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저지>에서 포착한 묵직한 질문
- 2024.07.25
<더 저지>(The Judge, 2014, 국내 미개봉)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John Downey Jr.)와 그의 아내인 수잔 다우니가 설립한 제작사 팀 다우니의 첫 작품입니다. 2013년 아이언맨 3 개봉 후 2015년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개봉 전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주연인 변호사 행크 파머 역을 겸하면서 제작까지 하였습니다.
1931년 생인 로버트 듀발(Robert Selden Duvall)이 42년 경력의 조셉 파머 판사(The Judge)로 열연하였고, 이 역할로 제87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연기파 배우 빌리 밥 손튼(Billy Bob Thornton)의 드와이트 디컴 검사 역은 분량에 비해 그 무게감과 울림이 상당합니다.
시작은 이러합니다. 명문 노스웨스턴 로스쿨(Northwestern University School of Law)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시카고에서 유능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행크 파머. 재판은 승승장구하지만 부인과는 불화로 이혼을 앞에 두고 있고, 고향의 가족과는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냅니다. 어느 날 법정에서 변론 도중 어머니 부고 소식을 전화로 듣고, 그의 표현을 빌리면, 망할 피카소 그림과 같이 찾고 싶지 않았던 고향 칼린빌의 부모님 댁을 20년 만에 방문하게 됩니다.
고향에는 영사기 촬영으로 모든 장면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약간의 지적장애가 있는 동생 데일이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고, 그의 형 글렌은 고등학교 당시 대단히 장래가 촉망되는 야구선수였지만 자동차 사고로 꿈을 포기하고 타이어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이자 판사인 조셉 파머를 만나게 된 행크는 아버지를 ‘Dad’가 아닌 ‘Judge’라고 부르고, 아버지는 단순히 악수만 하고 맙니다. 20년 만에 만났지만 감정의 골이 너무도 깊어 장례식을 마친 행크는 곧장 시카고행 비행기에 탑승하는데 글렌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아버지가 살인 혐의로 구금되었다고.
<영화 더 저지>
영화에서는 인디애나의 많은 장면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끝없는 옥수수밭, 토네이도의 경보를 알리는 높은 사이렌 탑, 고향에서 바를 운영하는 행크의 고등학교 동창 서맨사의 아름다운 가게 풍광, 거칠게 몰아치는 토네이도, 파머 판사가 항암 치료 주사를 맞는 그림같은 호숫가 별장, 그가 임종을 맞는 잔잔한 호수위의 조그만 낚싯배 등등.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불량기 있는 영민한 변호사 역할, 노련한 로버트 듀발의 묵직한 연기, 빌리 밥 손튼의 날카롭고 엄격한 검사 역 등등. 배우들의 연기는 인디애나의 풍광과 멋진 하모니를 연출합니다.
국내 개봉을 하지 못한 영화인 만큼 영화 평이 다양할 수 있겠습니다. (극장 개봉은 하지 않았지만 현재 OTT를 통해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가족 간의 애증과 화해에 주목할 수도 있겠고, 현직 판사가 피고인이 되었기에 법적 공방에 주목할 수도 있겠고… 필자는 법률가로서 소년 사건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하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소년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국가가 성인 범죄와 달리 특수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행크가 17세 때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유망한 야구 선수인 형 글렌의 장래를 망치게 합니다. 이 사고는 데일의 영사기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고, 재판 변호를 위해 머물고 있던 행크와 이를 함께 재생해 보던 아버지는 과거의 기억에 격분합니다. 때마침 몰아친 토네이도는 그 격한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합니다.
<영화 더 저지>
영화에서는 이 사고로 행크가 판사인 아버지로부터 엄한 처벌을 받는 설정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아버지가 아들을 재판할 수는 없기에 스토리를 단순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아직 어린 행크는 아버지가 실수한 자신을 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고향을 떠나 시카고로 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이 로스쿨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변호사로 성공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한편 파머 판사는 행크 또래의 마크 블렉웰이 총기로 여자친구를 위협하고 폭행한 범행에 대해 유독 가볍게 처벌합니다. 하지만 가벼운 처벌을 마치고 돌아온 블렉웰에 의해 그의 여자친구는 잔인하게 살해당합니다. 그 후 장기간의 형을 복역하고 석방돼 집으로 돌아온 블렉웰은 파머 판사의 자동차에 치여 숨지게 되는데, 이로 인해 파머 판사는 일급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영화는 소년 사건에 대한 처벌 정도나 처벌 방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파머 판사가 왜 자신의 아들에게는 엄격하게 대하고, 블렉웰의 첫 범행은 왜 그렇게 가벼운 용서를 하는지에 대한 해답으로 “마크 블렉웰에서 너(행크 파머)를 보았다”는 표현으로 설명하지만, 이는 관객의 답답한 심경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합니다. 아마도 소년사건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영화는 여러 가지 관심을 끄는 내용이 있습니다.
일급살인죄로 기소된 파머 판사에 대한 공판 과정에서 우리나라와는 상이한 영미법의 살인죄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판사, 검사, 변호인의 역할에 대한 전범을 잘 표현하고 있어 법률가에 대한 기대와 역할을 이해함에도 꽤 도움이 됩니다. 미국의 로스쿨 시스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더 저지>는 가족 간의 애정과 사랑이 상투적인 전개임에도 탁월한 연기력으로 깊은 감동을 끌어올립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아름답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진한 감동을 갖게 됩니다. 젊은 시절 마약에 빠졌다가 극복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경험이 영화에 녹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파머 판사의 장례식 때 법원에 조기가 게양되는데 그 이유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여러 면면들이 영화에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살펴보면서 감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영화 <더 저지>(The Judge, 2014)
- 감독: 데이빗 돕킨
-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로버트 듀발, 베라 파미가, 빌리 밥 손튼
- 수상: 37회 밀 밸리 영화제(미국영화 - 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