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파워를 위한 길: 미국 내 아시안 혐오 범죄가 미국의 국제 평판에 미치는 영향
- 2025.07.01
[사진. (왼쪽부터) 양준석 교수, 이인복 교수]
문화나 외교정책을 통해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는 ‘소프트파워’는 오늘날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국가의 경제력이나 군사력 못지않게 국제적 평판이 중요해지는 가운데 정치외교학과 양준석·이인복 교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김성은 교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종희 교수로 구성된 연구팀은 미국 내 아시안 혐오 범죄가 미국의 국제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더불어, 미국이 혐오 범죄에 대응해 입법 조치를 취할 경우, 국제 평판이 개선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확인하며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제시했다.
이 연구는 코로나19 시기 미국에서 발생한 아시안 혐오 범죄, 특히 애틀랜타 스파 총격 사건과 같은 사례에서 출발했다. 연구팀은 ‘국내의 범죄가 해외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미국 내 인종 혐오 범죄가 아시아권 대중의 미국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연구는 아시아 9개국(중국, 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총 1만 5천여 명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설문 실험이 수행됐다. 연구팀은 응답자를 무작위로 세 집단으로 나눠 혐오 범죄 관련 정보 제공 여부에 따른 인식 변화를 측정했다. 통제군에는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고, 첫 번째 실험군에는 혐오 범죄 관련 기사, 두 번째 실험군에는 해당 기사와 함께 미국 의회가 대응에 나섰다는 내용을 함께 제공했다.
실험 결과, 미국 내 아시안 혐오 범죄에 대한 정보를 접한 집단은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평균 10.1%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에 대한 신뢰도(−6.3%p), 가치와 관습(−11.0%p), 민주주의(−6.5%p), 미국인에 대한 평가(−11.8%p) 항목에서 부정적 응답이 뚜렷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일본처럼 미국에 대한 기존 호감도가 높은 국가에서 부정적 변화가 평균 10.0%p로 더 크게 나타난 반면, 중국처럼 호감도가 낮은 국가는 평균 4.7%p에 그쳐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었다.
또한 연구팀은 미국 의회의 입법 대응이 국제 평판에 미치는 영향도 분석했다. 두 번째 실험군에게는 미국 의회가 아시안 대상 혐오 범죄에 대응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추가 정보를 제공했다. 그 결과, 해당 정보까지 접한 응답자들은 미국에 대한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부정 평가는 3.5%p 낮아졌고, 미국의 사회적 가치와 관습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5.7%p 완화됐다.
이와 같은 결과는 미국 의회의 상징적 행동이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 대중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소프트파워도 작용함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부정적인 국내 이슈에 대응하는 정치 엘리트의 행동이 국제적 평판을 일정 부분 회복시키기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미국 대중문화(음악, 영화, TV 등)에 대한 인식도 함께 조사했다. 흥미롭게도, 혐오 범죄 정보를 접한 응답자들은 미국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기존과 유사한 평가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혐오 범죄에 대한 정보가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나 미국에 대한 비호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나 사회적 가치와 같은 실질적 요소에 국한된 영향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이 커지는 오늘날 국내 혐오 범죄가 외부에 어떻게 비춰지고, 그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연구는 소프트파워의 영향력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는 점에서 학문적 의의를 지닐 뿐 아니라, 국가의 소프트파워를 위하여 국내 사건에 대한 정치인들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함을 뒷받침한다. 국가 내 혐오 범죄에 대한 정책적 개입의 필요성을 시사하며, 정치적 대응이 국가의 소프트파워 회복을 위한 중요한 방향임을 제시한다.
기사 작성: JSC 강승희(계량위험관리학 21), 윤현서(사회 25)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