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희 교수, 익명 장기 기증자 연구로 인간 이타성 이해의 지평을 넓히다
- 2025.10.15
[사진. 강철희 교수]
“익명 장기 기증자(anonymous organ donor)는 특이한 사례로 간주될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도 존중받아야 할 비범한 이타주의자(extraordinary altruist)입니다.”
사회복지학과 강철희 교수는 이렇게 강조하며, 한국 사회에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익명 장기 기증자들의 삶을 관찰하고 분석한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강 교수는 최근 200명의 국내 익명 기증자를 대상으로 한 세계 최초의 대규모 실증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인간 이타성 연구의 영역에서 기증 이후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열었다. 연구결과는 2025년 7월 국제학술지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는 가족 간 기증의 영역을 넘어 타인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시민들의 기증 동기, 그리고 기증 이후 어떤 삶의 경험을 갖는지에 관해 심층적으로 살폈다.
분석 결과, 기증 동기는 힘든 상황에 놓인 이웃 돌봄에 대한 시민적 책임의식, 이웃의 고통에 대한 공감, 종교적 신앙, 사회로부터 받은 돌봄에 대한 보답, 기복적 동기의 순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장기 기증이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결단이나 종교적 헌신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적 가치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는 복합적 행위임을 보여준다. 특히 ‘시민적 책임의식’과 ‘이웃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상위 요인으로 나타난 것은, 한국 사회에서 타인 돌봄의 윤리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기복적 동기’가 일부 나타난 점은, 장기 기증이 한국 사회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도덕적 행위이자 영적 실천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 Gaussian mixture model과 multi-nomial regression에 기반한 연구모형]
기증자의 기증 이후 삶의 경험은 풍부한 긍정 경험, 보통 수준의 긍정 경험, 제한적 긍정 경험으로 유형화되었다. 강 교수는 Gaussian mixture model(GMM)이라는 통계 방법을 활용해 세 유형을 파악했고, multi-nomial 회귀분석을 통해 유형별 차이를 설명하는 요인을 파악했는데, 경험 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요인은 기증 과정에서의 가족의 지지와 충분한 숙고 과정임을 밝혀냈다.
여성의 기증 이후 삶에서의 긍정적 경험은 일관적으로 유의했고, 자영업자의 경우 제한적 긍정의 경향이 일관적으로 유의했다. ‘제한적 긍정 경험’이란 기증 이후 일정 수준의 보람과 의미를 느끼지만, 사회적 낙인, 건강상의 어려움, 또는 가족 내 갈등으로 인해 그 긍정성이 지속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특히 자영업자의 경우 경제적 불안정으로 인해 이러한 제한적 긍정 경험을 보고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관찰과 자료 분석의 의미를 넘어 사회적 파급력을 제공한다. 강 교수는 “모르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는 일은 극단적인 이타 행동의 표현으로 이에 대해 우리 사회는 인정하고 존경하면서 그 가치를 더 제고시킬 필요성이 크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언론은 기증자들이 ‘특별한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이웃 돌봄의 표상인 사람’이란 사실에 초점을 두며 널리 보도하여 그런 가치가 더욱 확산될 수 있도록 하고, 기증 행위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을 이끌고 제고시킬 필요성이 크다고 짚었다.
또한 강 교수는 기증 이후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으로 기증 과정에서의 가족의 지지와 충분한 숙고 과정을 꼽으며, “향후 가족 상담과 숙고의 절차를 제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일부 자영업자 집단의 경우 경제적 불안정으로 인해 기증 후 부정적 인식을 경험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를 언급하며, 이에 대한 경제·의료적 지원체계의 확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증자들이 경제적 부담이나 생계 압박으로 인해 후회나 심리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직업군별 생활 여건을 고려한 맞춤형 사후관리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정책적 제언으로는 ▲기증 전 가족 참여형 상담 프로그램 도입 ▲기증자에 대한 의료·경제적 지원 제도 강화 ▲기증 이후 심리적 회복을 위한 사후관리 체계 구축 등이 제시됐다. 이러한 지원 체계는 장기 기증을 준비하는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동시에, 긍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 교수는 이번 연구를 기반으로 학문적 확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뇌과학 연구자들과 협력하며 이타성의 신경학적 기반을 탐구하는 다학제적 후속 연구를 실행 중이다. 그는 “학문은 한 분야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서로 연결하고 보완하면서 진화해야만 한다”며 다학제적 연구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는 학문과 삶에 대한 조언도 전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타인이 관심을 덜 갖는 주제를 삶의 주제로 삼는 용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미있는 현상에 천착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그것이 스스로의 삶과 학문 및 사회에 기여하는 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 장기 기증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이번 연구는 비상한 이타성의 실천 이후의 삶을 탐구함과 동시에, 그것이 사회 속에서 제도와 교류하면서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제안한다. 이는 혈연적 선택을 넘어 공동체적 가치로서의 이웃 돌봄의 행동에 관해 성찰하게 하며, 학문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에서 연세대학교가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발걸음의 모범적 예를 제시한다. 나아가 이러한 성과는 학문적 탐구가 사회적 변화를 견인할 수 있음을 증명하며,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타인 돌봄의 가치(other-regarding preference)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기사 작성: 연세소식단 김정형(사회학 23)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