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명예특임교수팀, 분자 배열 설계로 빛의 에너지 경로 조절

분자가 ‘어떻게 접히는지’에 따라 빛 에너지의 운명이 달라진다
  • 202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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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김동호 교수, 장웨이 박사]


이과대학 화학과 김동호 명예특임교수 연구팀이 유기 분자의 배열 방식에 따라 빛 에너지의 이동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미세한 분자 구조 설계만으로도 빛을 흡수해 생성되는 엑시톤(exciton)의 거동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엑시톤은 빛을 흡수한 분자 안에서 생성되는 에너지 운반체로, 태양전지, 발광소자, 광촉매 등 다양한 첨단 광전자 소자의 핵심 요소다. 그러나 엑시톤의 움직임은 매우 빠르고 복잡해, 원하는 방향으로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다.

 

연구팀은 페릴렌 비스이마이드(PBI)라는 유기 발색단 분자를 여러 개 연결한 올리고머를 설계하고, 분자의 가장자리인 ‘베이(bay)’ 위치의 치환 패턴을 조절함으로써 분자들이 스스로 형성하는 이차 구조를 제어했다. 그 결과, 구조적 차이가 거의 없는 두 분자 계열이 전혀 다른 형태로 접히며, 빛을 받은 뒤 전혀 다른 에너지 경로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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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배열에 따라 달라지는 PBI 올리고머 내의 엑시톤 거동]

 

첫 번째 분자 계열(PBI1)은 지그재그 형태로 느슨하게 배열돼 이웃 분자 간 상호작용이 비교적 약한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빛 에너지는 일반적인 프렌켈 엑시톤 형태로 이동하다가, 주변 환경(용매)의 극성이 커지면 전자와 정공이 분리되는 전하 분리 상태로 전이된다. 이때 분자의 길이에 따라 에너지 이동 속도와 방식도 달라지는 특성을 보였다.

 

반면 두 번째 분자 계열(PBI2)은 종이접기처럼 조밀하게 접힌 구조를 형성하며, 분자들이 서로 강하게 포개진 배열을 이룬다. 이 경우 엑시톤은 짧은 시간 안에 엑시머 상태나 다중 여기자 상태로 변화하며, 일부는 삼중항 여기자로 전환된다. 이러한 과정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아, 보다 안정적인 에너지 변환 경로를 제공한다.

 

연구팀은 공명 라만 분광법과 초고속 분광 기술을 활용해, 분자 배열 방식에 따라 엑시톤이 선택하는 경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직접 관찰했다. 이를 통해 분자의 이차 구조와 엑시톤 거동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규명했다.

 

김동호 교수는 “이번 연구는 분자를 어떻게 연결하고 배열하느냐에 따라 빛 에너지의 흐름을 미리 설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는 자연계의 광합성 시스템처럼 정교한 분자 배열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인공 광소자 설계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적인 종합화학 분야 권위 학술지 ‘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 최신 호에 게재됐으며, 향후 태양전지, 인공 광합성, 고효율 발광소자 등 차세대 에너지·광전자 기술 개발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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