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문제’를 해결한 젊은 수학자, 백진언 연구원을 만나다

60년간 풀리지 않던 난제, 하나의 공식으로 풀어내
  •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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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난제를 해결한 인물이라 하면, 흔히 백발의 노교수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파 옮기기 문제’를 해결한 백진언 연구원의 모습은 그러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최근 박사 과정을 마친 그는 검은색 재킷 차림으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단정한 인상과 조용한 말투, 그리고 젊은 연구자 특유의 침착한 에너지가 인상적이었다. 수학의 세계에서 7년에 걸친 도전 끝에 난제를 해결한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겸손하고 차분한 태도가 돋보였다.

 

‘소파 옮기기 문제’는 복도 형태를 따라 소파를 옮길 때, 가장 큰 소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지를 다루는 고전적 수학 문제다. 단순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한 차원의 최적화 문제와 복잡한 형태 최적화 이론이 얽혀 있어, 60년 넘게 수많은 수학자들을 좌절시켜 왔다. 최근 이 난제를 해결했다는 소식은 국내외 수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백진언 연구원은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다. 백 연구원을 만나 소파 문제 해결 과정과 그가 걸어온 연구 여정을 직접 들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이준경 교수님 밑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백진언입니다. 박사 학위는 미시간대학교에서, 학부는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취득했습니다.


소파 문제를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

군 복무를 전문연구요원으로 대체하던 시기에 여가 시간에 우연히 한국인이 운영하는 수학 블로그를 알게 됐습니다. 그곳에는 다양한 흥미 위주의 수학 문제가 소개되어 있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소파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삭제된 블로그지만, 당시에는 많은 수학 퍼즐과 난제들이 올라와 있었고, 그 속에서 소파 문제를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난제를 무조건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했는지?

예전부터 ‘어려운 문제 하나는 꼭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수학 올림피아드 대표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지만, 끝내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를 오래 붙잡고 고민했던 경험들이 여러 번 있었고, 이런 경험들이 이번 도전에도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사실 소파 문제 외에도 수십 개 난제에 도전했지만 대부분 쉽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소파 문제만은 본능적으로 ‘해볼 만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직감을 믿고 접근하게 됐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는 문제이다. 어째서 이렇게 어려운 문제인지 설명해줄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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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문제의 난이도는 몇 가지 구조적인 이유에서 비롯됩니다.

 

첫째, 하나의 소파 모양을 기술하려면 유한한 수의 변수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곡선과 모서리 각각을 독립적으로 다루어야 하기에, 결국에는 무한히 많은 변수를 필요로 하는 무한 차원의 최적화 문제가 됩니다.

 

둘째, 무한 차원 최적화 문제라고 해서 모두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소파 문제는 이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히 더 까다롭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공식이나 방정식을 세워 문제를 풀어나가지만, 소파 문제는 모양 하나하나마다 별도의 공식을 만들어야 했고, 각각의 공식을 일일이 다루어야 했습니다.

 

더욱이, 어떤 모양이 가능한지, 어떤 공식이 필요한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루기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본인은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을 했는지?

기존에는 각각의 소파 모양에 따라 별도로 공식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모든 모양에 적용 가능한 하나의 공식’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소파 넓이를 정확히 계산하는 대신, 약간 큰 값을 주는 공식을 만들어 그것을 최적화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 공식을 통해, 넓이가 최대가 되는 모양(현재까지 알려진 최적 모양)에서는 공식 값과 실제 넓이가 일치하도록 설계했습니다.

 

덕분에 각각의 소파마다 다른 공식을 따로 다루는 복잡함을 피하고, 일관된 최적화 문제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를 풀면서 벽에 막혔다 느낀 적이 있는지?

물론 있었습니다.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확신은 있었지만, 처음 3년 동안은 구체적인 해결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믿음을 갖고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3년이 지나서야 문제를 정리할 수 있는 큰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이후에는 그 계획을 실행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는 않았습니다.

 

최종 증명은 400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었고, 매일 한두 페이지씩 작성하는 과정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시간을 견디며 증명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한 문제를 7년 동안 푼다는 게 상상이 잘 가지 않는데 힘든 순간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막막함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학창 시절, 수학 올림피아드 문제를 일주일 이상 고민하거나, 몇 달간 고민해도 풀리지 않는 경험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생각이 잘 풀리지 않는 날도 ‘오늘은 안 됐네’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이면서, 길게 보는 시각을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특히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풀릴 수 있다’는 직감 같은 것도, 그런 경험들을 통해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본인은 수학의 길을 어떻게 선택했는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여러 교과서를 한꺼번에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컴퓨터도 없어 심심한 마음에 교과서를 모두 훑어보다가, 수학이 가장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수학에 끌렸고, 그 끌림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소파를 볼 때마다 문제를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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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문제는 현실의 소파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일상 속 소파를 볼 때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주변 친구들이 소파를 볼 때마다 ‘생각나지 않느냐’며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해결을 위해 직접 소파를 밀어본 적이 있는지?

저는 직접 밀어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UC 데이비스의 벤 로믹 교수님께서 3D 프린터로 소파 모양을 제작해 실제로 밀어보는 실험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개인 프로젝트로 그런 모형을 만들어 오피스에 전시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있습니다.


”유레카”하는 순간이 있었는지?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는 유학 시절 지하 자취방에서 샤워를 하던 중에 떠올랐습니다. 소파 넓이보다 큰 값을 주는 공식을 만들었는데, 이를 최적화하려면 공식이 볼록함(convexity)을 가져야 했습니다. 이 볼록함을 어떻게 증명할지 고민하던 중, 샤워 중에 그림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샤워를 마치자마자 잊지 않으려고 급히 메모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문제의 해결이 수학적으로 어떤 의의가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는지?

소파 문제는 두 수학 분야를 결합한 문제입니다. 하나는 로봇팔이나 자율주행차가 장애물을 피하며 경로를 찾는 ‘모션 플래닝’ 분야, 다른 하나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대 넓이나 부피를 확보하는 ‘부피 최적화’ 문제입니다.

 

각각의 분야는 독립적으로 깊게 연구되어 왔지만, 두 분야를 자연스럽게 결합한 문제는 드물었습니다. 특히 소파 문제처럼 간단한 조건을 가진 융합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었는데, 이번 연구는 그런 난점을 넘어선 사례로, 순수 수학 이론 발전에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난제들을 풀어나갈 생각이 있는지?

앞으로도 다양한 난제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현재는 4차원 구를 가장 밀도 높게 쌓는 방법에 대해 연구 중입니다. 3차원에서는 이미 컴퓨터를 활용해 해결된 바 있지만, 4차원에서는 아직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해 난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탐구하고 있으며,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구조를 가진 ‘해피엔딩 문제’ 같은 이론적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학 꿈나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수학을 하지 않는 선택도 진지하게 고려해보기를 권합니다. 세상은 수학보다 훨씬 넓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본인이 진정으로 끌리는 분야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수많은 가능성을 다 살펴본 후에도 '수학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때는 주저 없이 수학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진언 연구원은 조급하게 답을 찾기보다 오랜 시간 막막함을 견디며 자신만의 길을 닦아왔다. 문제를 향한 끈질긴 집중력, 해답을 향한 조용한 확신, 그리고 막연한 가능성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신념이 그의 연구 여정을 이끌어 왔다. 소파 문제를 해결하며 보여준 차분한 열정과 단단한 뚝심은, 이제 또 다른 난제들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 되고 있다. 고정된 틀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백진언 연구원이 앞으로 수학이라는 광대한 세계에서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지 기대를 모은다.

 

기사 작성: 연세소식단 신홍규(UIC 과학기술정책 22) 학생