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싸게 만들 수 있어도 굳이 경쟁사에서 사 온다
- 2026.08.19
2026년 5월, 애플이 아이폰의 핵심 부품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칩 생산을 경쟁사인 삼성전자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오랜 협력사 TSMC의 생산능력이 한계에 다다르자, 애플이 삼성과 인텔을 제2의 생산 파트너로 저울질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에서 정면으로 맞붙는 경쟁자로부터 가장 중요한 부품을 사오려는 이 낯선 장면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론적으로 설명한 연구가 있다.
경영대학 윤대희 교수는 오하이오 주립대 연구진과 함께 발표한 논문에서 기업이 부품을 직접 생산할지, 외부에서 구매할지를 결정하는 '자체 생산-외부 구매(Make-or-Buy)' 의사결정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단순히 비용이 낮은 방식을 선택한다는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 기업이 보유한 회계 정보가 이러한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게임이론 모형을 통해 규명했다.
연구결과, 기업은 내부에서 더 낮은 비용으로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경쟁사로부터 더 높은 가격에 부품을 구매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전략이 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기업의 회계시스템이 정교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회계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인 'The Accounting Review'에 게재됐다.
기업이 부품을 외부에 주문하면, 그 주문서에는 가격과 수량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주문하느냐는 곧 "우리 제품이 지금 얼마나 잘 팔릴 것 같은가"에 대한 그 기업의 내부적 정보를 드러낸다. 연구팀은 특히 이러한 정보를 전달받는 공급자가 같은 시장의 경쟁자인 상황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주문이 경쟁사에 전달하는 정보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수익성 정보 전달(profitability information)'이다. 기업이 향후 수요를 긍정적으로 전망할수록 더 많은 부품을 주문하고, 반대로 수요를 낮게 예상하면 주문량도 줄어든다. 경쟁사는 주문 규모를 통해 상대 기업의 시장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의 생산전략을 조정하게 된다. 상대 기업의 수요가 높다고 판단하면 경쟁 강도를 낮추고, 반대로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면 보다 적극적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주문을 넣은 기업은 수요가 높을 때 그 경쟁 완화의 이득을 챙길 수 있다.
두번째는 '전략적 포지셔닝 전달(strategic positioning)'이다. 외부에 미리 주문을 넣는다는 것은 자사의 생산량을 경쟁사에 먼저 공개하는 것과 같다. 연구팀은 이러한 상황이 경제학의 뒤따르는 '슈타켈베르크(Stackelberg) 경쟁'과 유사한 구조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주문을 먼저 넣은 기업은 공급자보다 생산 계획을 선제적으로 확정함으로써 시장에서 ‘선도자’의 위치를 점하고, 경쟁사는 이를 고려해 뒤늦게 생산량을 결정하게 된다. 연구팀은 이를 '유사 슈타켈베르크 우위(pseudo-Stackelberg advantage)'라 설명했다.
부품을 사 오는 기업이 이러한 정보를 통해 선도자로서 이점을 누린다면, 정보를 넘겨주고 뒤처지는 위치에 놓이는 경쟁사는 왜 순순히 부품을 팔려 할까.
연구팀은 시장에 경쟁자가 하나뿐이고 수요의 불확실성도 없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경쟁사가 부품을 공급하지 않으며, 수요 기업 역시 직접 생산을 선택한다고 분석한다.반면 경쟁자가 여럿이거나 수요의 불확실성이 큰 경우, 부품을 공급한 경쟁사는 소매시장에서는 다소 불리해질 수 있지만, 대신 부품 가격을 높게 측정해 도매시장에서 추가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경쟁자가 여럿인 시장에서는, 주문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다른 경쟁기업들도 주문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시장에 나설 것으로 예상해 경쟁 강도를 함께 낮추게 된다. 결과적으로 소매시장에서 발생하는 손해는 여러 경쟁사가 나누어 부담하는 반면, 도매시장에서 부품을 팔아 얻는 이익은 판 기업이 독점하게 된다.
연구팀은 이러한 이유로 경쟁이 치열할수록, 그리고 수요의 불확실성이 클수록 경쟁사로부터 부품을 구매하는 전략이 더 유리해진다는 점을 모형을 통해 증명했다. 나아가 경쟁자가 충분히 많으면, 수요의 불확실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경쟁사 구매가 최선의 결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회계시스템의 역할에도 주목했다. 기업이 미래 수요를 더욱 정확하게 예측할수록, 그 기업의 주문은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되어 경쟁 완화 효과를 키운다. 따라서 회계시스템이 정밀한 기업일수록 경쟁사로부터 부품을 구매하려는 유인이 커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관계는 반대로도 성립한다는 것이다. 경쟁사 구매를 선택한 기업은 자신의 주문이 더 정확한 신호가 되도록 회계시스템의 정확도를 높일 이유를 갖게 된다. 즉, 회계 역량과 경쟁사 아웃소싱 전략은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연구팀은 이 결과가 현실의 여러 사례와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논문에서 제시한 애플과 삼성전자, 페라리와 마세라티, 카메라 센서를 소니에서 공급받는 올림푸스와 니콘은 수요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경쟁사 간 공급 관계가 형성된 사례다. 연구팀은 수요 변동이 크고 경쟁이 치열하며 내부 회계데이터가 정밀한 시장일수록 경쟁사로부터의 구매가 나타난다고 본다. 이는 경쟁사 아웃소싱을 단순히 생산능력 부족이나 기술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선택으로 바라보던 기존 시각과는 다른 해석이다.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첨단 공정의 공급은 갈수록 빠듯해지고, 브랜드별·제품별 수요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업들은 경쟁사와도 생산 협력을 모색하며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있다.
물론 실제 기업의 의사결정에는 '정보 전달' 논리 외에도 지정학적 위험, 생산능력 제약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기업이 무엇을 직접 만들고 무엇을 외부에서 조달할지를 결정할 때, 비용뿐 아니라 그 선택이 경쟁사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지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앞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또한 회계정보의 역할이 생산원가 추정에 국한되던 기존 통념을 넘어,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과 시장 경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로 평가된다.
기사 작성: JSC 김지일(경영학 20)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