간은 20분이 채 안 되기 때문에 가성비 면에서 쉽게 무대에 올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음악회의 경우 관현악과와 성악과, 피아노과, 교회음악과를 모두 갖추고 있는 우리 대학교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드라마틱한 선곡이었다.
음악회 프로그램을 마친 후 진행된 두 차례의 앵콜에서는 공연의 여운을 이어가기 위해 베토벤 5번 교향곡의 일부와 9번 교향곡의 마지막 부분을 발췌해 연주했다. 환희로 끝나는 베토벤 곡은 연주자와 관객 모두에게 뭔가를 해낸 것 같은 벅차오르는 감동과 위로를 전달해 준다고 최수열 교수는 말한다.
최 교수는 20여 년 동안 연주가 일상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공연 하나하나를 일일이 특별한 것으로 기억하지 않지만, 이번 공연의 무게와 의미는 남달랐다고 이야기한다.
“10년 전부터 연세 캠퍼스에 출강을 했는데 학교에 오면 항상 너무 좋았어요. 가장 오랜 역사가 있는 종합대학이고, 70년 전통의 음악대학이 있는 학교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에요. 저는 유학을 가서도 한 분야만 가르치는 대학을 다녔고, 그러다 보니 음악을 하는 사람들만 만나며 살았는데 연세대학교에 오니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 같아요. 마치 신입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연세의 구성원이 된 지 이제 2학기째인데 140주년 기념 사업 중 하나인 음악회를 대표로 준비하고 잘 마칠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 소속감이 더 많이 생긴 것 같기도 해요.”
최 교수는 공연을 마친 후 초대받아 온 여러 학부모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학부모들은 연주가로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학생들을 뿌듯해하며 기쁨을 표현했다고. 음악대학은 연세 창립 140주년 기념 음악회뿐만 아니라 음악대학 설립 70주년 기념 오페라 공연도 동시에 준비하며 많은 학생들이 행사에 참여했다. 최수열 교수는 학생들이 단순히 학교 행사에 동원된 것이 아니라 수업의 일환으로 연주회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원래 관현악과는 정규 커리큘럼으로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연주회를 하고 있어요. 한 달 정도 연습을 해서 연주회를 하고, 또 한 달 정도 연습 후 연주회를 하는 방식이죠. 이번 창립 기념 음악회 준비는 4월 초부터 약 한 달간 수업 시간을 이용해 준비했어요. 제가 학생들에게 외부 연주나 행사성 음악회로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어요. 그렇게 접근하게 될 경우 순수성을 잃게 될 수 있거든요. 대개 기념 음악회를 행사성 프로그램으로 준비하게 되면 음악적 내실을 찾기보다는 계속 축하만 하다가 한없이 가벼워질 수도 있거든요. 그러면 학생들 입장에서는 연주자로서의 음악적 성취를 이루지 못하고 단지 반주만 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수업의 연장선에서 성장할 수 있게 신경을 쓴 측면이 있어요.”
최수열 교수는 시립교향악단이나 합창단 등 클래식 음악을 하는 단체들이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운 현실을 언급하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음악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 대학교의 문화 저력에 대해 강조했다.
“순수예술은 장인정신이 필요한 분야예요. 공대나 의대, 경영대 등과 달리 수익을 창출할 수도 없고 어떠한 지표나 수치로 성장을 측정할 수도 없는 분야죠. 종합대학에 음악대학이 있다는 것은 이 학교가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가치에 대한 상징적인 척도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음악계에서 70년 역사는 대단한 것이에요. 국내의 역사가 깊은 오케스트라단도 60년 정도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연세음대 출신의 동문들이 필드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이고요.”
최 교수는 교원이 되고 보니 밖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학교의 지원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학교 안에서나 밖에 나가서나 좋은 교육과 좋은 연주로 어떤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덧붙였다.
진리와 자유의 연세정신을 바탕으로 성장한 연세 음악인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따뜻한 위로와 희망, 온기를 전달하며 예술의 아름다움을 지켜내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