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않고 질문을 던질 때, 진정한 발견이 이루어집니다”
- 2025.12.03
[사진. 최재림 교수]
경제학부 최재림 교수가 제 14회 다산젊은경제학자상을 수상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사구시 정신을 기리는 이 상은 국내 경제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실증적 연구를 통해 한국 경제학의 발전에 기여한 만 45세 이하의 젊은 연구자에게 수여된다. 최재림 교수는 “사실에 입각해 현실의 문제를 탐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귀납적 방법론이 제 연구의 근간이 되어 왔다”며 “다산의 실사구시 정신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뜻깊은 수상”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최 교수의 연구 철학은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탐구’다. 그는 상품·서비스·자본·노동의 국가 간 이동 등 국제화 현상을 미시데이터로 분석해 그 인과 구조를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국제경제의 복잡한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거시적 접근보다, 실제 데이터를 통해 원인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는 실사구시 정신이 바로 이런 ‘현실에 뿌리내린 과학적 탐구’의 태도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의 학문 여정은 인문학에서 출발했다. 사회문제를 탐구하며 법과 제도의 중요성을 느낀 그는, “정책과 제도를 이해하려면 인간의 행동 동기를 분석할 수 있는 경제학의 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맨큐의 경제학』을 읽으며 경제학적 사고가 사회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전공을 경제학으로 전환했다. 이후 UC 데이비스에서 로버트 핀스트라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국제무역 분야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됐다.
이런 인문학적 문제의식은 이후 그의 연구 영역을 더욱 넓히는 기반이 되었다. 이런 인문학적 문제의식은 이후 그의 연구 영역을 더욱 넓히는 토대가 되었다인문학적 배경은 지금 진행되는 연구에도 녹아 있다. .최 교수는 최근 권서영 대학원생과 함께「Importing Pop Idols: Socioeconomic Consequences of K-pop Boom in the U.S.」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국제무역에서는 보통 상품의 이동을 다루지만, 문화 콘텐츠에도 ‘수입 경쟁(import competition)’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연구는 K-POP의 확산이 미국 내 음악시장 구조뿐 아니라 인터메리지(intermarriage, 이인종 간 결혼)와 같은 사회문화적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최 교수는 “문화적 흐름이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동시에 일으킨다는 점에서 인문학적 사고와 경제학적 분석의 결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K-pop 연구처럼 문화·사회 분야로 확장된 시선은 결국 경제정책의 효과를 면밀히 분석하는 실증 연구에서도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 교수의 연구는 ‘정책의 효과를 실증적으로 검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최근에는 한국의 노동시장과 환경규제 정책을 분석한 두 편의 논문이 개발경제학 분야 최고 권위지 Journal of Development Economics에 게재되며 주목을 받았다.
「Labor Market Rigidity at Home and Multinational Corporations’ Flexible Production Reallocation Abroad」에서는 2017년 이후 강화된 노동시장 규제가 다국적기업의 국내 고용을 약 3% 감소시키고, 해외 생산 이전을 촉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Environmental Regulation, Induced Innovation, and Greener Transition: Firm-level Evidence」에서는 환경규제가 기업의 친환경 기술혁신을 촉진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규제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혁신과 지속가능한 전환을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정책의 영향을 기업 행동으로 연결해 보는 이러한 분석은 국제무역 환경이 급변하는 오늘날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최 교수는 미·중 무역분쟁을 연구함으로써 국제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분석했다. Journal of International Economics에 실린 「Anxiety or Pain?」 논문에서는 관세보다 불확실성이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더 크게 위축시킨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예측 불가능한 정책 환경이 장기적 의사결정을 제약합니다.”
그는 이 같은 불확실성이 장기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블록화, 기술 생태계의 단절, 혁신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해당 논문은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의 대표적인 연구 업적으로 인정받는다.
한편,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는 시대, 그는 정부보다 기업이 변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의 계획 중심 접근만으로는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최 교수는 정부가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은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공급망 다변화와 친환경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는 인프라를, 기업은 실행력을 책임져야 합니다. 양자가 협력할 때 불확실성은 오히려 기회로 바뀝니다.”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기업의 역할이 커질수록, 결국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더 절실해진다. 공급망 재편이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기업의 역할이 강조되는 만큼, ‘기업이 어떻게 혁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한국 사회의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
“규제와 책임 구조가 기업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만듭니다.”
한발 더 나아가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최 교수에게 앞으로 한국 사회와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최 교수는 실패를 용인하는 제도적 장치와 성과 중심의 유연한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핵심 인재에게 충분한 자율성과 보상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혁신의 동력입니다.”
이러한 통찰은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 세대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마지막으로 그는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질문하는 것에 부담을 갖지 말고 자신만의 질문을 던질 용기를 가지라”고 당부했다.
“경제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입니다.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되, 그 한계를 넘어서는 창의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그는 “끊임없이 ‘왜’를 묻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도가 결국 혁신으로 이어진다”며,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학문과 사회의 발전을 이끈다고 강조했다.
사실에 근거한 탐구와 새로운 질문을 향한 용기—그것이 최재림 교수가 말하는 실사구시의 현대적 의미다. 데이터로 현실을 읽고, 인간의 행동과 사회제도를 탐구하는 그의 여정은 오늘날 변화의 시대 속에서도 ‘진리를 향한 탐구’가 여전히 경제학의 본령임을 일깨워준다.
최 교수와의 인터뷰는 경제학이 단순히 숫자와 그래프의 학문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언어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비록 학문적 언어는 다르지만, 결국 모두가 ‘왜’를 묻고 어떻게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최 교수의 메시지는 경제학의 영역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에 깊이 닿아 있었다.
기사 작성: 연세소식단 고찬주(중어중문 23), 정세희(심리 25)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